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내가 다닌 남자 중학교에서는 다소 거칠고 정제되지 않는 장난들이 난무했다. 그 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복도에서 우리 반 이도준이 양재우의 급소를 만지고 도망갔고 양재우는 이도준을 밀어 복도에서 넘어뜨렸다. 이도준과 양재우는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화가 나 복도에서 주먹다짐을 하며 싸웠고 뒤늦게 아이들이 말렸지만 이미 도준이는 재우의 주먹에 맞아 코피가 터진 상태였다. 이 상황을 하필이면 우리 옆 반 선생님이 교무실로 가던 중 발견하여 싸움을 말렸고 이 소식이 후에 우리 반 담임 선생님께 전달이 된 것이다. 담임 선생님은 6교시 수업 후 교실에 모두 남아있으라고 했다. 우리는 의아했다. 잘못한 것은 이도준, 양재우 두 명인데 왜 우리 모두를 남기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잠시 후 선생님이 모두에게 흰 종이를 주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지금까지 봤던 것을 쓴다. 남을 밀거나, 남의 급소를 치거나 만지고 도망간 놈의 이름을 적는다. 밀은 놈은 왼쪽 칸에, 급소를 건드린 놈은 오른쪽 칸에 쓴다. 못 봤다고 안 쓰면 그 놈은 제일 많이 맞을 줄 알아라. 다 알고 왔다.”
선생님은 서로를 고발하는 것을 우리에게 종용하기 위해 교실에 남긴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선생님 입장에서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다른 친구의 급소를 만지는 장난이나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친구들과 놀다가 서로 미는 장난은 했을 수도 있다 생각했지만 나는 맹세코 남의 급소를 만지고 도망가는 장난을 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변호의 기회도 없었다. 이름이 불렸다면 그 후에는 심판과 처분만이 남아있었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우리 반에서 제일 싸움을 잘하고 거칠었던 흔히 말해 일진이었던 아이들은 이름이 적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은 7명의 아이들로 같은 초등학교에서 진급한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체격이 또래보다 매우 컸었고 서로 뭉쳐서 다녔다. 그렇게 무서울 것이 없던 그들은 다른 친구를 밀고 급소를 치는 행동을 개학식 날부터 일상처럼 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우리는 담임 선생님의 매보다 그 아이들의 보복이 더 무서웠다.
그 아이들의 대장 이름은 임대준, 대준이의 말 한 마디의 권력이 담임 선생님의 권력보다 훨씬 컸었다. 그 아이는 담임 선생님과는 또 다른 우리 반의 심판자였기 때문이다. 3월 2일 개학식 날 다른 초등학교에서 진학 해 온 옆 반 친구와 싸운 대준이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나와 다른 친구들은 또래와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체격과 거기로부터 나오는 힘의 공포를 깨달았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같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들로 하여금 보복의 두려움을 이끌어냈다. 그 보복의 두려움은 담임 선생님의 체벌과는 아예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사실 선생님의 그 강력한 체벌과 매도 보복을 막아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담임 선생님은 그 아이들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음에도 의심을 하지 않고 바로 심판을 하였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이 일을 바로 잡으려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심판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재판에 의한 심판이 바로 그 목적이었다. 그리고 두 달 뒤 나는 또 다시 교실 속 인민재판에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