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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과아빠 Feb 21. 2024

코코, 아빠 손은 치발기가 아니야.

뭘 그렇게 물고 빠는 거야.

 이제 코코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을 씹고 뜯고 맛보는 '일단 입으로' 시기야. 쪽쪽이는 정말 몇 번 빨아보더니 더 이상 물고 있지를 않아서 100일도 되기 전에 빠이 했어. 그때까지만 해도 코코는 뭘 안 빨려나 보다 하는 안일한 생각을 우리 부부는 하고 있었지. 육아의 절대 금기. '우리 아기는 안 그럴 거야.'라고 생각을 하는 것인데, 우린 그걸 해버렸던 거지.

 쪽쪽이를 물지 않는 코코는 대신 손을 빨기 시작했어. 처음엔 손가락 하나, 그다음엔 두 개가 되더니 어느 순간 양손을 번갈아 가며 열 손가락을 쉴 새 없이 빨아대고 이제는 손가락 네 개를 한꺼번에 넣고 빨아. 그것이 손가락에서 그쳤다면 너무 좋았겠지만, 그럴 리가 없지. 아가들은 원래 그렇잖아? 엎드려 자는 이불, 그 옆에 둔 베개, 디데이 달력, 인형, 침 닦아 주다 옆에 둔 손수건 등등 침대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빨아. 빨기 욕구는 이 정도면 충족되지 않았나 싶었지만 코코는 멈추지 않지. 점퍼루, 고리친구, 이유식 턱받이, 수건,  엄마 옷, 아빠 옷, 지가 입은 옷, 그저 입에만 닿으면 일단 빨아재끼는 통에 집이고 어디고 코코가 있는 곳은 모조리 침 범벅이야. 축축해. 그래서 매일 아기 빨래는 항상 한통 가득, 매일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가지. 하나하나 널기엔 너무 시간과 노력이 과도해서 그냥 건조기 돌리고 산다.


  그중 코코의 최애 빨기 물품은 기린모양 치발기야. 아주 앞에 놓아주면 달려 들어서 물고 뜯고 맛보기를 시작해. 빠드득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물어대는데, 분명 입안 가득 기린머리가 들어가 있는데 어떻게 씹나 싶은데 계속 씹고 있어. 이가 나지 않은 어금니 부분으로. 머리를 다 씹으면 뒤집고 돌려서 다리고 씹고, 꼬리도 씹고, 목도 씹어. 이 정도면 기린사냥꾼 아니냐고. 그렇게 코코에게 하루종일 씹히던 기린은 밤이 되면 스팀 소독기에서 한번 더 고행을 해야 해. 코코입에 들어가는 거니 일단, 씻어는 드릴게. 어차피 바닥에 뒹굴고 다시 씹고 하지만. 휴, 이러는데 소독에 목숨을 뭐 하러 거나 싶어. 내가 퇴근하고 손소독제로 세수하는 게 무슨 소용이지?


 코코가 기린 다음으로 좋아하는 치발기는 내 검지 손가락이야. 내 손이 코코 앞에만 가면 바로 손으로 낚아채서 한번 씩 웃고는 입으로 가져가. 아마 구강티슈로 잇몸을 닦아주고 불소도포를 해주다 보니 친숙해서 그런 것 같은데. 이제 강냉이 두 개가 툭 하고 튀어나온 코코가 기린 머리를 씹 듯이 내 손가락을 씹으면 놀랍게도 매우 아프고 치아 자국까지 선명하게 남아. 멍도 들고. 그래도 어쩌겠어, 코코가 좋다는데. 내 손가락 정도야 내어줄 수 있지. 근데, 윗니까지 나면 좀 곤란할 것 같아. 잘릴 거 같..


어느덧 신생아던 코코가 치발기를 빨아대고 있고, 혼자 젖병을 잡고 분유를 먹고, 뒤집고, 기어보려고 바둥거려.  이가 올라왔고, 이유식을 먹고 있어.  좀 빨리 크면 좋겠다 생각하다가, 그래도 지금이 너무 좋아서 천천히 크면 좋겠단 생각으로 흘러. 두 개밖에 없는 강냉이로 힘차게 물어주던 검지손가락의 날카로운 통증도, 언젠가는 추억이 되어 있겠지? 많이 자라 버리기 전에  많이 함께 해야지.


아빠 손가락은 치발기가 아니지만, 네가 물겠다면 언제든 내어줄게. 아빠 손가락을 물고 해맑게 웃는 널 좀 더 기억하기 위해, 손가락이 따끔하는 정도는,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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