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나에게 너무 큰 감정이었다.
공포와 절망
그 두 감정을 감내해야 되는 비련한 나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심장박동이 절정에 다다르는 그 순간 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
“이건우, 밀기 2번, 급소 공격 1번, 3대, 종아리 걷고 의자 위로 올라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바지를 허벅지 높이 까지 걷고 교실 칠판 앞에 혼자 놓여져 있는 의자 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걸음은 나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제일 공포스럽고 무섭고 또 피하고 싶은 걸음이었다. 걸음이 끝나자 내 눈 앞에는 의자가 보였다. 의자 위에서 나는 두 손을 내 허벅지까지 올라가 있는 바짓가랑이를 잡고 자세를 앞으로 살짝 숙였다. 선생님의 팔이 뒤로 당겨지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을 때 이미 나는 한 대를 맞았다. 그 아픔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나는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을 경험했다.
작열감
살이 타는 듯한 고통이 나의 종아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온몸을 덮쳤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나는 두 대를 더 맞아야했다.
버텨야 했다. 버텨서 울지 않아야 더 맞지 않는다. 두 대를 맞았을 때는 정말로 도망가고 싶었다. 무서움이 나를 압도했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공포감이 나를 덮쳐왔다. 그렇게 두 대를 버텼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또 한 대가 왔다. 쉬우웅 하는 바람소리를 가로질러 나의 종아리는 그렇게 세 대를 맞았다. 맞고 나서의 아픔과 서러움 그리고 뭔지 모르는 울컥하는 감정이 나를 삼켜버렸다. 하지만 한 대 더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나는 목에서부터 울고 싶어 하는 나를 통제하고자 악을 썼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자리로 돌아와서 친구들과 선생님이 절대 듣지 못하도록 고개를 숙여 나의 울음소리 메아리가 들리지 않도록 울었다. 그렇게 우리 반 27명 중 나포함 20명의 아이들이 모두 맞은 후에야 담임 선생님의 심판은 끝이 났다. 그 이후 계속해서 담임 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지만 나는 사실 기억하지 못한다. 맞은 이후 종아리의 통증과 심판이 끝났다는 것에 대한 안도로 인해 나의 온몸은 긴장이 풀려 선생님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심판이 끝난 날은 3월 3일 수요일 내가 중학생이 된 지 단 하루가 지난날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이미 부모님께서는 선생님께 소식을 들은 후였다. 아무 말 없이 울분을 삼키시며 나의 종아리에 있는 검정색 멍에 약을 발라주셨다. 그 때는 선생님의 말씀이 곧 법이었다. 맞아라 하면 우리는 맞아야 되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