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순이 엄마
엄마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북부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3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3살 위 오빠가 있었고 두 번째로 태어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농번기 땐 밑으로 넷이나 있는 동생들을 돌보느라 국민학교를 가는 날 보다 안 가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이가 들어 엄마는 서울 공장으로 일을 하러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빠를 만나 19살을 4일 남기고 12월 28일 나를 낳았다. 며칠만 더 늦게 나를 낳았어도 햇수로 19살 차이일수 있었는데 난 그렇게 엄마와 18살 차이의 딸이 되었다.
엄마는 나를 낳고 나를 빨간 대야에 넣어놓고 시간 되면 젖만 먹이며 요꼬공장에서 계속 일을 했단다. 그러다 2년 뒤 동생이 생겼고 그 뒤로 엄마는 공장 지하에 살면서 공장 사람들에게 밥을 해주는 식당을 했었다. 내가 아직도 생각나는 국민학교 가기 전 가장 어린시절의 기억은 비가 오는 여름 어느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빠가 쥐어준 쓰레받이로 지하에 들어찬 물을 퍼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린나는 먹고살기 바쁜 부모를 위해 지하 식당 방 한켠에서 동생과 조용히 자랐다.
엄마는 나와 두 살 터울인 여동생을 낳고도 그 밑으로 아들을 셋을 더 낳았었다. 첫 번째 아들은 서울 살 때 뱃속에서 죽어서 태어났고 두 번째 아들은 경기도 셋방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태어나 며칠 못살고 죽었고 내가 10살 때 마지막 동생이 태어났다. 난 어린 나이에 엄마가 어렸을 때처럼 10살 터울의 막냇동생을 돌봤다. 나는 국민학생 때 동네 친구들이랑 놀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늘 구멍가게를 지켜야 했고 엄마가 바쁠 땐 동생을 돌봐야 했다.
엄마는 나에게 다정하지 않았다.
살림하랴 가게일하랴 성질 더럽고 술주정뱅이인 남편 건사하랴 계속되는 임신까지 진이 다 빠졌을 엄마는 내겐 무심했다. 난 국민학교를 다니는 내내 엄마가 계모인 줄 알았다. 어린 나는 엄마의 사랑을 받아보질 못하고 자랐다.
첫 번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는 늘 엄마의 일을 도왔고 엄마의 따뜻한 눈길을 바랬지만 엄마는 나를 외면했다. 이모들이 오면 늘 아빠 흉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내가 버젓이 옆에 있는데도 내 흉을 보곤 했다. 내 바로 밑 여동생은 이래서 예쁘고 저래서 예쁘다고 칭찬하면서 나는 이래서 밉고 저래서 밉단다. 어렸지만 그런 소리를 들을 때는 많이 슬펐고 엄마도 동생도 미웠다.
나는 늘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었다.
엄마는 늘 나에게 무뚝뚝했고, 아빠 욕을 했다. 난 엄마가 나에게 웃어주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어린 나는 엄마에게 착한 딸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에 엄마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았다.
부모님이 시킨 일 중에 제일 싫었던 일은 한, 두 달에 한번 보건소로 아빠를 대신에 간질약을 타러 가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던 건지 다른 병이 있었던 사람들이었는지 모르지만 수많은 환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보건소에서 무료로 약을 주는 날이 있었다. 그 많은 아픈 사람들 사이에 1시간 넘게 긴 줄을 서서 의사 선생님께 아빠 이름을 대고 간질약을 타와야 했다. 그럴 때면 의사 선생님은 아빠가 와야지 왜 네가 왔냐며 다음엔 아빠가 직접 와야 한다고 전하라고 했다. 그러나 아빠는 그 뒤로도 가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신의 귀찮음과 수치심을 나와 엄마에게 전가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엄마가 가거나 내가 가거나 했다. 한창 사춘기 때 그런 심부름은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엄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기도 했고 일찍 죽을 불쌍한 아빠를 위해서 꾹 참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전거도 잘 탔다.
우리 집 근처엔 조선시대 왕비들이 묻힌 능도 있었지만 그곳을 지나면 큰 낚시터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 구멍가게에서는 낚시용품도 팔았다.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왕복 10km의 위험한 4차선 차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서 낚시용품을 사다 날랐다. 지렁이를 비롯해서 낚시에 필요한 용품을 엄마가 적어주면 도매상이 있는 가게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 구입해서 자전거에 싣고 돌아왔다. 그러다 6학년 여름 즈음 우리 집엔 빨간 스쿠터가 생겼고 그때부턴 그 스쿠터로 4차선 차길을 달려 심부름을 다녔다. 그땐 그게 참 재미있는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 참 험하게 컸던 것 같다. 13살 어린 딸에게 스쿠터를 타게 하고 4차선 차길로 심부름을 보낸 엄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래도 외할머니처럼 학교를 못 가게 하진 않았으니 고마워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