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나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어김없이 아침이 왔다.
창가에 쏟아지는 햇살이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눈을 떴지만 일어날 힘은 없었다. 창밖으로 장례식장이 보였다.
‘왜 하필...’
‘입원실 창가에 장례식장이 보이다니...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곳이구나...’
급성 백혈병. 최악의 경우 나에게 선고될 죄명이었다.
‘나는 왜 아픈 걸까?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 애들이 생각이 났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열이 오르락내리락했고 몸이 계속 아팠다. 오늘은 꼭 병원을 가야지라고 생각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아이가 열이 나거나 칭얼대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왜 나는 내 몸을 아껴주지 않은걸까. 출근 전 잠시 들린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했다. 그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석고대죄를 하는 듯 참기 힘든 긴 시간이었다.
혈액검사 결과는 ‘강제입원’.
집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해도 의사의 도리로 보낼 수 없다고 했다. 염증수치와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아서 이대로 귀가조치 후 큰일이 생길수도 있음을 강조했다.
나는 궁지에 빠졌다. 갑자기 해야 할 모든 일을 놓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입원은 일상의 멈춤이자 내 삶의 멈춤이었다. 아이들과 일을 빼고 나니 나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평소 나는 건강하고 밝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아프기 전의 기억은 모두 잊고 싶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혼자 착각했을 뿐이었다.
항생제가 내 몸을 타고 들어왔다. 시원하면서도 아팠다. 더 아픈 건 내가 이렇게 아프다는 걸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죽음에 대하여. 누구나 자신이 태어난 걸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태어날 때 울었던 기억도 없다. 죽음은 기정사실이다. 나는 죽음 앞에서 웃을 수 있을까? 적어도 내팽겨치듯 죽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슬펐다.
나는 왜 아픈 걸까? 알 수 없다고 했다. 특별히 질병이 발견된 것이 아니라서 더 불안했다.
“그거 패혈증이잖아. 수술 후에 부작용으로 생기는 거 그거. 몰라? ”
앞 침대에 50대 정도 되신 아주머니가 불쑥 말을 건넸다.
“네. 처음 듣네요.”
재수 좋으면 급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나지만 재수 나쁘면 패혈증이라 보험금도 못 받는다고 막말을 쏟아붓는다. 걱정은 되지만 왠지 그 아주머니의 말처럼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병원을 전국구로 다니시는 듯했다. 머리가 아파서 입원하셨다는 데 정말 아픈 분 맞나 싶을 정도로 신나게 떠들었다. 나도 모르게 내 얘기도 하고 있었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 자꾸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면 본인이 병을 만드는 거야. 나처럼.”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입원한 지 삼일차 만에 그분은 말짱한 모습으로 퇴원하셨다.
나는 어쩌면 내가 병을 키운 것은 아닐까. 없던 병을 만들 만큼 나는 스스로를 죽이고 있었던 걸까. 출산 외에는 입원 한번 안 해본 내가 특별한 질병도 없이 왜 입원을 하고 있는 걸까.
‘항생제가 잘 들어서 염증 수치와 백혈구 수치가 많이 낮아졌어요. 다행이에요.’
의사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웃을 힘이 없었다.
다행인 걸까? 이 상태로 다시 돌아가면 또 도돌이표 같은 인생을 살지 않을까?
결혼하고 출산하고 일하고 육아하면서 ‘나’를 돌보지 못했다. ‘나’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있었다. 그렇게 ‘나’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들을 무시했다. 그렇게 나를 가장 하위에 두었다. 나를 버려두었다. 그런 나는 아프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나를 서서히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판결이 났다. 땅땅땅.
'살인미수'
나를 죽일뻔 한 건 바로 나였다. 그 누구도 무엇도 아니다.
다시 살고 싶은가? 어떻게 살겠는가?
병원을 나오면서 다짐을 했다.
'언젠가 죽음앞에 선다면 나는 나에게 절대 미안해하지 않을거야'
장례식장을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