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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희 May 09. 2024

멍든 아이는 멍을 잊지 못한다. 5화

나는 어렸다.

“선생님, 희수는 제가 전학 오고 저를 도와주었던 소중한 친구에요. 제가 너무 잘못한 거 같아서 앞으로는 제가 더 잘해주려고요.”

민영이의 말을 들으니 나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에게 예쁨을 받기 위해 한 말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한 말인지는 민영이만 알겠지만, 교실 속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이제 내 반에 따돌림이라는 것이 사라졌다는 것에 속이 후련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보내고 교실 속 의자에 덩그러니 앉아서 내일 수업을 준비하고 하고 있었다. 

 

‘욱씬‘

 

종아리 쪽에서부터 올라온 타박상과 같은 통증이 갑자기 몰려왔다. 그 때 해결하지 못했던 해결할 수 없었던 나의 멍이 나의 교실 속에서 짙어져 갔다.

 

 

“이건우, 박창호 괴롭힘 일 순위 가해자. 다섯 대. 앞으로 나와”

 

나는 이번 우리 반 인민재판의 일 순위 괴롭힘 가해자로 처벌 받게 되었다. 바지를 종아리까지 걷고 심판대인 칠판 앞 의자로 향해서 걸어갔다. 종아리에는 3월에 생긴 멍 자국이 아직도 짙게 남아있었다. 선생님은 매가 부러질 것을 대비하여 여러 개의 매를 만들어 본인 옆 자리에 두었다. 다시 나의 앞 허벅지를 잡고 고개를 살짝 숙였을 때, 창호의 눈과 마주쳤다. 창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호는 마치 불면 날아가는 솜털처럼 동공이 흔들린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두 대를 맞았을까. 매가 부러졌다. 선생님께서는 의자 옆에 있는 새로운 매로 다시 때렸다. 세 대, 네 대 맞을 때마다 타오르는 듯한 작열감이 나를 휘감았다. 그러나 나는 고통에 못 이겨 울거나 서러운 맘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창호를 괴롭힌 일 순위 가해자니까.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해야 나의 자아가 온전히 보존될 것 같았다. 그렇게 받아들여야 끝나는 상황이었다.

 

박창호는 내가 중학교 입학 후 약 한 달 뒤 우리 반에 전학 온 친구였다. 창호가 말도 없고 숫기도 없었지만 나는 창호가 처음부터 맘에 들었다. 교실에는 나 포함하여 서로 친한 오 총사가 있었다. 오 총사는 창호를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중 내가 가장 적극적으로 창호와 친하게 지내려고 했다. 교실에서 혼자 위축된 창호를 정말 도와주고 싶었다. 그 마음은 아마도 동정심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동정심이 자칫 상대를 짓밟을 수 있는 창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다. 우리는 계속해서 혼자서 떨어져 지내는 창호를 가엾은 마음에 말도 걸어주고 준비물도 빌려주곤 했다. 체육시간에는 일부러 먼저 다가가 짝을 하고 서로 스트레칭도 하고 그랬다. 점점 마음의 문을 연 창호는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내 기억으로는 창호가 전학 온지 일주일이 지나서였던 것 같다. 

 

“점심에 너희랑 같이 밥 먹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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