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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과아빠 Feb 19. 2024

아기옷엔 단추 달지 말아라, 진짜.

옷 입히기 어렵다

 아기들 옷에 단추 말고 똑딱이만 달려 있으면 좋겠어. 똑딱이도 조금만, 한 다섯 개만 달려있으면 좋겠고. 손바닥이 아기 몸뚱이만 한 우악스러운 손을 가진 남자는 아기 옷을 입히는 것이 너무 어렵고 두려워. 

 

아기 옷은 내 손가락 몇 개 들어가면 소매가 꽉 차버려. 팔 하나 끼우려고 해도 내 손가락이 막고 있어 아기 손이 들어올 공간이 없더라. 그나마 좀 늘어나니 옷을 입히지. 이게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야. 게다가 아기라는 생명은 왜 이리도 약하고 보드라운지, 옷 입히다 슬쩍 닿은 것 같은데 벌건 스크레치가 여기저기 생겨 있기도 하고. 조심스레 옷을 입히다 보면 뒤집고 발 차고 도저히 힘을 빼고는 입힐 수도 없어. 그러다 보니 항상 옷을 입힐 땐 등줄기에 습도가 올라가. 지금은 빠르게 입히는 것을 목표로 조금 거칠지만 후다닥 입히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어. 


'불편하면 어서 자라서 니 옷은 네가 입도록 해'


 그렇게 우악스러운 아빠는 부드럽게 옷을 입히는 엄마를 보면 조금 신기해. 분명 나보다 힘도 약하고 손도 느린데 아기 옷은 더 잘 입히곤 하니까. 심지어 옷태도 엄마가 입힌 것이 더 이쁜 걸 보면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나 봐.


 한 번은 아기 옷을 입히는데 손이 도저히 빠져나오지 않아 고생을 하며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


'이럴 때 조심 해야 한대. 가끔 잘 안 빠져나오는 손을 힘으로 빼내다가 손가락이 탈구돼서 응급실 오는 애들도 있대.'

'설마, 그래도 자기 아기인데 그렇게까지 하겠어?'

'근데 드물게 있나 봐 그런 일. 조심하자.'

'어우 너무 무섭다.'


남의 일처럼 말하던 일은 꼭 나에게도 일어나.


 배가 고파 보채고 있는 코코에게 이유식 가운을 입히고 있었어. 이유식 가운은 신축성이 전혀 없는 방수천 재질이라 입힐 때 항상 조금 힘들어. 게다가 그날은 보채는 아기를 달래며 입혀야 했으니 정신이 없긴 했어.  입혔다고 생각했고 아기도 안정적으로 준비가 서 20분 정도 이유식을 맛있게 먹이고 이리저리 묻혀 놓은 이유식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지. 그때 코코의 왼쪽 손을 보던 와이프가 버럭 소리를 질렀어.


'오빠! 애기 손을 이렇게 해 놓으면 어떻게 해!'

'응? 손이 왜?'

'여기 소매에 걸려서 새끼손가락이 뒤집어져 있잖아!'

'어?????????'


 너무 놀라 아기 손을 들었는데, 하,  미 X. 아빠 놈이 또 사고를 쳤네. 아기 손가락이 소매 끝단에 걸려 뒤쪽으로 젖혀져 있었던 거야. 바로 손가락을 빼내고 손가락이 움직이는지 통증은 없는지 골절이나 탈구는 없는지 조물 조물 거리며 확인을 했어. 불행 중 다행으로 아기 손가락은 잘 움직였고 여전히 강한 아구힘으로 내 손가락을 잘 잡고 있었어. 생글거리며 이유식도 잘 먹고 잘 놀고 있었던 코코에게 엄청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코코는 그런 아빠라도 좋은 건지, 날 보고 너무 밝게 웃어 주더라.


' 미안해 코코. 많이 아팠지? 아빠가 앞으로는 더 조심하고 한 번 더 살펴볼게. 코코 아프지 않게. 정말 미안해 코코야. 그래도 아빠 보고 웃어줘서 너무 고마워.'


 알면서도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이번 일은 정말 자격미달. 크게 다친 건 아니니 너무 다행이었지만 오히려 괜찮다고 웃어주던 코코의 얼굴이 평생 내 가슴 어딘가에서 독서실 머리맡에 붙여뒀던 압정처럼 정신 놓을 때마다 날 따끔하게 깨워줄 것 같아. 좀 더 조심하고 잘 살펴야지.


옷도 제대로 못 입히는 아빠. 그게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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