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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을 믿습니까?

자기 자신은요?

by 오모

알록달록하게 살고 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에게 뭔가 알록달록 해진 것 같다고 묻는 전재준의 물음표는 곧장 스스로를 향했다.

엄마가 되기 전엔 흑백이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알록달록해진 나에게.

육아라는 경험은 무채색으로 납작하던 마음에 무지갯빛과 입체적 형태를 만들어냈다.

때로는 핑크핑크 하트모양이었다가 뾰족뾰족한 검은 가시넝쿨로 변하기도 하고 말랑말랑한 노란색 탱탱볼이 되기도 한다. 대체로 피곤에 절여진 보라색 액체괴물 형태이지만.

내 주변을 살펴보자면 올해 6살이 된 내 딸은 지금 유니콘에 홀딱 빠져있고, 유니콘은 필연적으로 반짝거리는 글리터와 무지개를 동반하기에 나는 꿈과 환상의 세계, 체험 삶의 현장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그림책으로 촘촘하게 이어지는 두 세계는 각각 동심과 현실에 기반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육아와 평온한 일상을 위해 나와 아이, 그리고 유니콘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림책을 옆구리에 끼고서 우리 셋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얼핏 달콤한 환상과 뜬구름 같은 희망사항을 룰루랄라 쫒는 것처럼 보이는 어린이 동화의 이면에는 동심을 독려하는 힘이 숨겨져 있다.

요정, 괴물, 유니콘은 순수한 호기심과 상상력, 자기 확신을 의미한다.

세상의 틀에 갇히지 않고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기 전에 가졌던 본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이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의 원형이기도 하다.

자기 취향이 확실하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어린 시절의 동심을 소중히 보살핀(혹은 누군가가 잘 보살펴준)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 현실의 혹독한 풍파에 동심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많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휘둘리는 사람들(나처럼).

우리는 그림책을 펴서 힘을 얻는다.

자신을 믿고 마음을 지켜낼 힘.


유니콘을 믿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믿고 응원한다는 의미다.




에이미 크루즈 로젠탈이 지은 <Uni the Unicorn, 유니콘 유니> 시리즈는 상상력과 믿음이 실현되는 순간을 담은 사랑스러운 그림책이다.

일론 머스크가 거리를 달리는 전기자동차들을 바라보며 로켓을 발사하는 순간이랄까.

소녀의 존재를 믿는 유니콘과 유니콘의 존재를 믿는 소녀가 서로 만나 친구가 된다는 무구한 이야기에 아이는 열광했다.

유니콘이 마법을 부리기 위해서는 태양과 찬란한 무지개, 그리고 반짝이는 믿음이 필요하지만

인간이 마법을 부리기 위해서는 태양 같은 사랑,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상상력, 믿음이 필요하다.


나는 아이의 마음에 유니콘과 태양이 존재하는 튼튼한 안전지대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냉혹하고 고된 현실과 마주했을 때 낙관과 희망을 속삭여줄 내면의 친구들이 많으면 좋을 테니까.

그림책은 타인의 위로와 이해를 구하는 대신 스스로 희망의 무지개를 끌고 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인생에는 때때로 비가 오고 그럴 때마다 힘차게 무지개와 태양을 띄우는 힘은 자기 긍정과 신뢰감으로 둥글게 채워진 동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는 힘은 유니콘을 믿는 힘과 무늬가 닮아있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유니콘 이야기는 <Margaret’s Unicorn, 마가렛의 유니콘>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반짝이는 마법이나 무지개는 없지만 보살핌과 연결감, 조용하고 따뜻한 이별이 있다.

이끼와 바람, 먹구름이 부드럽게 침묵하는듯한 그림체를 가진 이 책을 책장에 꽂아두고 오래 들여다본다.

여기에 나오는 믿음은 나 자신을 향한 게 아니라 유니콘과 같이 조그맣고 신비로운 내 아이를 향한다.

나와 함께 계절을 지나고 포근한 추억을 만들어 갈 내 아이의 성장을 믿고 응원하는 마음.


마가렛이 발견한 아기 유니콘은 신선한 꽃을 먹고 달빛을 머금은 물을 마신다.

머리카락 쓰다듬는 손길을 좋아하고 잘 때는 꼭 엄마가 옆에 있어야 잠드는 게 아무리 봐도 내 딸과 그 유니콘은 같은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산책길에 만난 풀꽃, 매끈한 돌멩이, 하트모양 나뭇잎을 선물해 주는 나의 유니콘은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계산이나 망설임이 없다.

상대방이 실망할지, 혹은 부담스러워할지 고민하지 않는 그 천진하고 말간 마음이 곁에 있다는 건 든든하고 좋은 일이다.


마가렛과 유니콘은 가을에서 겨울까지 두 개의 계절을 함께 보내고 봄에는 이별을 맞이한다.

나에게 그 봄은 아이가 성인이 되어 독립하는 순간이겠지.

때때로 찾아와 인사하고 떠나는 유니콘을 마가렛은 붙잡거나 서운해하지 않는다.

오랜 친구가 자신의 세계에서 씩씩하게 잘 살아갈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이 그녀에게는 있는듯했다.

그것은 내가 아이에게 갖고 싶은 산뜻한 마음가짐이다.


지금 우리가 어깨를 맞대고 앉아 읽는 그림책들로 쌓아 올린 동심, 애착, 신뢰감과 같은 마음들이 내가 사랑하는 유니콘을 지켜줄 거라는 견고한 믿음이 내겐 있다.


나는 유니콘을 믿는다.




<유니콘 그림책 목록>

<Uni the Unicron, Amy Krouse Rosenthal>


<Margaret's Unicorn, Briony May Smith>


<Thelma the Unicorn>


<How the Crayons Saved the Unicorn, Monica Sweeney>


<Nerdycorn, Andrew Root>


<The Teeny-weeny Unicorn, Shawn Harris>


<Unicorn Club>


<Unicorn Day, Diana Murray>


<How to Catch a Unicorn, Adam Wallace>


<Unicorns 101, Cale Atkinson>


<Never Let a Unicorn Wear a Tutu!>


<Unicorn (and Horse), David W. Miles>


<A Unicorn, a Dinosaur, and a Shark Walk into a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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