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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희 May 09. 2024

멍든 아이는 멍을 잊지 못한다. 4화

여기 지금

사실 선생님의 그 강력한 체벌과 매도 보복을 막아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담임 선생님은 그 아이들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음에도 의심을 하지 않고 바로 심판을 하였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이 일을 바로 잡으려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심판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재판에 의한 심판이 바로 그 목적이었다. 그리고 두 달 뒤 나는 또 다시 교실 속 인민재판에 서게 되었다.

 

“선생님.. 저 할 말이 있어요. 친구들이 저를 따돌리는 거 같아요.”

 

초등학교 교실에서 따돌림이라는 표현을 우리 반 여학생 입에서 들었을 때 나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현재 나는 초등학교 5학년 2반의 담임 선생님으로 부임한지 이제 두 달이 지난 교직 생활 3년차 교사이다. 그래도 그동안의 짧은 경험을 살려 나름대로 교실운영과 아이들의 교우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우리 반에서 따돌림이라는 것이 일어났다는 것을 사실 나는 부정하고 싶었다. 정말로 학급을 잘 운영하고 싶었고 잘 운영하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용기 내어 말한 이 학생의 이름은 박희수이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복도에 혼자 남아서 집에 가지 않는 희수를 보고 무언가 문제가 있겠구나 했지만 그것이 교실 속에서 따돌림일 줄은 몰랐다. 희수는 우리 반 여자 아이들 중에서 가장 예의바르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학생 중 한 명이기 때문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매우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사항이었다. 전학 온 우리 반 여학생 김민영을 희수와 희수가 친하게 지내던 3명의 학생이 계속 챙겨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희수와 민영이를 포함한 5명의 여학생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민영이와 희수가 서로 다툰 날부터 아이들이 희수와 같이 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왜 다투었냐고 물어봤더니

 

“민영이가 제 가방에 이상한 쓰레기를 넣어놔서 제가 이거 버린다고 했어요. 그 이후에 민영이가 저에게 왜 버리느냐고 소리쳐서 그렇게 싸우게 됐어요.”

 

쓰레기. 쓰레기가 마음에 걸렸다. 사소한 오해로부터 아이들의 갈등이 시작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음날 민영이를 불러 이야기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민영이가 만든 작은 선물 쪽지였던 것이다. 방과 후 나는 민영이와 희수 그리고 나머지 3명의 학생들을 모두 남게 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을 남겼던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물론 나는 심판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혼내는 게 아니야.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고 작은 오해가 있었던 거야. 지금부터 같이 풀어보자.”

 

사실 저 말은 내가 꼭 선생님께 들어보고 싶었던 말이었다. 같이 풀어보고 같이 해결해보고 싶었다. 심판을 당하고 싶지 않았고 심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후 우리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대화를 하고 서로 사과도 하면서 앞으로 잘 지내겠다고 내 앞에서 약속도 했다. 아이들의 속마음은 같았다. 서로 오해를 풀고 싶어했지만 그 방법을 몰라 계속 소원해지게 된 것이었다. 그것을 도울 누군가가 필요했고, 바로 내가 도움을 주어야 했다. 하지만 오해가 생겼다고 해서 같이 놀지 않는 행동은 따돌리는 행위이고 그것이 정말 나쁜 행동임을 교사로서 알려주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오랜 대화 끝에 민영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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