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의 문 - 6화

나 좀 내버려 둬

by 벙긋 웃는 문혜력

혜운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낮은 숨소리만이 감돌았다. 김여사는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었고, 다른 사람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잠깐 전만 해도 누군가 다녀간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방문자는 이미 떠나버린 것일까?

혜운은 허탈하게 서 있었다. 자신이 뭘 바라고 허둥지둥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건지 한심하게 느껴졌다. 눈앞이 흐려졌다. 김여사가 혹시 깰까 봐, 그는 황급히 눈물을 삼키며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그 순간, 여울에 대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울컥거림이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올랐다. 뜨겁게 차오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턱 끝에서 뚝뚝 떨어졌다. 혜운은 숨이 막혀 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 여울의 집을 그대로 뛰쳐나왔다.

“데려다줄게. 잠깐 기다려, 혜윤아.”
어디선가 여울의 목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뒤를 돌아봤지만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도 생생해,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다시 집을 향해 마구 달려갔다.

모퉁이를 돌려는 찰나, 반대편 모퉁이에서 두 사람이 보였다. 마소야와 지장진이었다. 둘은 어딘가를 두리번거리며 이 동네를 탐색하듯 걸어가고 있었다.

“이야~ 이런 동네에서 어떻게 사냐? 떡볶이 꼭 먹어야 돼?” 지장진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응, 수인이네 떡볶이 집이니까. 내겐 특별한 곳이야. 싫음 가든가. 아, 여기 꼬맹이 서혜윤이 사는 동네가 궁금하다며?” 마소야가 느긋하게 대꾸했다.

그 순간, 마침 골목 안에서 나온 혜윤이와 지장진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아, 죄송합니다.” 혜윤은 엉겁결에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지장진이 재빨리 그녀의 팔을 잡았다.

“어이구, 이게 누구야? 우리 혜윤이 아니신가? 아고, 여기서 왜 울고 계셔? 오빠한테 말 좀 해봐.”
지장진의 억지스러운 친근함이 오히려 더 불쾌했다. 혜윤은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소야는 눈살을 찌푸리며 “얼씨구, 잘해봐. 나는 떡볶이 먹으러 간다.” 하더니 시큰둥하게 자리를 떴다. 혜윤은 그 틈을 타 빠져나가려 했지만 지장진은 집요했다. 그는 품에서 향수냄새가 짙은 손수건을 꺼내 들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혜윤의 눈가에 대려 했다.

“자, 울지 마. 이 오빠가 족보파일 갖고 왔는데, 이거 받고 울음도 뚝 멈출까?”
그의 손가락이 혜윤의 뺨에 닿으려는 순간, 혜윤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며 “아니에요. 나중에 주세요.”라고 거절했다.

그때, 멀리서 귀가하던 동현과 전청이 이 장면을 목격했다.
“소름… 저 자식 지금 뭐 하려는 거야?” 동현이 이를 악물었다.
“가만있어봐. 점점 재밌어지는 걸?” 전청이 말렸지만, 동현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스토리고 뭐고 저 개수작은 못 봐주겠다.”
그는 전청의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달려 나갔다.

“분위기 좋은 데 가서 오빠가 맛있는 술 사줄게.” 지장진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혜윤을 붙잡은 순간, 동현이 그의 팔을 거칠게 잡아챘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와, 이렇게 족보까지 챙겨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혜윤아, 엄마가 찾으셔.”
동현은 일부러 공손한 척하면서도 단호하게 끼어들어 분위기를 끊어냈다.

“뭐야, 네가 뭔데 감히 끼어들어?” 지장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술 드신 건 아니죠, 선배님?” 갑자기 나타난 전청이 장진의 손목을 붙잡아 상황을 막아섰다.

“혜윤아, 가자.”
그 틈을 타 동현이 혜윤의 손을 잡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전청은 남아서 지장진을 똑바로 노려보며 낮게 말했다.
“제가 한 잔 사드릴까요? 가까운데 펍이 있거든요.”

장준은 대꾸 대신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흘리더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기사를 불렀다.
“흥. 더 볼 것도 없네. 야, 그 ‘차떡김라’인지 뭔가 하는 분식집이 어디 있는지나 말해.”

그때, 검은색 고급 세단이 조용히 다가왔다. 대답도 듣기 전에 지장진은 스르륵 다가온 차의 뒷좌석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차는 수인이네 떡볶이 가게 '차떡김라' 방향으로 정확히 방향을 틀었다.

전청은 혼자 중얼거렸다.

"참 제멋대로네."

전청은 쓴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전청과 동현이 말없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혜윤의 뒷모습을 보고 손을 들어 인사를 표시했다. 그런 그들을 누군가 혜윤의 맞은편 벽에 붙어 지켜보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간 혜윤은 먼발치까지 멀어진 동현과 전청을 확인하자마자 무언가에 홀린 듯 옥상으로 올라갔다.




같은 시각, 마소야는 '차떡김라'의 긴 웨이팅 줄에 입을 틀어막고 혼자 중얼거렸다.

"대박! 역시 나는 보는 눈이 있다니까!"



작은 분식점 안에서 두 남자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살피며 그중에 수인을 찾으려 그녀의 눈동자는 바빴다.

"찾았다!"

마소야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수인과 눈이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수인은 가벼운 목례만 하고 다시 분주히 주방과 홀을 오갔다.

"드디어 내 차례구나!"

기다림 끝에 마소야가 가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랑하는 고객님들,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재료가 소진됐어요."라고 소리치는 수인의 가슴팍에 그녀가 부딪쳐 버렸다.

"어, 괜찮으세요?"

놀라서 수인이 그녀의 안색을 살피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자 마소야는 수인의 목소리가 가슴속을 울리는 것 같아 기절할 것만 같았다.

"어, 조금! 머리에 충격이 조금 온 것 같아! 단단한 가슴에 머리가 충돌했잖니."

마소야는 엄살을 부리며 수인의 팔에 매달렸다.

"뭐야, 저 여자는? 어디 아픈가?"

줄 서 있던 인근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수인에게 부축받아 가게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그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그때, 검은 세단이 가게 앞으로 무대보로 정차를 하더니 지장진이 마소야에게 소리쳤다.

"소야! 빨리 타! 회장님이 찾으신대."

"아빠가? 하필 이런 때... 수인, 나 좀 괜찮아진 것 같아. 나중에 과사에서 보자."

마소야는 아쉬운 듯 뒷좌석 지장진 옆에 올라탔다.

"소야? 말이야?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가게에 들어가지 못한 여학생들은 마소야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옥상으로 올라가 한참을 멍하게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혜윤은 그대로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녀의 집과 측면으로 서있는 전신주 뒤로 자리를 옮긴 검정모자를 눌러쓴 그림자 하나가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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