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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리를 찾아서 Apr 30. 2023

제 성을 갈겠습니다.

2004년 고모 집에서 가출 할 때 였다.

이때 우연치 않게 이모가 고모 집으로 찾아왔고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이모 집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당시 14살 이었다.


이모가 찾아 오지 않았으면 영낙없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큰 삼촌네 집으로 옮겨질 뻔 했다.

삼촌 부부는 할아버지 할머니 외에도 2명의 딸들이 있었고 말하지 않아도 생활고로 허덕이고 있었다.


내가 그 집에 가서 살게 되면 눈치밥을 먹으면서 차별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했고 이모도 이러한 상황을 알고 나를 본인 집으로 데려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얼마정도 지내던 중 이모부와 이모가 나를 불러 앉히고 앞으로 장래를 위해 나의 성씨를 이모부의 성으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한국도 그렇지만 특히 보수적인 북한에서 성을 바꾸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어찌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타인의 본을 따른단 말인가...하지만 나의 사정은 달랐다.

미래가 창창한 10대 중반 청년에게..특히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살아 계셔도 만날 수 조차 없는 나에게 아버지의 본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음날 곧바로 할아버지를 뵈로 친가로 향했다.

이런 저런 사정들을 말씀드리고 '할아버지 그래서 제 성을 바꿀까 합니다. 허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얘기였을 것이다.

우리 친가는 아버지를 포함 아들 셋, 딸(고모) 이렇게 네 형제이다. 고모를 제외하고 삼촌 둘은 각 딸만 두명씩이다. 박씨 성의 대를 이을 사람은 나 뿐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성을 갈은다니..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한참동안 담배를 태우시던 할아버지가 '그래, 내가 살아보니 본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더라. 그런 본이 너에게 문제 된다면 갈아도 된다.' 라고 하시면서 눈물을 보이셨다.


어찌보면 피줄 하나를 잃은 것 같으셨을까...

당신보다 먼저 떠난 큰 아들에 대한 용서였을까...

아니면 손주 얼굴에서 그 아비의 모습을 애써 찾지 못하셨던 것일까


할아버지 그때 그렇게 힘없이 무기력한 모습이어서 그랬는지

손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의 그 무엇이었는지...결국 나는 성을 바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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