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의 문 - 7화

너도 소중해

by 벙긋 웃는 문혜력


혜윤은 옥상 난간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숨 막히도록 깊은 여름밤, 별빛은 흐릿하고, 도시의 불빛만이 빛나는 캔버스처럼 번져 있었다.

“여울아…”
지장준같은 왕날파리 같은 인간과의 짧지만 그녀에겐 끔찍한 실랑이로 진이 다 빠져버린 혜운이었기에, 여울의 이름이 입술 사이로 저절로 흘러나왔다.
차오르는 그리움이 혜윤의 가슴을 에웠다. 친구이자 짝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다정했던 여울이 정말 보고 싶었다.

그때였다.
전신주 뒤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스르르 기어 나왔다.
그림자가 불빛에 모습을 드러내자, 여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혜운의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여울아, 살아있었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혜윤은 여울의 집에서 자신이 들은 소리가 환청이 아니었다고 확신했다.

'그 목소리... 분명 여울의 것이었어.'
그녀는 그의 얼굴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운 얼굴... 눈앞에 마주했는데 그는 말이 없다. 가슴이 에어 오는 듯했다. 허상이라고 해도 쫓고 싶었다. 누가 뭐라 하든 그녀는 여울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울이 있는 곳이라면, 설령 죽음이라도—'
그녀는 어느새 그를 더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몸을 난간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여울아… 거기 여울 맞지?”

휘청,
몸이 허공으로 떨어져 나갔다.
속도에 의한 바람이 얼굴을 훑고, 별빛인지 불빛인지 모를 빛을 온몸에 두르고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진짜 아주 잠 깐 만이야."

여울의 얼굴을 놓칠까 봐 눈을 깜박이면 안 되었지만 겁이 난 혜윤은 눈을 꼭 감았다. 떨어졌나? 부딪칠 때가 되었는데?

눈을 떴다. 아픈 곳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여울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눈앞은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고즈넉한 덕수궁 돌담길.

달빛이 덕수궁의 고운 돌담에 은은히 내려앉고, 담벼락 따라 늘어선 은행나무 잎이 황금빛 바람에 흔들렸다.

"여울아?"

여울의 이름을 부르며 우두커니 서 있는 혜윤은 이게 꿈 속인가 싶었다.
밤 산책을 즐기는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처럼 지나갔다.

여울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혜윤은 자신이 헛것을 보았다면,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양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착착착 때리면서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가방이 없으니 차비라도 빌려야 하는 거 아니야?"

마침 혜윤의 방향으로 유모차를 밀며 걸어오고 있는 젊고 인상 좋은 부부가 혜윤의 눈에 들어왔다. 혜윤이 그들과 눈이 마주치길 바랐지만, 부부의 시선은 유모차 속 여자아이에게 온통 쏠려 있었다.




“우리 딸, 정말 오래 기다려 어렵게 얻은 아이잖아.”
“우리 인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삶의 첫 번째 이유지.”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길도 지독하게 걸어낼 거야.”

부부의 대화는 따뜻하고 간절했다.
혜윤은 그들의 대화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시선을 천천히 유모차에 앉은 아이에게 옮겼다.

소사! 아기는 혜윤자신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던 엄마아빠의 사진 한 장을 떠올렸다.
유모차에 타고 있는 어린 혜윤이 혜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

혜운의 동공과 심장이 요동쳤다.
'너의 존재가 엄마아빠에게 이렇게 소중한데, 너는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어린아이의 다부진 말소리가 혜윤의 귓속으로 쏙 들어왔다.
"맞아! 정신이 어떻게 됐었나 봐."

떨어졌지만 의식이 있다는 게 다행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꽉!

억세고 민첩한 손이 그녀의 팔을 움켜쥐어 옥상 난간 안쪽으로 낚아채었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린 혜윤은 자신이 여전히 옥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히 여울이었는데. 울 엄마아빠는 또 어디 계시지?"

부드러운 여름바람이 그녀의 목덜미의 식은땀을 훑었다.

혜윤은 아쉬움과 안도 속에 주위를 살피다 여전히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있는 사람 쪽을 돌아보았다. 빠져나갈 수 없는 남자의 강한 손아귀의 주인공은 수인이었다. 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혜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혜윤과 눈이 마주 치자마자수인은 이내 신경질을 부렸다.

"큰 일 날 뻔했잖아! 아주 잘하는 짓이다, 엉? 내가 너 때문에 퇴근도 편하게 못해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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