새장 속 안에 있는 새는 새장 바깥에 있는 새를 보고 부러워한다. 새장 속 새는 낙담한다. 작은 머리를 이리저리 꺾어보아도 보이는 것은 창살뿐. 새장의 새는 그러면서도 새장 안에 놓여있는 물을 먹고 주인이 놓은 모이를 먹는다. 새장 안의 세계는 한정적이다. 새장에서 보는 바깥은 무한의 세계로 느껴진다. 그래서 새장의 새는 새장 바깥의 새를 우러러본다. 그리곤 낙담한다. 그리곤 슬퍼한다. 그리곤 동일한 행동을 할 수 없다. 물을 먹고 밥을 먹는다. 용기 내어 푸다닥 날아보려 해도 새장에 부딪힐 뿐. 너무 아프다. 단단한 새장은 새의 힘으로 부실 수도 뜰을 수도 없다. 부딪혀 보곤 알았다. 항상 같은 곳. 새장 안의 새는 다시 고개를 들어 바깥을 본다. 새장을 넘어 창문을 넘어 지저귀는 새들은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새장의 새는 새장 밑으로 떨어진다.
사람은 자신만의 새장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 대부분은 새장 안에서 나오지 못한다. 그리고 새장 안에서 새장 바깥을 보며 새장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우러러보고 부러워하고 탐낸다. 사실 새장도 나쁘지 않다. 새장 안에는 물과 밥이 존재하고 온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자신의 새장에 있는 것의 중요성은 익숙함에 이미 의미가 퇴색된 상태다. 새장 속에 있는 새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새장 바깥에 있는 새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새장이 있어 가진 것도 누리며 바깥에도 나갈 수 있는 새가 될 것인가. 단순한 결정이다. 나가거나 나가지 않거나. 가만히 있거나 뭐라도 해보거나.
뭐라도 해보아도 창살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새장은 일종의 감옥이니까. 감옥에 갇히면 입구는 닫힌다. 입구는 굳게 걸어 잠가지고 더 이상 희망 따윈 없어 보인다. 희망이 없는 것은 무력감을 형성한다. 희망이란 미래를 낙관하는 것인데 사람에게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청사진이 없다면 세상이 가진 채도는 모두 사라진다. 무력감은 모든 것을 무채색으로 만든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그래서 무력감은 굉장히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상상만이 아닌 실제 피부로 닿는 감각을 해본 사람은 지독하리만큼 깊은 구덩이를 만든다. 새장 안에서 더 이상의 희망을 찾지 못한 새가 새장 밑으로 추락하듯.
사람에게 새장은 여러 가지 의미일 수 있다. 관념. 관습. 습관. 관성.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일관된 태도는 새장을 형성한다. 그것은 옳은 것일 수도 있고 옳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새장은 지독하게 좁을 수 있지만 누군가의 새장은 안전하게 자신을 보호하는 곳이다. 새는 연약한 존재다. 새가 날아드는 속도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히면 작은 머리뼈들이 모조리 부서져 뇌진탕에 걸리고 사망한다. 즉사하는 경우도 있다. 새는 새장이 필요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 그와는 반대로 새장이 필요하지 않은 새가 있을 수 있다. 어릴 적 늦은 시간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량에 부엉이가 부딪힌 적이 있다. 차에서 가족이 모두 내려 날지 못하는 부엉이를 보고 차에 있던 가방에 조심히 담아 집에 있는 새장에 넣어둔 적이 있다. 다음날에 동물병원으로 데려가자고 하고 두었다. 다음 날 아침 부엉이는 죽어있었다.
사고 때문에 죽은 것이겠지만 알 수 없다. 부엉이는 자신이 경험하던 세상이 새장으로 축소되었고 인간에게 짧게 느껴질 밤은 부엉이에겐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새장에 죽어있던 부엉이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한 날개는 새장 상부에 걸쳐져 있고 하나는 밑으로 축 늘어진 상태. 몸부림을 친 것 같은 모습. 새장은 그런 존재다. 누구에겐 보호소. 천국. 아늑함. 누군가에겐 지옥. 고통. 그 자체.
새장은 만들어진 것이다. 손수 만들었다. 새장을 누군가 만들어 놓고 들어가라고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의적이다. 자의로 만들었다. 자의로 들어갔다. 자의로 걸어잠구었다. 열쇠는 자신만이 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모든 새장은 정말로 타인에 의해 형성되지 않는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새장은 저 멀리 있다. 그 새장으로 걸어 들어갔다면 걸어 들어간 자의가 있었다. 속단할 수 없지만 그리고 일반화시킬 수 없지만 분명 깊고 더 깊은 자신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 무의식의 영역까지 갈 수만 있다면 새장은 본인의 것이다. 부엉이가 죽은 것은 우리 가족이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새장에 누구도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살인이다. 자신의 새장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 들어가려 할 수 있다. 밥도 있고 물도 있어 아늑해 보일 테니까. 자신이 지은 새장은 자신의 것이다. 나가는 열쇠도 나가는 방법도 들어오는 방법도 부시는 방법도 모두 자신의 것이다. 타자의 것으로 돌리는 것은 멍청함만 인증할 뿐이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만든 것인지 알아야 하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자신만이 안다. 그에 필요한 것은 관조.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견디고 견뎌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거울을 보고 자신을 뜯어보아야 한다.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고통이 끊임없이 올라올 것이다. 그걸 견뎌야 한다. 그걸 느껴야 한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새장을 알 수 있다.
새장. 사실 나무로 만든 창살이다. 그리고 열쇠로 걸어 잠겨진 입구도 없다. 새장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새장의 바깥은 무한의 세계다. 우주. 우주적 존재. 새장은 자신의 것이다. 타자에게 돌리지 마라. 자신의 것은 자신만이 알 수 있다. 끝없는 고독과 고립 그리고 무한한 인내심과 인고로 새장의 존재를 바꿀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다.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보자. 그리고 견디자. 그리고 다시 눈을 떠보자. 그러면 우주가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