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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너울 Oct 05. 2024

사랑의 동의어

가족이란 무엇인가

우리 딸은 ‘엄마 둘’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에 살길.


국내최초 딸 출산을 공개한 레즈비언 부부로 소개된 김규진, 김세연 씨의 인터뷰가 실린 여성동아 헤드라인에 오랫동안 눈길을 두었다. 이들의 바람처럼 엄마 둘이, 또는 아빠 둘이 특별하지 않은 세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림책에서 본 세계였다.  




그 세계의 주인공은 어린 소녀와 노란색 풍선이고 엄마 둘은 아이옆을 지키는 든든한 배경처럼 그림에 존재한다. 엄마가 둘이라는 사실에 어떠한 특이점이나 언급을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한 아이의 성장을 둘러싼 평범한 가족 이야기인 까닭이다. <내 친구 루니, My Friend, Loonie>는 책을 덮으면 그 온기가 마음에 오래오래 남는 그림책 중 하나다.


아이는 책을 들여다보며 엄마가 왜 두 명인지 따로 묻지 않았다. 다만 소녀의 노란 풍선을 보며 자신이 생일선물로 받았던 공룡풍선을 떠올렸다. 아이들의 시선에는 차별이나 혐오, 염려의 자리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내심 궁금했다. 작가가 이 두 여성들의 존재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어떠한 잠재적 의도가 있었는지. 작가 니나 라쿠르는 실제로 동성 연인과 결혼했으며 딸과 함께 산다. 이것은 작가와 그 가족들의 자전적 경험으로 써낸 이야기인 것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그림책은 더 이상 상상 속의 판타지가 아닌 타인의 입장과 현실을 비추는 창문이 된다. 때때로 아이에게 풍선을 선물하고 아이가 슬퍼할 때 품에 안아 다독여주는 두 명의 엄마는 나와 남편과 같은 부모인 것이다.

내가 그림책 속의 두 엄마와 공감할 동안 아이는 아이의 방식으로 풍선을 잃어버린 소녀와 교감한다. 책 속에 있는 소녀가 느낀 상실감은 곧 책 밖의 아이가 언젠가 느꼈을 슬픔의 밀도를 지니고 있기에 둘은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받는다. 5살의 인생에도 크고 작은 절망과 슬픔이 존재해서, 아이는 잠시 친구였다가 떠나간 공룡풍선, 얼마 전 죽은 반려 물고기, 이사 가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옆집 친구를 떠올렸을 것이다. 책 속과 책 밖은 종종 아이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 연결되고 그래서 그림책은 마치 다차원의 우주처럼 존재한다.

그리고 그 우주에서는 ‘엄마 둘’이 그리 특별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니나 라쿠르의 또 다른 그림책 <엄마와 엄마 사이에 나, Mama and Mommy and Me in the Middle>는 다분히 개인적인 이유로 나에게 소중하다. 나와 같이 몸에 문신을 한 엄마가 그 그림책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의 문신은 20대 초반의 발랄함과 철없음을 상기시키는 페가수스와 별, 나비이므로 대단한 공포감을 조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그림책 속의 엄마는 양 어깨에 만개한 빨간 꽃(아마도 동백꽃), 정강이에는 딸기넝쿨 문신을 갖고 있다. 물론 내 눈에는 그 문신들이 귀여워 보이지만 그녀에게도 종종 불량하고 생각 없음의 프레임이 씌워지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아내가 미네소타로 출장 가 있을 동안 캘리포니아 집에 남아서 아이를 돌보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며 나와 비슷한 일상을 이어간다. 출장 간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꼭 안아 달래며 "나도 그녀가 보고 싶어, 우리 둘이서 같이 엄마를 그리워하자"라고 다정하게 말하는 그녀는 나처럼 문신을 갖고 있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다. 둘은 멀리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캘리포니아에 내리는 비만큼 보고 싶다고 말한다. 전화기 반대편에 있는 엄마는 미네소타에 내리는 눈만큼 너희들이 보고 싶다고 대답한다.

가족이란 그런 거니까.  


세연 씨는 코즈모폴리탄 인터뷰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서로 사랑하고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족"이라고 대답했다.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자주 읽어주던 그림책 하나가 떠올랐다.

<가족을 만들어주는 건 사랑이야, Love makes a family>에서 가족은 사랑의 동의어다. 그리고 가족의 형태는 사랑의 형태만큼이나 다양하다. 사랑은 생일 케이크를 굽고, 주말에 함께 놀고, 그림책을 읽어주는 거라고 말하는 텍스트는 단순하지만 그림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가족의 형태에 대해서. 아빠가 둘, 엄마가 둘인 가족에 대한 당신의 관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동성부부, 한부모 가족, 다문화 가족, 조부모 가족들이 대다수와 다른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감내해야 할 비난과 동정, 왜곡된 시선에 대해서.

해적 모자를 쓴 두 아빠가 아이들을 목욕시키는 모습, 두 엄마가 이불로 만든 텐트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는 모습은 우리를 다정하게 설득하고 수긍하게 한다.

가족을 만드는 건 성별, 혈연, 인종, 사회적 조건이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나와 남편은 둘 다 동일하게 대책 없는 면이 있어서 ‘사랑’만으로 결혼을 했다. 우리는 결혼식도, 결혼사진도, 예물도, 신혼집도 없이 시청에 서류를 작성해 제출하는 것으로 법적인 부부가 되었다. 4년 동안 내 집처럼 들락거리던 남편의 원룸 빌라에 내가 그냥 눌러앉는 것으로 우리의 신혼은 시작되었다. 주목받는 걸 몹시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결혼식은 기피하고 싶은 관례였고, 그럴만한 통장 잔고도 없었으며 등짝에 손바닥만 한 문신을 드러낸 채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것이 그리 칭찬받을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결혼이란 성대한 결혼식이나 값비싼 예물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의 평온한 일상의 지속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매일의 일상을 함께하며 서로 지지고 볶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다.


아이도 그렇게 온전하게 가족의 사랑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양함과 일상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그림책들을 읽어준다. 사랑과 관계의 형태는 다양하고 서로 누가 더 잘 사는지, 누가 더 잘났는지 저울질하지 않고 각자가 누리는 행복에 감사하기 위해. 사랑은 비싼 브랜드 옷이나, 최신형 아이폰을 사주는 것, 해외여행에 데려가 주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저녁을 차려주고 잠들기 전 그림책을 읽어주며 이마에 뽀뽀해 주는 것처럼 아이와 부모 사이에 늘 존재하는 것이라고 알려주기 위해서.


그림책목록

My Friend, Loonie, Nina Lacour / Candlewick Press


Mama and Mommy and Me in the Middle, Nina Lacour


Love makes a family, Sophie Beer / Dial Books


Bathe the cat, Alice B. Mcginty / Chronicle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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