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그 아이를 바라보다, 나를 마주하다
이제는 계획이 아닌, 아이의 시간에 발을 맞추며
그 앞에 조용히 서 있으려 한다.
민들레 한 송이, 아이를 떠올리다
도심의 거친 보도블록 틈 사이,
누구의 시선도 기대하지 않은 채 조용히 피어난 민들레 한 송이.
햇살을 뚫고 단단히 버텨낸 그 꽃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흐름을 따라 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풀잎도, 꽃도, 사람도—함께 어우러지며 자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는 그 흐름에서 한참 비껴선 곳에 서 있었습니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자기만의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습니다.
그 아이의 눈빛을 외면한 이유
밖에 나가길 거부했고,
사람을 마주하는 것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그 눈빛엔
내일을 향한 기대도,
오늘을 살아내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눈빛을 외면했습니다.
사실은, 그 안에 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삶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어느 날,
나는 조용히 주저앉았고,
세상을 피해 잎을 오므린 풀잎처럼
햇살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말아쥐었습니다.
아빠의 부재, 아이의 무너짐
그 무렵, 아이의 아빠는 사업 실패로 시댁에 내려가
섬 지역에서 가족 일을 도우며 지내게 되었고,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도시에 남아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아빠의 부재는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큰 구멍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이사를 다니게 되었고,
새로 전학 간 학교는 아이를 선뜻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유 없는 거리감과 외면 속에서
아이는 외톨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번째 전학지에서 폭행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은 한동안 나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말이 없었고, 나는 늘 바빴습니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엔
내 하루는 너무 외롭고 고단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루는 아이의 몸의 친구들을 만나서 아이의
학교 생활을 물으면서 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아이 편에서 잘못이 없다고 말해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그날 아이는 한 친구들에게 심하게 맞았고,
순간적으로 기절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아이에게만 벌을 주었고,
반 친구들 대부분은 가해자 편에 섰다 했습니다.
단 세 명의 아이만이 조용히 아이 곁을 지켜주었고,
흘려버린 시간 속에 감추어진 순간을 전해 주었습니다.
나는 분노를 안고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 부모는 오히려 우리 아이를 탓하며 비웃었습니다.
그 뻔뻔한 태도에 치밀던 분노는
이내 죄책감으로 변했습니다.
아이가 그런 고통을 겪고 있었음을…
나는 몰랐습니다.
아니,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릅니다.
부재한 아빠, 무심한 엄마,
돌봐야 했던 동생.
그 어린 어깨에 얹힌 현실은
한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찼습니다.
아이는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필요했던 건
무거운 책임이 아니라,
따뜻한 품과 다정한 눈빛,
지켜줄 울타리와 믿어주는 마음이었습니다.
조용한 빛, 그 아이의 자리에서
시간이 흘러 아이의 학년이 바뀌고,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혹시 학교 신문 보셨어요?”
못 봤다고 하자,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아이가 질문을 하면, 문제의 첫마디만 듣고도 손을 들어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정말 맞추더라고요.
정확하고, 집중력이 대단해요.”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내 계획과 기대 속에만 가두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상처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묻혔고
나는 미래를 위한다는 이유로
숨 쉴 틈도 없이 학원과 계획으로 하루를 채웠습니다.
그게 최선이라 믿었지만,
지금은 압니다.
보호받지 못한 채 세상에 노출된 풀잎 같은 시간이었음을.
따가운 햇살도, 거센 바람도, 낯선 소리도
혼자 견뎌야 했던 세상이
아이의 마음을 얼마나 무겁게 했는지를.
그리고 결국,
그 아이는 조용히…
문을 닫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닫힌 문 앞에 서서야
나는 비로소 그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닫힌 문 앞에 선 엄마의 고백
더는 방법이 없다고 느껴지던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아이를 내 계획이 아닌, 아이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아이의 마음 앞에 조용히 서 있습니다.
이제라도 닫힌 문을 두드리기 위해,
나의 사랑을 되묻기 위해,
다시… 아이의 눈을 바라보기 위해.
민들레는 바람을 타고 씨앗을 날립니다.
내년의 햇살 아래에서 다시 피어나기 위해,
솜털 같은 자신을 하늘로 띄웁니다.
그 민들레처럼—
우리 아이도 언젠가 다시 피어나기를.
지금은 멀게만 느껴져도
그날이 반드시 올 거라는 믿음 하나로,
나는 오늘도 그 앞에 조용히 머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