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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면토끼 Oct 15. 2024

엄마 그때 안 무서웠어?



어릴 적 도로 건너편 마구간에서 소를 키웠었다.

고드름이 처마마다 걸리고 영영 아침은 오지 않을 것 같은 새벽녁, 

어김없이 주인을 부르는 소리는 이불속으로 숨어들어 귀를 막아도 새어 들어왔다.

일어나야지.


소는 부지런하다. 

소는 눈이 예쁘다.

소는 대접받는다. 


말린 지푸라기 한단을 내려 작두로 썰고 소죽을 쑤어 부어주면 소리는 잠잠해진다. 

신기했다.

맛있니?

맛없게도 그러면서 많이 먹는다.

한 번은 엄마한테 물으니 그건 맛있게 먹는 되새김질이라고 한다.

맛있으면 후루룩 먹지 돼 새김질은 뭘까.

아껴먹는 걸로 이해해 버렸다. 

분홍 소시지 하나를 몇 번에 걸쳐 나눠 씹어 먹던 우리처럼.


내 키보다 큰 삽을 밀며 소똥을 치운다. 

먹은 건 지푸라기면서 소똥은 찰지기만 하다.

미운데 눈을 보면 또 쓰다듬고 싶어 진다. 

아빠는 소를 귀하게 여겼다.

새끼라도 가지면 극진대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날 낳을 땐 자리를 비웠었는데 슬프게도 

새끼를 낳으려 어미소가 끙끙대면 하루종일 옆에 붙어 있었다. 


예민해진 아빠는 식음을 전폐했고 우리의 작은 행동에도 불호령과 함께 욕을 퍼부었다. 

어렵사리 얻은 새끼가 건강하지 못하면 보듬고 들어와 안방을 내어주었다. 

덮어보지 못한 솜이불을 깔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주며 숨을 못 쉴 땐 입으로 숨을 불어주었다. 

아빠에게 그런 부성애가 있었나?

직접 분유를 먹여주는 모습. 

동생들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는데.


애지중지하던 송아지가 떠나고 나면 며칠을 슬퍼하셨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우리가 알던 아빠로 돌아왔다. 

떠나간 자리의 공백을 채우듯 마구간 식구들이 늘어났다. 

토끼, 닭..

늘어날수록 우리의 일은 늘어갔다.

학교를 마치면 뒷산에 올라 풀을 한가득 뜯어야 했다. 

토끼를 굶겨 죽이면 안 되니까.


이름 모를 풀에 긁히며 돌아오면 다음날 토끼는 죽어 있었다. 

먹지 못하고 시들해진 풀이 가득 쌓여 있었다.

무서웠다.

죽은 토끼도 아빠한테 혼날까봐서도.

싸늘하게 굳은 토끼를 집어드는 엄마.

엄마는 안 무서웠을까?


토끼를 집어들며 엄마는 말했다.

"엄마토끼가 죽인 거야. 토끼는 자기 새끼를 누가 보면 죽인단다."


자기 새끼를 죽인다니. 

우리 아빠는 송아지가 떠나도 슬퍼했는데.


아빠가 웃을 땐 날개를 퍼득이며 도망치는 닭을 잡을 때였다. 

구구구구 소리와 함께 쫓아다니길 한참.

성취감을 입에 가득 머금고 날개를 쥐어 잡은 닭을 엄마에게 건넸다. 

한편에서는 솥단지에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송아지의 눈빛은 예쁜데 닭의 눈은 무서웠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검은 초점은 날카로운 비병이 되어 내 귀에 꽂혔다. 


"무서워 엄마."


칼을 들고 있는 엄마가 무서웠고 선명하게 흐르고 있는 피가 두려워서 볼 수 없었다. 

소리 없는 꿈틀은 이런 거구나.

뜨거운 물이 부어진다. 


"이게 뭐가 무섭니, 엄마는 하나도 안 무서워"


아빠는 상에 올라온 백숙을 다리채 잡고 쏙쏙 드셨다. 

엄마의 무섭지 않음이 무서웠다.


두 분이서 식당에 앉아 나란히 백숙을 드신다.


"엄마 그때 안 무서웠어?"

"엄마도 무서웠지 왜 안 무서웠겠니, 다 처음이었는데."



........ 엄마에게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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