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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민 Dec 30. 2022

거스 히딩크의 민낯

김형민의 축사(축구와 사람) #1 

축구 지도자는 성적으로 평가 받는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그런 면에서 거스 히딩크는 우리 축구에서 절대적인 영웅이다. 맞다. 월드컵 4강 진출은 어정쩡한 실력으론 이뤄낼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히딩크는 우리나라에서 사실 추앙 받았다. 피겨여왕 김연아 등이 갖는 '까방권'도 그에게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느꼈다. 그런데. 그의 민낯을 알게 된 사건 하나가 있었다. 


2017년 9월초였던 것 같다. 당시 우리 축구대표팀은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이 걸려 있는 아시아최종예선 잔여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경기력도, 상대와의 전적도, 현재 순위도 불안해 비판 받았다. 그러다 히딩크 감독이 울리 슈틸리케 전임 감독이 사임할 당시 우리 대표팀 사령탑을 맡을 의향이 있다고 대한축구협회에 전달했다는 소식이 나와 논란이 됐다. 당장 히딩크 감독을 모셔 와야 한다며 국민 여론이 들끓었다. 신태용 현행 감독은 수석코치로 물러나 히딩크에게 한 수 배우라는 식이었다. 


취재는 해야겠는데 도저히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히딩크를 만나긴 하늘의 별따기. 나름 히딩크 측근이라고 하는 이용수 당시 세종대 교수는 나와 통화하며 "처음 들은 이야기다. 나도 확인해봐야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무작정 히딩크재단 사무실을 갔다.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사무실은 열려 있었다.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다.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처럼 사무실 곳곳을 살펴서 중요 문건을 찾아낼 용기는 없었다. 그랬다간 경찰서에 신고라도 당하면 골치 아플 것 같았다. 그냥 사무실 책상에 있는 관계자 명함 하나를 들고 나왔다. 그리곤 그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 분이 좀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그게 사실은 히딩크 감독이 마르셀로 리피 중국대표팀 감독을 질투해서 일어난 사단"이라고 말하곤 "하. 이거 야단 났네"하면서 말해주지 말아야 할 걸 알려줬다는 뉘앙스로 조금 더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그 말을 난 믿기가 힘들었다. 히딩크라고 하면 좋은 이미지만 떠오르던 때여서 더욱 그랬다. 그가 누구를 질투해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우리 축구대표팀을 맡겠다고 했다니. 히딩크가 그렇게 유치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스스로 부인했다. 


이걸 선배들과 데스크에 말해야 하나 무척 고민했다. 말해도 "무슨 개소리야" 하며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은 보고하지 않고 넘겼다. 물론 기사도 쓰지 않았다. 그 뒤에 알고 보니 그 관계자의 전화내용은 맞더라. 관련 기사도 나왔다. 


내용을 종합해보면 사정은 이랬다. 당시 중국은 대표팀 사령탑을 누구로 할지를 놓고 고민했을 때가 있었다. 히딩크와 리피. 두 감독을 두고 저울질했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리피 감독도 세계 축구판에서 인정 받는 명장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자국인 이탈리아 대표팀을 이끌고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중국 프로축구 광저우 에버그란데 감독으로 오래 지내 중국을 잘 알고 있기도 했다. 결국 중국은 히딩크가 아닌 리피를 선택했다. 히딩크는 그게 너무 분했던 것 같다. 2017년 3월인가 우리 축구대표팀이 리피의 중국에 0-1로 져 복수심이 불타고 있으리라 생각도 한 것 같다. 당연히 자신이 우리 대표팀을 맡겠다고 하면 우린 그를 환영할 것이고 함께 리피의 중국을 무너뜨리자는 생각에, 대한축구협회와 접촉했던 것이다. 


정말 순수하게 우리 축구를 위해 일하러 오겠다는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결국 그도 한마디로 축구시장에 놓인 '장사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히딩크가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팀을 맡고 기자들 사이에선 별로 달갑지 않은 일화도 하나 회자된다. 그는 어느 기자회견에서 우리 취재진 중 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그 기자를 희롱하듯 답변했다고 한다. 기자생활을 오래 하신 데스크(부장)께 귀가 간지럽도록 자주 들었던 일화다. 그 희롱은 정도를 지나친, 선을 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히딩크가 정말 우리에게 기적같이 나타난 '선의의 영웅'이라고 보긴 힘들다고 지금 난 생각한다. 


다만, 그걸 떠나 히딩크의 지도력은 당연히 인정 받아야 마땅하다. 그의 능력은 축구전술보다는 정확한 역할 지시와 동기부여에 있다. 2009년 2~6월 잉글랜드 프로축구 첼시를 맡았을 때 어려운 숙제 같았던 공격진 구성을 해결했다. 히딩크가 오기 전 첼시는 디디에 드록바, 니콜라스 아넬카, 살로몬 칼루를 함께 기용할 수 없어 애를 먹었다. 다들 스타일이 비슷하고 동선이 겹쳤다. 히딩크는 세 선수에게 활동반경과 역할을 정확하게 나눠서 전달하고 공격진을 새로 짰다. 드록바와 아넬카가 투톱으로 서고 바로 뒤를 칼루가 받쳐 지원하게 했다. 이 공격진은 놀라운 변화를 보이며 첼시를 순항할 수 있도록 했다. 히딩크의 첼시는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올랐다. 경기를 잘하고도 심판의 편파판정 등으로 FC바르셀로나를 넘지 못하고 결승 진출엔 실패했다. 정규리그에선 3위, FA컵에선 우승했다.


히딩크는 2015년 12월 또 한번 위기의 첼시를 구할 소방수로 등장하는데 이 때는 성격이 별난 공격수 디에고 코스타를 잘 활용해서 주목 받았다. 코스타는 다혈질로 경기를 망치기 일쑤였다. 저돌적인 공격력과 득점력 등 능력은 이에 가렸다. 히딩크는 그를 달래지 않았다고 한다. 그를 라커룸으로 따로 불러 그의 성질을 돋게 하는 험악한 말들로 그의 전투력을 깨웠다고 한다. 욕, 비하 발언 등이었던 것으로 안다. 이를 듣고 경기장에 나간 코스타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히딩크는 코스타를 살려 팀을 정규리그 10위로 마치게 해 체면은 지킬 수 있도록 도왔다.   


실력은 뛰어난 지도자. 하지만 본심은 알기 어려운 이방인. 히딩크는 그런 사람이라 봐야 맞다. 히딩크가 우리나라를 떠나고 20년이 흘러, 우리 축구는 파울루 벤투라는 또 다른 의인을 만나 월드컵 16강에 올랐다. 벤투도 정확히 알 순 없다. 후일에 그가 어떤 인물로 우리에게 기억될 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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