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잡초가 아니라 야생초였습니다.
‘잡초’가 아닌 ‘야생초’였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조용히 피어나는 아이의 삶을
더는 흔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야생초, 나의 아이에게
사람들의 발걸음을 피해 다소곳이 싹을 틔운 작은 풀 한 포기를 봅니다.
작은 틈새로 쌓인 작은 흙무더기 사이로 조용히 얼굴을 내밀고, 누구의 시선도
기대지 않은 채 꽃을 피워낸 들꽃.
세상이 몰라 줘도, 거센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몸을 지탱하며 묵묵히 자기 몫의 삶을 살아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들꽃을 '잡초'라 부릅니다.
보살핌도, 시선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저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그 들꽃의 모습에서 보이는 아이,
조용히 피어나는 존재.
흔들리지만 꺾이지 않는,
세상 끝에 홀로 선 작은 생명.
나도…
그 아이를 '잡초'처럼 여겨왔던 건 아니었을까요.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말합니다.
조금 느리면 ‘게으르다’ 하고,
조용하면 ‘무기력하다’고.
혼자 있는 아이에게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이름을 쉽게 붙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차가운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믿었고,
그래야만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다그쳤습니다.
"밖에 나가보자", "친구들과 어울려야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세상 속으로 끌어내려했습니다.
흔들리는 엄마
친구들이 말합니다.
“너희 아들… 괜찮아? 뭐라도 시켜야 하지 않아?”
위로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는 말들.
그들의 걱정은 때때로 내 판단까지 흔들었습니다.
분명 아이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해졌고,
‘지금 놓치면 아이는 다시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아이를 ‘잡초’라고 단정 짓고,
‘살아남으려면 화단에 옮겨 심어야 한다’며
그 닫힌 문을 억지로 열려했습니다.
그 순간—
바닥에 떨어진 노트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심코 주워 펼친 그 노트 속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문장이 반복되어 있었습니다.
> “나는 싫다.
세상으로 나가는 게.
그렇지만… 살고 싶다, 친구들처럼.
엄마… 미안해.”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혔습니다.
아이는 멈춰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조용히, 스스로를 탓하며
세상과의 거리를 감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마음 너머
아이는 늘 아빠의 부재를 슬퍼하면서도
그 마음조차 조심스레 품고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 혼자라 너무 힘들겠어요.”
그러던 아이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왜?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있잖아.”
그러자 아이가 조용히 말했지요.
“가족은… 우리잖아.”
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고통만이 아니라
떨어져 있는 가족의 마음까지
조용히 감싸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마음은 마치—
시멘트 바닥을 비집고 올라와
초록의 잎을 내민 들꽃의 뿌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묵묵히 세상을 정화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야생초였습니다
그 아이는 한 번도
문제아였던 적이 없습니다.
단지…
다른 계절에 피는 꽃이었을 뿐입니다.
봄에 피지 않는다고,
그 꽃이 틀린 것은 아니듯.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요.”
그 짧은 말 한마디를 남기고, 아이는 조용히 문을 닫았습니다.
거절도, 감정 표현도 없이.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를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했던
나의 시선과 판단이었습니다.
‘잡초’가 아닌 ‘야생초’로
‘잡초’는 뽑아야 할 존재처럼 여겨지지만,
‘야생초’는 지켜봐야 할 존재가 됩니다.
이름 하나, 시선 하나가 달라질 뿐인데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요.
그래서 이제는
문을 닫은 아이가 아니라,
자기만의 세계를 조용히 준비 중인 존재로
아이를 바라보기로 했습니다.
다그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재촉하지도, 밀어붙이지도 않기로요.
그저 조용히, 아이 곁에 머무르기로 했습니다.
기다림의 온도
아이의 작은 동선, 살며시 들려오는 인기척,
그 모든 것이 ‘살아가고 있는 숨결’ 임을 알기에
이제는 그 흐름에 맞춰, 조용히 지켜보려 합니다.
세상이 두려워 문을 닫는 선택이든,
두려움을 안고 다시 나아가려는 선택이든—
그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는 용기라는 걸 이제야 이해합니다.
영원히 닫힌 문은 없으니까요.
언젠가 아이도, 자기만의 속도로
세상으로 걸어 나올 날이 오겠죠.
저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을 겁니다.
흔들림 없이, 따뜻하게.
그 아이만의 계절이 피어나길 기다리며.
야생초처럼 피어나는 아이의 삶을
그저 조용히 응원하며 바라보는 엄마이고 싶습니다.
다름을 껴안는 사랑으로, 조용한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삶을 살아내는 속도는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믿습니다.
문을 닫은 그 아이 역시, 자신의 시간에 맞춰 다시 피어날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