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의 목표는 아이의 독립이다.
현실육아 멘토 조선미 교수가 나온 유튜브 영상을 보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가 사춘기나 성인이 되어서도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그런 정서적 관계는 아이가 독립하지 않고 계속 부모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의존적 관계에 해당한다고 일갈했다. 양육의 목표는 아이의 독립이며 자녀가 클수록 멀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관계라고 설명하면서. 아이는 애착인형처럼 내가 평생 끼고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줄리아 도날드슨의 <The Paper Dolls, 종이인형>에 나오는 ‘기억의 숲’을 짓는 심정으로 아이를 돌본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혼자 살아가게 될 때 종종 마음의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는 기억의 숲 말이다.
<The Paper Dolls, 종이인형>의 종이인형들은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다가 심술궂은 오빠의 장난으로 산산조각 잘린다. 그러나 그 조각들은 사라지지 않고 훨훨 날아 온전한 종이인형의 형태로 기억의 숲에 남는다. 아름답고 재밌는 것들이 가득한 숲. 그곳에는 상냥한 할머니가 뜨개질을 하고 있고, 한때 모험을 함께 했던 종이인형이 있고, 나비 머리핀, 불꽃놀이가 있었다. 그리고 날마다, 해마다 아주아주 사랑스러운 것들이 새롭게 놓인다. 아이가 커서 엄마가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 종이인형을 만든다. 그렇게 엄마는 자신의 기억의 숲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꺼내서 자신의 아이의 숲에 놓아주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내 기억의 숲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모든 것이 흐릿하고 불분명해서 불안하다. 불안의 숲을 갖고 있는 엄마가 아이에게 과연 포근하고 고운 것들을 놓아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바로 희망과 낙관을 이야기해 주는 그림책들을 많이 읽어주는 것이다. 다소 작위적이지만 불안을 대물림하는 것보다 낫다는, 그림책에 대한 견실한 믿음으로 아이의 손끝 발끝에 그림책을 놓아두고 읽어준다. 그림책이 나와 아이를 구원하리라. 그런 믿음이 나에겐 있었다. 내 아이가 가진 기억의 숲에는 공룡과 해진 애착이불, 반려견 호두와 맥스, 그리고 엄마 무릎의 온기와 그림책의 따스한 이야기들이 가득하길 바라며. 내가 더 이상 아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을 때 아이 곁을 지켜주고 토닥여 줄 그림책이 가득한 서재가 그 숲에 있길. 이야기의 힘은 강력하니까.
기억의 숲과 서재가 탄탄한 아이라면 언젠가 내 곁을 떠난다고 해도 불안하거나 슬프지 않을 것 같다. 아이와 헤어질 때 잘 놓아주기 위해 나는 오늘, 지금, 이곳에서 아이와 누릴 수 있는 최대치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린다. 그리고 지금 우리집에 데려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행복은 아이를 가까이 앉히고서 함께 그림책을 읽는 것이다. 그림책이라는 건, 시기가 있어서 7,8살만 되어도 시시해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그 행복을 누린다. 10살이 되어버린 아이를 붙잡고 요정과 공룡이 난무하는 그림책을 볼 수는 없으니까. 10살에는 10살에 누릴 즐거움이 있는 법이니까.
내가 아이와 잘 멀어지기 위해 읽는 또 다른 그림책은 올리브 제퍼스의 <This Moose Belongs to Me, 그 사슴은 내 거야>라는 책이다. 자유롭고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닌 사슴은 나에게 아이를 상징한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 컨트롤하고 싶다, 아이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쥐락펴락 하고 싶다는 욕망이 고개를 내밀 때마다 나는 그 자유롭고 아름다운 사슴을 떠올린다. 사슴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인생을 사는 독립적인 생명체라는 것을.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말 뒤에 숨겨진 부모의 대리보상, 인정욕구, 비교심리를 차단하기로 했다(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SNS를 끊는 것이다).
<This Moose Belongs to Me, 그 사슴은 내 거야>에서 윌프레드는 커다란 사슴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사슴과 친구가 되는 대신 사슴의 주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완벽한 반려동물이 되기 위한 규칙을 만들어 사슴을 평가하고 컨트롤하고 잔소리하면서. 그런데 산책길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도 사슴을 자기 것이라고 우겼다. 물론 사슴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므로 자기의 인생을 본성과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갈 뿐이지만. 사슴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잘 보이기 위해 그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 충실하게 살아간다. 그림책의 끝에서 윌프레드는 사슴이 자신의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하고 사슴과 잘 지낼 방법을 비로소 찾는다. 바로 사슴의 인생과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슴과 함께 다정한 이야기들로 튼튼하게 지어진 기억의 숲을 짓는다. 우리의 손끝 발끝에 그림책을 가까이 두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