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지인들에게 '중국어 잘하시겠어요? '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 중국에서 6년을 살았으면 중국어를 잘해야 하는데 솔직히 그렇지 않다. 중국 서점에서 사 온 '82년생 김지영 - 중국어판'을 책꽂이에서 펼쳐보며 나름 치열했던 베이징에서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본다.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 중국어를 배우지 않고 들어가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읽을 수도, 적을 수도 없었다.
큰 쇼핑몰에서조차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문맹이구나' 경험을 했다.
살기 위해서, 좀 더 윤택한 중국 생활을 위해 중국어를 익혀야 했다. 그리하여 중국에 온 지 3주 만에 학교에 등록을 했다. 학교 이름은 북경 경제관리 간부학원(北京经济管理职业学院,Beijing Institute of Economic Management - BIEM)이었다.
첫 학기 제일 기초반에는 학생이 22명이었다.
꽉 찬 교실에 자리는 고정석, 나의 자리는 셋째 줄 제일 가장자리 문 옆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수업이 있었고 북경의 예술거리 798로 야외수업을 가서 중식당에서 밥도 먹고 단체사진도 찍고 야외수업 과제도 했다.
나는 수업시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수업에 빠지지 않으려고 학교에 열심히 갔다.
중간고사를 치고 학기말이 다가오는 어느 날 왕선생님이 출석률이 좋아 대상자가 되었으니 장학금 신청을 해보라고 했다. 단, 장학금을 받으면 다음 학기에도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하셨다. 얼떨결에 신청을 했는데 우리 반에 6명이 장학금 신청을 했고 그중 2명만 받을 수 있었다.
기말고사 성적이 좋아야 장학금 대상자가 될 수 있는지라 솔직히 그때는 장학금도 받고 싶어 밤잠을 설쳐가며 시험공부를 했다. 대한민국 아줌마의 자존심을 걸고 해내고 싶었다.
그리하여 해내었다!
졸업식날 같은 반 지인과 함께 장학증서를 받았고 아이들도 졸업식에 같이 참석 과해 담임선생님 왕선생님과 회화 숙제를 아이들과 함께해 제출했던 구어 선생님과도 사진을 찍었다.
첫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학기엔 인원이 확 줄었으나 나는 여전히 셋째 줄 가장자리 고정석이었다.
두 번째 학기 야외수업은 천단공원(天坛公园)에 갔다.
두 번째 학기에도 결석하지 않고 학교에 열심히 갔더니 장학금 대상자가 되었다. 반인원이 작아 두 번째 학기에는 반에서 혼자 장학금을 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 학기엔 반장을 해서 대표로 우리 반의 졸업증서도 받았다. 졸업식날 여러 번 앞에 나갔다.
세 번째 학기도 학교에 잘 다녔는데 개인 사정으로 수료를 하지 못해 졸업사진이 없다.
이제는 지난 일이나 학창 시절 성적표의 성적보다 출석률이 99%인 것이 더 뿌듯하다.
수업시간 한눈팔 겨를 없이 필기했고, 엉덩이 힘으로 버텼다.
3학기 1년 반 동안 매일같이 쏟아지는 학교 과제를 해내며, 그리고 밥도 해 먹고 가족들도 챙기며 부지런히, 열심히 보낸 시간이었다.
그러면 지금쯤 중국어를 아주 잘해야 하는데 솔직히 그렇지 않다.
언어라는 것이 모국어가 아닌 이상 계속 배우고 익혀야 하는데 세 번째 학기 후 병이 생겨 투병 아닌 투병으로 중국어 공부에 손을 놓아버렸고 배웠던 것들도 급속도로 잊어버렸다.
그래도 그때의 배움으로 일상생활하고 중국 내 자유여행을 다닐 수 있어 다행이었다.
BIEM은 중국에 처음 가서 중국어를 배울 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매일 수업이 있어 힘들어도 그만큼 남는 것이 있다.
BIEM 다니던 학창 시절, 나의 중국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했던 때라 추억을 남겨본다.
10대, 20대 이후 다시 치열하게 공부했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며 지금은 중국 대륙을 떠나왔으나 중국어 온라인수업중이다.언젠가 다시 중국대륙에서 사용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