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 거려오는 분위기, 부딪쳐오는 잔들. 각기 다른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맥주인지 소주인지 모를 아무렇게나 섞인 술을 벌컥벌컥 마신다. 오랜만에 보는 동창들의 얼굴은 어쩐지 전보다 세련된 것 같다. 앳된 얼굴에서 이제는 선들이 참 균일하게 잡혀 각지고 멋진 모습이다. 이리저리 테이블을 넘어 시끌 거리는 잡다한 소리들이 귓가를 간질이며 무르익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잔 더 걸치고 고기를 마저 굽는다. 테이블의 모두 재잘거리다가 꺄아 거리며 웃음 짓다가, 하물며 마치 우리 모두 그 시절로 돌아가 있다고 말하는 듯, 어린 모습을 서슴없이 보여준다. 그 모습이 어쩐지 애틋하고 사랑스러워서 피식, 하고 미소 지었다. 시끌 거리는데 어째서 참 조용히 느껴지는지, 고기 한 점 먹고 주변을 둘러본다. 다들 이리 북적거리는데 난 누굴 찾고 싶은 걸까.
딸랑-
아직 안 온 사람이 있었나? 하고 고개를 기울여봤다. 볼 수 있는 얼굴은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아, 너다. 맞다 너다. 너를 미처 못 봤구나. 그래 맞다, 어딘가 조금 허전했던 이유가 네가 없어서였다. 그 미소 옛날 그대로인 채로 배시시 웃으며 옆자리에 앉는 너다.
“와, 이게 얼마만이야!”
바쁜 삶을 살아가며 서서히 멀어졌던, 어느새 연락 횟수보다 프로필 확인 횟수가 더 많아졌던, 너를 보니 괜히 나도 따라 웃어버렸다.
“그러게, 잘 지냈냐?”
시답잖은 얘기들이 오간다. 한두 번씩 모두와 인사하는 너는 다시 나를 비춘다. 이랬던 일, 저랬던 일, 추억을 오가다가 지금을 오가다가 하며 잔들은 채워지고 비워지길 반복한다. 그거 몇 잔 마셨다고 발그레한 네가 애틋하다. 너도 너 취한 걸 아는지 잔은 잠시 내려놓고 웃기만 한다. 왜 웃냐고 투덜거리는 너, 너 때문에 그냥 더 웃어본다.
“옛날 생각나네,” 나는 그리 운을 띄웠다. 갸웃거리는 그 얼굴 옆의 귀가 쫑긋거린다.
그래, 그 어릴 때가 생각나네. 지금보다 철없고, 겁 없고, 바보 같아도 괜찮았던 그때. 뭘 못해도 주눅 들지 않고, 뭘 잘해도 으스대지 않았던 그때. 실패해도 그냥 울고, 성공해도 그저 웃던 때에 난 너를 만났었지. 개학날이었나 새 학기였나, 네가 말 걸었나 내가 말 걸었나, 그런 자잘한 것까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그때 본 네 미소가 살짝 바보 같았던 것 같아서 그건 기억난다. 내가 더 많이 웃었던가 네가 더 많이 웃었던가, 여하튼 같이 있을 때 울진 않았으니까 됐나. 언성 대신 광대가 올렸던 게 많으니 되었나. 그리 평화롭게 나날을 지나다가 잠깐 스친 네 손결에 놀란 후로, 왜 그리도 부끄러웠던 건지는 모르겠다. 시도 때도 없이 기대고 안기는 널 보며, 행여 내 귓가 붉어진 게 보이기라도 할까 봐 간신히 가리고, 그 눈에 내가 차오를 때 내 눈에 찬 네가 보일까 봐 일부러 다른 곳을 보았다.
네 웃는 게, 네 투덜거리는 게, 그 바보 같은 웃음이 하찮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놀리고 싶다가도 조심스러워졌는데. 볼을 잡고 늘리다가도 아파할까 봐 손에 힘 한번 주지도 못하고, 쓰다듬다가도 머리 헝클어트릴까 긴장되어 토닥이다 말았다. 네가 내 전부였듯, 너도 날 신중히 대했다. 장난스럽다가도 누구보다도 진지했다. 그건 말없이도 서로가 알 수 있던 작은 것이었을 테지.
끝이 다가와 겨울을 맞이할 때, 모든 애들이 울고 웃고 난리일 때, 더는 네 곁에 함께 있지 못할 때를 직감했을 때, 그때 비로소 부끄러움을 느꼈던가. 그때 처음 주눅 들었던가. 나 대신 울며불며 엉엉 속상해하던 너를 안아줄 때, 그때 내가 두려웠던 건 네가 없는 것뿐이었는데. 근데 그 대신 흐르던 눈물이 어쩐지 애틋해서, 그 순간은 나도 모르게 그저 넘겨냈다. 변치 않을지도 모르지, 라며 대충 그리 넘겼다. 다만 그때 내 눈앞에서 눈물 흘리는 네가 더 찢어질 듯 아파왔기에. 이별을 하기 전에 우리는 어디서든 놀았다. 학교에서도, 시내거리에서도, 네 집에서도, 내 집에서도, 추억 쌓기에 바빴다.
졸업 이후, 간간히 연락을 하며 지냈다. 어느새 너도, 어느새 나도,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어서. 그게 처음이라서 바삐 살았다. 만나는 날이 연락하는 날이 되고, 연락하는 날이 확인하는 날이 되고, 확인하는 날이 그제야 추억이 되었을 무렵, 너도 나도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지. 마음 한편에 나는 너를 기다리는 듯, 힘들다 느껴질 때 괜스레 꺼내 생각해 보며 잠들었었다.
픽, 그리 웃음을 지으며 지내던 날들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넌 참 어리다.”
놀리는거냐며 콩콩 치는 너. 작은 손은 여전하구나. 그런 너 앞에서 빵 터져서 미안해, 하지만 네가 애틋해 별 수 없었어. 어이구, 소리를 내며 그 접시 앞에 갓 구운 거나 올려줄 뿐이다.
히히, 웃으며 그때를 추억하게 하는 모습. 변함없어 보이다가도, 성숙해졌다고 느끼다가도, 여전히 그때 그대로구나 싶어진다. 귀걸이 새로 산 거 이제 알았네. 목걸이랑 맞춤인 거 이제 알았네. 머리 자른 것보다 길 때가 더 귀여웠는데. 지금도 사랑스럽지만, 그 머리 살짝 스칠 때 진짜 좋았는데. 속으로 되뇌며 입으로는 다른 소리들이나 한다.
오물거리는 그 볼이나 한번 콕 찔러볼까, 하다가 애꿎은 바지나 꽉 잡는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반가운 얼굴들이 몇몇 떠나가고, 다음을 기약한다. 아직 일어날 생각이 없는 너도, 나도, 아직 남아 있는 자들과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를 해댄다. 화장품 새로 샀다는 둥, 이번에 과장 놈이 또 뭐라 했다는 둥, 애인이 자꾸 자기한테 스킨십하고 싶어 한다는 둥, 그런 얘기들.
하하 웃다가 묻는다, 난 뭐 없냐고. 머쓱하지만 답한다, 난 뭐 없다고.
그게 뭐냐고 툴툴거려도 소용없다고 피식 웃으며, 테이블의 모두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귀담아듣는다. 이야기가 오가면서 불씨가 줄어들고, 후식 몇 개 주문해 둔다. 점점 불가는 잠잠해진다. 점점 목소리는 서서히 피곤함이 묻은 채 웃음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이제 어릴 때만큼 밤새 떠드는 건 어려우니까, 세월이 세월인지라 우리 모두 좀 체력이 예전 같지 않으니까.
잠시 일어나서 밤공기 한번 쐬러 나간다. 애들이 입 모아서 이제는 좀 끊으라고 꾸짖지만, 오늘 같을 때 가끔은 괜찮잖아, 하며 대충 피식 웃고 나온다. 평소는 전자담배로 대충 끝내지만, 오늘따라 줄담배가 당긴다. 딱히 오늘 일이 힘들었던 것도 아닐 텐데, 그냥 그럴 때 있으니까.
“야!”
꾸짖으러 나오는 너다. 이거 냄새 좀 독할 텐데, 살짝 옆으로 치워주니 옆으로 와 팍팍 내 애꿎은 팔이나 때린다. 오랜만에 보면서 뭐 하냐며 칭얼거리는데, 그게 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아직 날도 안 풀렸는데, 겉옷도 안 걸치고 나왔네. 안 춥냐고 묻는다. 괜찮다고 너스레 으쓱이는 너다. 대충 걸쳐줄까도 했지만, 좀 과한가 싶어 가만히 있는다.
에취-! 어이구, 내 그럴 줄 알았다. 추우면 들어가라고 혼 좀 내도, 키득거리면서 밀치듯 기대 온다. 다 피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글렀네,라고 생각하며 불이나 끈다. 하늘을 보니 오늘은 좀 별이 있다. 저 검은 것들 사이에 반짝이는 게 뭐 그리 좋다고 방방 뛰는지.
취기가 올랐나, 연락 좀 자주 하라고 칭얼거린다. 맨날 바빠도 그렇지 생일날에만 선물 보내는 게 맞냐고 툴툴, 만나기도 뭐 하면 전화라도 해주지 라며 툴툴, 서운함이 앞서서 말은 안 나오는지 툭툭. 그러려던 건 아닌데라 말하니 뭐가 아니냐며 또 툭툭. 나뿐만 아니라 너도였나, 아, 웃으면 안 되는데. 또 왜 웃냐며 칭얼대는 너라서.
“야, 잠시만.” 살짝 손을 내밀어 본다. 밤공기 차다 했지, 추워서인지 취해서인지 발그레한 볼을 지나 머리를 넘겨준다.
“엉켜있어서.” 괜히 너스레 떤다.
그러니까 또 툭툭, 깜짝 놀랐다며 꾸중하는 너다. 다 끈 담배를 물려다가 아차, 다시 내린다. 이러니까 아예 뺏어버리는 너다. 심통 난 얼굴이 어찌 저리 바보 같은지. 아, 자꾸 웃으면 안 되는데.
좀 떠는 거 같아 보여 데리고 들어간다. 어이구, 고집하고는. 자리로 돌아오자 분위기가 환기되듯, 다시 재잘재잘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 나이 돼 가니까 정착한 후에 여유를 갖기 쉬운지, 애들 장난 말들과 소위 어릴 적 어른들 이야기할 때 간간히 들었던 말들이 적당히 섞여 오고 간다. 애들이 어른 흉내를 내는 것 같은 기분이 새삼 들어도, 이제 다들 그 나이라는 걸 자각하면 아직 나만 아직 애 같은가, 그래서 좀 살짝 섭섭한가, 그런 기분이 든다. 그때보다 늙었어도 아직 우리 어린데, 하고.
“짠! 너희한테 줄 거 있지~!”
너는 작은 가방에서 뒤적뒤적, 신중하고 조심히, 그리고 당당하게 우리에게 내민다. 고급스러운 봉투 안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다. 옛날에 만난다 말했던 그 사람하고 결국은 맺어지려는 건가? 꺄아 거리며 축하하는 애들 사이에서 그냥 픽 미소 지었다. 어딘가 아려오지만, 그래도 네가 기뻐 보여서.
“일찍도 하네, 어쩌다가?” 툭 튀어나왔지만, 별생각 없는 듯 굴었다. 무해하게 헤실거리는 네 모습이 조금은 걱정된다. 강단 있는 너여도 이렇게 순해 보이는데, 혹여 널 막대하면 정말 화날 거 같은데. 물론, 그때 봤을 때는 널 잘 대해주는 것 같았지만. 너는 말한다, 그쪽에서 청혼했다고, 낭만도 넘치게 행복을 약속했다고. 이 바보야, 현실이 쉽겠냐, 빨리 해서 좋을게 뭐 있다고, 속으로 욱하지만 다시 잘 개서 집어넣는다.
“잘 됐다. 축하해.” 그리고는 다듬고 반질반질하게 간직한 말을 대신 건넨다. 해맑기만 한 너. 아오, 밉기도 해라. 애들도 키득키득, 잘살라고 한다. 너무 일찍도 가는 거 아닌가,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어느덧 테이블이 눈에 띄게 비워진다. 슬슬 나갈 준비를 한다.
“나 근처야! 같이 가자!”
참나, 알았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나온다. 같이 앉았던 친구들에게 다음을 기약하고 둘이서 걸어간다. 왜 가로등은 늘 오렌지 빛으로 빛날까? 아무래도 좋은 잡담을 이어가는 너 참 귀엽다. 편의점에 들러서 에쎄 아이스 하나와 숙취 해소제 두 개 산다. 하나 건네주니 또 고맙다며 웃는다. 또 걸어가다가, 잠시 쉬자며 벤치에 걸쳐 앉는다. 하아-. 입김이 나오는 아직 추운 나날이다. 이런 추운 날에 잘도 그렇게 얇게 다닌다. 중얼거리니까, 짖꿎게 미소 짓는다. 나나 잘하라고. 그 말에 나도 웃는다. 말은 잘한다고.
잠깐 적막해진다. 마주치지 못했던 게 많아서 생각나는 접점이 잘 없으니까. 그래도 이런 고요함이 싫지 않아, 이를 말하든 넌 그냥 기대 온다. 나도 늦게 취기가 오르나, 살짝 이마가 뜨거운데. 살짝 깊게 들숨 쉬고 얕게 날숨 쉰다.
“... 좋냐?”
대답 대신 웃는 너. 좋냐고. 뭐가. 너 많이 좋아하지 않았던가. 맞아. 또 잠깐의 적막이 흐른다.
“... 연락하기 또 힘들어지는 거 아니려나.”
“뭐래, 연락은 그냥 하면 되는 거지.”
생각해 보니 정말 너 왜 연락 안 했냐? 투덜대기에 일부러 좀 틱틱거린다. 그럼 뭐 네가 먼저 해주지 그랬냐? 정곡 찔리니까 또 뜨끔해서 꼭 다물지. 어이구, 하지만 서운치도 않다. 내가 뭐라 할 입장도 아니고. 그렇게 어쩌다 잠잠했던 건데, 너랑 멀어진 게 네가 싫어서였음 이리 얼굴 보고 웃고 있기나 하겠냐.
꼭 팔짱 낀 채로 내게 말한다. “꼭 올 거지? 나 보러 와야 돼?”
피식 웃고 대답한다. “봐서.”
봐서가 어딨냐며 또 꽉 팔을 잡고 흔들어댄다. 알았어, 알았어, 가면 되잖아. 그제야 씩, 웃는 너다. 언제 이렇게 집요해졌다니. 픽, 하고 또 웃음이 튀어나온다.
“아, 너 부케 받을래?”
“만나는 사람도 없는데 뭔 부케야.”
“에이, 모르는 거잖아!” 난 네게 주고 싶단 말이야, 라며 미소 짓는 너. 그래 그럼. 대충 답변한다. 사람 만날 생각도 없는데, 네가 내게 주고 싶다는 거면 받아야지.
잠시 동안 또다시 적막, 슬슬 각자 돌아갈 때라는 걸 직감하는 듯이.
“... 모질게 굴면 말해. 아주 매달아 줄게.”
깔깔, 시원하게 웃어버리는 너. 따라 웃는 나. 그럴 일 없다고 손사래 치면서 장난스레 미소 짓는 너. 혹시나 했지, 라며 마주 널 보는 나. 왜인지 오늘따라 네 미소를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오래간만이라 그리 느껴지는지, 아님 또 오래 못 볼 것 같으니 그래 보이는 건지.
“데려다줘?”
괜찮다고, 그 사람이 데리러 올 거라며 하는 너. 어이구, 그렇게 좋냐? 그렇단다. 참나, 뭐가 그리도 좋다는 건지. 너 좋으니 나도 괜찮다는 거지, 가뜩이나 보기 힘든데 앞으로는 연락하기 더 조심스러워지는 거 아닐는지.
“동창회 오길 잘했네~ 겨우 얼굴도 보고.”
너스레를 떨어본다. 픽, 그리고는 또 웃는다. 달이 점점 우리 눈동자 가운데를 향해 움직이는 게 보인다. 슬슬 벤치에서 일어난다.
“잠깐 여기 봐봐.”
한 발짝, 두 발짝, 손짓 한번, 뺨에 한번, 귓가로 한번.
“엉켜 있길래.” 미소 지어 널 본다.
어이구, 말을 먼저 해달라고! 또 그리 웃으며 꾸중하는 너다. 어이구, 칠칠맞긴, 하며 한번 껴안을까 하다가, 툭툭, 나도 너 한번 쳐본다.
“연락 자주 할게.”
“약속했다?”
그렇게 뒤돌렸는데, 잠깐 멈추라는 네 말. 널 다시 보니 꼭 안아주는구나.
“진짜 약속했다? 바빠도 꼭 연락해 주고, 꼭 와주고, 알았지?”
참나, 하고 잠시 마주 꼭 안아준다. 그래그래, 알았어. 그게 그리도 서운했나? 그럼 너도 먼저 해주지, 속으로 생각하지만. 네 그 가로등 아래에서 은은하게 헤실거리는 웃음에, 이번에도 그냥 져주기로 한다. 아, 저 멀리서 너의 그 사람이 보이는구나. 살며시 멀어진다.
“갈게. 잘 가고.”
붕붕 손을 흔들며 달려 나아가는 너. 그걸 잠시 보다가, 깜빡이는 가로등 아래에서 내 갈길을 향해 가는 나. 아까 산거 한번 펴볼까. 하나 툭, 하고 꺼낸다. 후-하고 불어낸다. 오늘 나와보길 잘했네, 너도 만나보고. 지치는 것도 아닌데 왜 담배가 자꾸 당기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터벅터벅, 빌라 계단을 오른다. 대충 올랐을 무렵, 잠시 문 앞에 기댄다. 후우... 얕은 한숨을 내고 들어간다. 아무도 없는 집에 다녀왔습니다를 외치고, 대충 밀쳐놓은 이불 위에 몸을 맡긴다. 괜히 따듯하게 맞닿았던 코트 부분을 만져본다. 그러고는 콧가를 쓱 건드려본다.... 향수도 뿌리네 이제. 키도, 좀 컸던가? 아닌가, 구두였나? 픽 하고 헛웃음이 난다. 몸을 일으켜 앉힌다. 씻고 옷 갈아입으려 움직여야 하는데, 몸이 잘 안 움직인다. 어딘가, 울렁울렁, 아려오는 듯이.
.... 그 사람, 진짜 좋아하나 보네.
.... 행복하려나. 그 사람, 너한테 잘해주려나.
.... 나도 너 자주 보고 싶은데. 이러면 또 어떻게 연락하는지.
.... 오늘 예뻤지, 그때처럼.
......
......
.... 먼저 안아준 거, 기뻤지.
.... 잘 지내겠지.라고, 중얼거린다.
취기가 늦게 오르나 보다. 콧가가 시큰거리는 걸 보니. 눈앞의 전등 빛이 일렁이며 퍼지는 걸 보니. 서로가 오랜만에 닿고 멀어졌던 그 짧은 순간이, 자꾸 떠오르는 걸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