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은 건, 나였습니다

3편-겨울을 지나, 매화는 피었습니다

by 윤서

사랑이 본연의 빛을 잃고, 그림자가 드리울 때

— 나는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너무 늦게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주려던 사랑이, 아이의 마음을 무너뜨렸다는 걸.



매화처럼 피어나지 못했던 아이의 시간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는 얼어붙은 겨울 땅속에서도 햇살과 수분을 품고 단아하게,

고요히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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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자아로 자라기 위해선 가정의 따뜻한

품과 절제된 규칙,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만의 속도로 피어날 수 있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우렁찼던 첫울음도, 세상에 첫발을 내딛으며 웃던 그 얼굴도

어느새 기억의 어둠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무너진 건 아이가 아니라, 우리였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 속에 잘못은 아이에게 없었습니다.


매화가 거친 바람에도 조용히 피어나듯, 아이에게도 세상을 견뎌낼 넉넉한 마음의 공간을

마련해주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계속된 아빠의 실패,

그 안에서 함께 무너져가던 가족.

하루를 견디는 것에만 급급했던 나날들.


그 사이, 아이는 조용히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이, 가장 먼저 자신을 닫아버렸습니다.



그 사랑은, 아이의 마음을 닫았습니다


"충분히 사랑했다고." "우리 여건 안에서 줄 수 있는 건 다 주었다고."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한 조용한 자기 합리화였을지도

모릅니다.


보드라웠던 작은 손은 어느새 주먹을 꼭 쥐게 되었고, 해맑던 웃음은 입술 끝에 고인

슬픔으로 변했습니다.


아이는 더 이상 우리를 바라보지 않았고, 그 눈동자 속엔 우리가 비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늦게야 깨달았을 때— 아이의 마음은 이미 단단히 닫혀 있었습니다.



500만 원이라는 청구서


나는 계속되는 아이의 외면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극적인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아이를 밀어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우체통을 열다 전화요금 고지서를 보게 되었습니다.


금액은 500만 원.


게임을 하려고 했던 아이의 전화 결제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숫자였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나는 아이의 방문을 열며 소리쳤습니다.


"도대체 너는 왜 그러니."


그 순간,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습니다.


"나는 필요 없으니까… 없어질게요."


나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500만 원이라는 청구서는, 결국 방치되었던 아이의 시간을 대신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주지 못한 사랑, 우리가 놓쳐버린 이해와 기다림.


그 금액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놓쳐버린 시간의 기록이었습니다.



나는, 아이 앞에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들아..." 조용히 불렀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조용히,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놀란 듯 동그랗게 뜬 두 눈에 나의 모습이 고요히 비쳤습니다.


"엄마, 왜 그래요..."


"미안해."


그 말 뒤로 흐른 짧은 침묵. 공기마저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나는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아이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바지자락을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습니다.


그 눈빛 속엔 아직 다 받아들이지 못한 마음의 떨림이 살며시 숨겨져 있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탓도, 상황의 이유도 내려놓고 그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웃고, 게임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조용히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의 마음 한가운데 '가족'이라는 단어를 다시 천천히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사랑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까


내 말이 아이의 마음에 닿기를. 내 기다림이 아이의 시간 속에 스며들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잠시 멈춘 시간 속에 함께 머물렀고, 아이의 속도에 발맞춰 조용히 걸었습니다.


오늘, 나는 그 하루가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아이의 마음에 온기로 얼어붙은 시간을 녹여주어야 할 때니까요.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봄의 시작을 알리며 피어나는 매화처럼— 언젠가 아이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어나고, 스스로 현관문을 열고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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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루의 용기 하나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마음속에 심어주려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겨울을 견디고 꽃을 피운 매화처럼, 아이의 아픔도 조용히 흩날리고 그 마음 깊은 곳에 작고 단단한 희망 하나가 열매처럼 맺히기를.


그 열매가 자라, 아이만의 계절이 시작되기를.




사랑이 늘 옳은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더군요.

진심이라 믿었던 내 마음이, 아이에겐 상처의 그림자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보다 침묵으로, 이끌기보다 곁에 머무름으로—

아이의 속도에 맞춰 걷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이의 계절이 다시 피어나듯,

나 역시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봄 하나를 피워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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