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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Feb 04. 2022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나는 죄 많은 며느리입니다.


“어제 신랑이랑 시댁 때문에 너무너무 열 받는 거야! 그래서 망치로 그릇을 깨부수려고 막 두드렸지! 그런데 이놈의 그릇이 잘 안 깨지는 거야! 더 열 받는 거 있지! 안 그래도 손목에 힘이 없는데! 여튼 끝까지 깨부숴버렸어! 속이 시원하더라.”     

결혼한 지 2년 정도 되었을 때다. 그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웃음도 나고 걱정도 되었다. 망치로 그릇을 깨다니 생각지도 못한 신박한 화 표출인데? 그런데 이렇게 스트레스를 풀어도 되는 걸까?      


그 친구와 나는 결혼도 한 달 차, 출산도 한 달 차로 통하는 게 많았다. 친구는 나와 달리 자기표현도 잘하고 항상 텐션이 높았다. 기분이 좋을 때도 기분이 나쁠 때도. 나와 다른 그 친구가 나는 너무 좋았다. 누구보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현실적인 조언도 해주는 똑똑한 친구였다.


그런데 점점 친구에게 나의 속 이야기를 안 하게 되었다. 아니 못하게 되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 시궁창으로 내몰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화가 날 때마다 이 친구를 습관처럼 찾았었다. 내가 풀지도 못하는 화를 자꾸 친구에게 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친구와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친구마저 시궁창으로 몰고 가면 안되었다. 수다로는 마음이 치유되지 않았다. 좀 더 유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친구는 상담소를 가고 신경과를 찾아갔다. 나는 그런 용기가 없었다. 자기 내면을 털어내고 적극적으로 치유받는 그 친구가 부러웠다.

“나 오늘 너무 신경질 난다. 내 말 좀 들어봐!”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지금 너무 흥분했지? 그러고 보니... 오늘 약 안 먹었네.” 친구가 말한다. 웃음이 났다.

 



 어김없이 신랑은 회식으로 늦었다.

나는 아기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마음 한편이 너무 무거웠다.

‘들어가기 싫다.’

집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블랙홀로 빠질 것 같았다. 아기를 안고 한참 아파트 주변을 걸어 다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 모습을 보았다. 거울을 깨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정말 못생겼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검은 그림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널브러진 장난감을 치웠다. 아기는 장난감을 마구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아기가 울 때 ‘으앙’하고 운다고 생각하겠지만 다 그렇지 않다. 믿을 수 없겠지만 우리 아기는 ‘악! 악! 악!’하고 울었다. 나는 그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왜 왜 도대체 뭐가 문제야” 너무 기진맥진했다.

“너 또 시작이야?” 우는 아기에겐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예민해서 조금만 뒤척이는 소리가 나도 빼액 운다. 새벽에 한참을 안아 달래 보아도 도저히 안 그쳐서 아기를 태우고 계속 드라이브도 해보았다. 

안 자고 안 먹고 안 누는 아기… 엄마는 속이 탔다.




“엄마는 큰데 아기는 왜 이렇게 작아요?”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만나는 사람마다 질문을 했다. 사소하게 뱉는 이런 말들은 내 마음의 부담을 더 가중시켰다. 첫째는 영유아 검진 때마다 항상 키와 몸무게가 10프로 미만이었다. 작은 아이였다.

아기가 작은 게 내가 뭘 제대로 안 먹여서 그런가 싶어 시어머니는 매일같이 아기를 보러 오셨다. 불편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한 아주머니가 탔다. 

‘어머나 글마 잘생겼네! 아들이지예?’ 

‘아.. ' 내가 대답하려 하자 

"네 아들입니다" 시어머니가 재빨리 대답하신다. 

"참말로 똑똑하게 자알 생깄네예"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보골 나네. 아들이든 말든 지가 무신 상관이고. 며느리 너도 일일이 딸이라고 대꾸할 필요읍따. 알긋제?"    


‘아기가 작은 것도, 딸인것도, 그 무슨 상관이고, 니가 고생이 많다. 잘하고 있다' 

이 말이 듣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작은 아기를 낳았다. 나는 딸을 낳았다. 나는 죄 많은 며느리였다.      



친구야... 너의 신박한 화풀이 방법, 나도 한번 흉내라도 내고 싶어. 근데 나 할 수 있을까? 망치를 들 용기조차 없는 걸... 망치를 찾을 힘조차 없는걸... 

너의 위로가 듣고싶다. 나 대신 화내 주는 네 목소리가 듣고 싶다. 그런데 전화를 못하겠어. 내 귀는 커지고 내 입은 사라졌어.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가고 있어. 





* 무려 10년도 더 전의 이야기. 꺼내지 못한 이야기. 지금은 더없이 좋은 이야기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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