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주: 죽기 살기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먹고살기 힘든 5, 60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던지는 삶과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입니다. 쌀장사로 20년을 살아온 제 경험과 느낌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보고 있습니다.
가제: 쌀장사 20년, 인생은 아름다워.
부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당신에게 -
글쓴이의 말:
이 글은 죽기 살기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살기 힘든 50~60대 자영업자 (또는 개업 예정자) 들에게 던지는 평화로운 삶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느닷없이 시작하게 된 쌀장사 20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수필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행복을 바라보는 눈을 재정립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추천:
영세 자영업자들과 자영업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
행복의 재발견을 원하는 분들.
-들어가는 말
부제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따왔다. 시인 안도현은 자신의 저서 백석 평전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중에서 ‘높고’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문장이 되어버린다고 했다.
인생도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쓸쓸한 존재이다. 사람이 외롭고 쓸쓸하기만 할 뿐 높은 무엇이 없다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그저 외롭고 쓸쓸하기 만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각자의 마음속에 높은 무엇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외로움을 딛고 쓸쓸함을 이겨낼 수 있는 주체적인 인생을 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인생은 느닷없다. 때로는 황당하다. 인생은 우연으로 만들어진 집합체다. 처음에는 다 계획이 있었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인생은 본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흐를 수 있다. 존 레넌은 인생이란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우는 사이에 그것과는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연히 접어든 상인의 길에서 쌀장사로 이십 년 넘는 세월을 보냈다. 살아보니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많은 시련을 겪고 많은 상처를 입었다. 쉰을 넘기기 전까지 사는 것이 왜 이리도 힘들게 느껴지는지. 젊은 청춘이 너무도 허무하게 흘러갔다는 생각이 떠날 날이 없었다.
성공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읽었지만 결국 나는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이며, 사람은 외롭고 쓸쓸한 존재이지만 또한 높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피하지 않았다. 느닷없고 황당한 인생에 맞서 왔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특별히 남보다 나은 철학을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장사꾼으로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성공하지 못한 장사치로 살아오는 동안 의문이 들었다. 내 인생은 초라하기만 한가. 숫자로 내놓을 것 없는 인생은 부끄러운 삶인가. 자영업자에게 행복이란 머나먼 다른 나라 이야기인가. 영화 국제시장에서 배우 황정민이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나 진짜 힘들었어요.” 하면서 울먹이는 장면에서 나도 같이 울었다.
쉰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쌀을 파는 일이 천직으로 느껴졌다. 언젠가부터 세상 살아가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공자는 태산에 올라서야 노나라가 작음을 알았다고 했다. 나는 장사 20년 만에야 비로소 태산에 올랐다.
나는 딱히 취미가 없다. 늦게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일을 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일이 끝나면 늦은 저녁을 먹고 책을 몇 줄 본다. 예전에 읽었던 아주 오래된 책들을 아무거나 고른다. 한 줄씩 읽다 보면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포근해지고 마음이 풀어진다. 졸리기 시작한다. 스멀스멀 잠이 몰려오면 책을 들고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어떤 때는 몇 줄 넘기지도 못하고 불도 끄지 못한 채 잠들기 일쑤다.
언젠가부터 마음 한 구석에서 자영업자의 삶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욕구가 일기 시작했다. 고단한 자영업자들이 잊어버리고 산지 오래되었지만, 일상에서 우리 곁에 늘 함께 하는 행복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책을 써 보고 싶은 열망은 이오덕 선생의 ‘와, 쓸거리도 많네.’를 읽고 더 강렬해졌다. 책은 선생이 시골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아이들의 글쓰기를 지도했던 내용이다. 책에는 8, 90년대 시골아이들의 눈으로 본 순수한 세상이 펼쳐져 있다.
서문에 이오덕 선생께서 직접 다신 머리말이 있다.
“나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이건 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대로 적었는 걸”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서는 글이 저절로 쓰고 싶어질 것입니다.”
책을 읽은 뒤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처럼 나도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강한 욕구가 일기 시작했다. 유별날 것 없는 인생을 살아온 나도 글을 써보자고 하는 마음이 강렬해졌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안개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다가 어느 순간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고단한 우리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더구나 책 속에서 같이 뛰어놀던 시골아이들도 나와 비슷한 어른이 되었다.
어느 듯 오십 대가 된 우리들의 인생에도 위로가 필요하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인생들에게 조그만 위로를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삶을 회피하지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맞섰다. 묵직한 긍정의 마음이다. 글을 쓰는 도중에 삶의 굽이굽이를 회상하면서 슬프고도 아름다웠던 추억을 불러온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와의 대화에 충만한 행복을 느꼈다.
코로나로 경기가 엉망이 된 지 오래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못살겠다고 길바닥에 식기를 엎고 아우성이다. 이 글이 독자들의 마음에 “어? 나보다 힘든 상황인데도 나보다 긍정적인 마음이네?”, “이런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군.” 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참 다행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