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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May 24. 2023

위안부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대만(중화민국) 정부?

당의 재집권을 위해 역사를 외면 VS 국가 존립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

-본 글에서는 '중화민국'과 '대만'을 혼용하지만, 정식 국호를 언급할 필요가 있을 때엔 '중화민국'만을 사용하며, 중국을 '중화민국'의 의미로 사용할 경우에는 '중국(중화민국)'이라 표기합니다. 그 외의 경우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말합니다.

-본 글의 중국어 인명은 표준외래어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유튜브에 접속해 영상을 보다가 BBC 뉴스 중국어판 채널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기사를 접했다.

"역사는 사라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사과하라."

내용인즉, 대만(타이완) 지역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해 있던 '일본군 위안부'가 92세를 일기로 지난 10일 세상을 떠났으며, 이에 대해 대만 외교부는 일본에 계속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한중(대한민국-중화민국) 단교 이후 한국-대만 관계로 전환되면서 한국은 대만을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 이는 새로운 중국을 수교국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대만의 존재는 한국에서 철저히 지워지다시피 했다. 1992년에 단교한 후 민항기 직행 노선이 복구된 것이 2003년이니, 그 10년 가량의 공백은 대한민국 정부를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승인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한 '중화민국'의 존재를 없애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은 '중화민국'의 역사도 거의 모르지만, 중화민국이 반환받기 전 대만의 상황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이를 문제시할 수는 없지만, 그토록 일본의 식민 통치와 그 후속 조치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대만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는 게, 대만은 한국보다 더 긴 시간을 일본 식민지로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50년씩이나 말이다.


식민통치의 강압성과 악랄함은 조선이 더욱 심했다. 아무래도 일본 열도와 지리적으로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만이라고 해서 일본이 오냐오냐 대한 것은 절대 아니다. 중화권 영화 <태평륜>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담겨 있는데, 항일 전쟁에 참여했던 국민혁명군뿐만 아니라 '식민지 대만'에서 징집당해 일본군으로 싸워야 했던 대만 출신 청년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금성무'로 잘 알려진 배우 카네시로 타케시가 연기했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런 역사 경험의 공통성으로 인해 한국과 대만 양국이 공유하는 아픔이 적지 않기 때문임을 말하고자 함이다. 수많은 조선 사람이 제국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 징용 및 징병당한 것처럼 대만 사람들도 일본에 동원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는 비단 남성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조선 여성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반인륜적인 전쟁 범죄는 당연히 대만 여성들에게까지 자행되었다.


해당 기사에 일본에 의해 착취당한 여성의 수가 기재되어 있다. 중화민국의 '부녀구원기금회(婦女救援基金會)'에 따르면 대만 출신의 위안부는 최소 2000명 이상이며, 피해자의 당시 연령은 14세에서 30대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런 전쟁 범죄를 두고 패전국에 책임을 묻는 것은 마땅한 처사였다.

그러나 항일 전쟁의 주역이었던 중화민국 국민정부가 국공내전에서 패퇴하여 대만 섬으로 들어오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2차 대전에서 패배한 일본과 강화조약 수립도, 외교 관계 복구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만으로 철수한 중화민국 정부는 1952년에일본과 재수교하면서 '중일화평조약'을 체결했는데, 조약 체결 조건이 문제였다.

조약 체결 당시 사진. 좌측은 중국(민국) 대표 예공챠오葉公超, 우측은 일본 대표 카와다 이사오河田烈로 보임. <Taipei Times>

'중일화평조약' 위키백과 항목에는 조약 당시 붙었던 조건이 언급되어 있다.

在「中日和平條約」中表明中華民國放棄要求日本進行戰爭賠款的權力

이를 해석하면 "중일화평조약에서는 중화민국이 일본이 진행한 전쟁의 배상 요구의 권리를 포기함을 표명하였다."다.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1965년 대한민국과 일본국 사이에 체결한 '한일협정'의 내용인 '개인 청구권의 포기'와 아주 유사하다. 물론 위의 문장은 국가가 배상 요구권을 포기한다고 되어 있긴 하나, 한국 정부는 개인 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한 대신 유무상 차관을 얻었고, 중화민국 정부는 국가 차원의 배상권을 포기함으로써 안 그래도 대륙을 잃어 위태로운 상황에서 하루빨리 (미국의 재건 계획으로 급성장하고 있던) 일본과 외교 관계를 복구하는 편을 택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일본에 의해 막대한 인적 및 물적 피해를 감당해야 했던 중국(여기서는 중화민국)과 한국은 정치 및 경제적 이유로 제국주의에 짓밟혔던 수많은 개인을 외면하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그마저도 1972년, 일본이 중화민국 정부와 단교를 선언하고 베이징의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후 새로운 조약('중일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면서 저 중일화평조약은 무효가 되었는데(일본 측이 무효를 선언했다.), 안 그래도 국가 위상의 측면에서 청구권마저 포기한 매우 굴욕적인 조약이었음에도 일단 무효가 되자 더는 일본에 '국가 차원'에서 식민 피해 내역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고, 사실상 '대만'으로 격하당한 중화민국 정부는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국제 사회에서 점점 고립되어 갔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구도가 확실해지면서 적잖은 한국의 정치 세력은 친미반중 노선을 견지할 것을 주장하는 한편, 대만 문제에 있어서도 관심을 기울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현 민주진보당 정부가 친미 태도를 명확히 하자 이에 비해 중국과의 관계를 놓지 않는 것 같은 중국국민당에 대해서는 엄청난 조롱과 비난을 가하고 있다. 이에 중화민국 건국 주체이자 대륙 통치기의 주역이었던 중국국민당은 졸지에 자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까지 '대만 간첩'이란 모욕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글에서 밝혔듯 중화민국의 양대 정치 세력을 단순히 친중과 친미로 구분해서는 안 되는데, 기본적으로 민주진보당과 중국국민당이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원한다는 점에서는 같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국민당이 '매국 세력'이란 욕을 먹음에도 저 '중국' 두 자를 붙들고 있는 것은, 저들이 '중화민국'이란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으며, 그렇기에 중국국민당이 아닌 그냥 국민당이나 '대만국민당'으로 개칭할 경우 '중화민국'이란 나라는 지구상에서 아예 사라져버릴 수 있기 때문인데, 그나마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 않고 있는 것은 중국국민당의 존재 덕분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왜냐, 비록 중공과 중국국민당이 추구하는 중국은 다르긴 하나, 어쨌든 '중국은 하나여야 한다'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이상 중국국민당이 중국 대륙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서다. (유감스럽게도 이제 중국은 언제고 대만을 침공할 기세다.)


이는 곧 중국국민당이 '중화민국'을 위시로 하는 국가주의 정당임과 동시에 근본적으로는 민족주의 정당임을 드러낸다. 그런 맥락에서 형식적으로라도 과거사 문제에 더 강경한 목소리를 내 온 건 중국국민당이다. 국민당의 전통적 입장에서 대만은 중국 영토고, 그 중국은 중화민국이며, 중화민국의 헌법상 영토는 중국 대륙과 대만 섬에 해당하므로 국가의 문제이자 중국 민족의 문제였던 '중일전쟁' 시기의 모든 전쟁범죄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마잉져우(馬英九) 중화민국 전임 총통은 재임 시에 일본을 향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했으며, 그가 중국국민당 출신이자 이 당의 주석까지 역임한 전력을 생각하면 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불편한 상황과는 별개로 대만과 일본의 비공식 교류는 계속되고 있었다. 故 아베 신조 전 총리 재임 당시 일본과 대만의 관계는 절정에 달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대만 사랑은 꽤나 깊었는데, '대만 파이팅'이란 뜻의 대만가유(臺灣加油)란 문구를 붓글씨로 써서 본인 SNS 계정에 올렸고, 대만산 파인애플을 들고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어 또한 SNS에 올리기도 했다. 당시 중화민국 총통은 현임 차이잉원(蔡英文)이었는데, 시진핑이 독재의 야욕을 드러내며 노골적으로 대만을 위협해 오자 일본과의 공조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했고, 이는 현 일본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의 대중 강경 기조로 이어졌다.


2005년 중국에서 이른바 '반국가분열법'이 제정되면서 양안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으나, 2008년부터 시작된 마잉져우 총통 집권기엔 진짜 이러다 두 국가가 통일하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이 제기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그만큼 마잉져우 총통이 국가적 이유로든 정치적 이유로든 대륙과의 관계 개선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재선 후 있었던 2016년 총통 선거에서 차이잉원 후보가 주리뤈(朱立倫)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면서 양안 관계는 다시금 급랭해져 그 어느 때보다 나빠지기에 이른다. '반부패'를 기치로 한 정적 숙청에 완벽히 성공하여 일인 독주 체계를 완비한 시진핑 중국 주석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대만을 위협하자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다고 여긴 차이 총통은 역대 그 어느 정부보다 미국과의 긴밀한 우호 관계를 추구한다.

여기서 대만과 한국의 정치적 유사성이 드러나는데, 한국이 대개 보수 정부 시기에 친미 성향을 강화하면 동시적으로 친일 성향을 띠듯, 대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미국과의 강한 공조를 추구하면 반드시 일본과의 관계도 가까워진다. 그러다 보니 한 국가라도 더 '우방'으로 만들어야 하는 중화민국의 입장에서는 단교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 왔던 일본과 대놓고 친한 모습을 연출해야 했고, 일본은 한국에 비해 중국의 영향을 덜 받는 나라라 대만 관련 발언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대만이 손을 내밀면 이를 흔쾌히 잡아주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민주진보당 입장에선 일본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언행을 절대적으로 삼갈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서는 대만에 대한 일본 식민 통치 문제대만 출신자를 대상으로 한 전쟁범죄 문제거론하지 않아야 했다. 국민당 정부는 '중화민국'을 지키기 위해, 민진당 정부는 '대만'을 지키기 위해 서로 다른 입장을 표방하다 보니 중국(중화민국)에 대해서도, 대만에 대해서도 공통적으로 저지른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온도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상대적으로 민진당 정부로 하여금 과거사 문제에는 함구하도록 함으로써 대만 내 반일 세력의 비판과 비난을 받는 이유가 되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대만의 반일 세력에 오로지 친중화민국 계열(소위 '범람 연맹')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대만 진보 진영(소위 '범록 연맹')에서도 과거사 문제를 거론한다. 이는 중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대만의 중화민국 역사와 대륙 시기 중화민국 역사를 연속된다고 보는 이들과, 순수하게 '대만 섬'을 중심으로 역사를 보려 하는 이들이 거의 유일하게 갖는 접점으로, 범람의 입장에선 대만 출신자도 다 '중화'의 범주에 속하므로 그들이 일본군에게 당했던 성범죄 피해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고, 범록의 입장에서는 '대만 사람들'이 일본군에게 전쟁 범죄를 당했으니 '대만 사람'으로서 일본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된다.


위의 기사에 나와 있듯 중화민국 외교부 대변인(劉永健)은 기자회에서 "일본 측은 대만 측의 제소 내역을 직시하고 대만 출신의 위안부와 그 가족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라."라고 말했는데, 정작 이것을 외교부 성명으로 발표하지 않고 대변인의 발언으로 끝냄으로써 아쉬움을 남겼다. 실제로 민진당 정부의 과거사 문제 제기는 상당히 소극적인데, 민주진보당 주석을 역임했으며 현 정부의 주일대표(사실상 주일대사)인 씨에챵팅(謝長廷)은 2018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만 내부의 중국 정당(중국국민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은 끊임없이 대만과 일본의 충돌과 대립을 가중시키고 있는데, 타이난(臺南)시에 위안부 동상 설립을 주도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대만과 일본의 관계를 파괴하는 작용을 한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일본을 돕는다는 뜻의 조일대표(助日代表, 중국어로는 駐와 助의 발음이 같)라는 비난을 받았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민주당 집권기에 민주당 대표를 지낸 이가 주일대사로 발령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그가 일본에 강경한 발언을 쏟아놓기는커녕 국내의 위안부 동상 설립을 두고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행위(??!)'라며 오히려 그들을 두고 '종북세력'이비난했다면? 아마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을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 및 진보 세력은 무슨 X소리를 지껄이느냐며 그를 반민주/민족세력으로 규정하고 공격할 것이며, 국민의힘 지지자 및 보수 세력은 '그의 발언은 곧 민주당의 본심을 드러낸 것'이라며 조롱하기 바쁠 것이다.

이런 일이 대만에서는 정반대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국국민당의 일당독재에 항거하여 민주화를 이뤄낸 민주진보당은 한국 보수 세력의 입장으로 보면 '빨갱이'나 다름없다. 마치 민주당이 '구국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을 폄훼하는 것처럼, 저들은 대만의 보수 세력에게는 '혁명 영웅 장공(蔣公, 장제스에 대한 경칭)'을 격하하려는 반국가 세력인 것이다. 문제는 대만과 한국의 진보 대 보수의 정치 대립 구도가 동일한 것과는 달리, 외교 방면에서는 중국과의 거리를 좁혀 통일에 우호적인 상황을 연출하려는 한국 진보 세력에 비해 대만 진보 세력은 어떻게든 중국과 떨어지려 안간힘을 쓰고 있기에, '민주 세력 대 권위주의 추종 세력'의 구도로 보면 같은 입장인 더불어민주당과 민주진보당이 정작 '반중 대 친중'이라는 매우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구도로 보면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으며, 이를 한국의 보수 세력의 관점으로 보면 민주진보당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애쓰는 현명한 정치 집단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중국을 놓지 못하는 반미매국세력이 돼버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중국에 대한 각국의 거대 진보 정당의 입장차가 역사 문제에 대해 상이한 견해로 이어지는 관계로, 이는 더더욱 한국의 보수 세력이 민주당을 필두로 한 진보 세력을 공격하는 좋은 빌미로 작용하게 된다.




위의 글을 통해 중화민국의 현 집권 정당인 민주진보당이 상대적으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임을 확인했다. 이는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자유 진영'의 조력하에 대중 의존도를 줄이고 국가 자립을 추구하려는 민진당의 국정 운영 방책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만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대만 문제'에 해당하는 대만 출신 위안부 피해자에의 사죄와 배상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국가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목하에 자신들이 그토록 주장해 왔던 가치를 퇴색하게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 중화민국 정부가 과거에 체결했던 '중일화평조약'의 굴욕적인 단서조항에 동의할 리는 없으나, 미국과 일본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현실을 고려할 때, 아마 민진당 정부에서 주도/적극적으로 일본 정부에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며 사과를 요구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하여 대만의 국민들이 이런 모순적 행보에 반발하여 정부를 성토하는 일 또한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들 또한 현재 자국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인지하고는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다수의 한국인이 북한의 위협에 별 신경을 쓰지 않듯 대만 사람들도 중국에서 저러는 게 한두 번이냐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대만 정부가 군 복무 기간 연장안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 안보의 측면에서 미국과 일본의 도움이 필요함을 아는 이상 정부에서 위안부 피해와 같은 역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 해서 이를 크게 문제시하지는 않으리라 예측되며, 오히려 '대만'으로서 독립하길 원하는 급진 세력과는 달리 '그냥 이대로'를 원하는 현상 유지파가 더 많기 때문에, 날로 높아지는 중국의 위협적 언행이 현상 유지를 저해한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인식이야말로 전부터 이어져 왔던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일본의 힘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과거사 문제에 있어 자유로운 태도를 취하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만의 경우에도 정치적 무관심층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상당히 많아서 독립을 적극 지향하는 세력은 그리 크지 않은데, 그럼에도 무관심층이 대륙의 베이징 정부에 우호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대만의 이러한 상황으로 미뤄 볼 때, 한국의 경우에도 일본에 쉽게 과거사 사죄와 배상을 언급하지는 못할 것이다. 당장 윤석열 정부의 행적만 봐도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자'는 식인데, 앞으로 임기가 4년 정도 남은 이상 대일 강경 기조를 채택할 일은 없어 보이며, 민주당은 이런 정부와 여당의 태도를 맹렬히 비난하며 자신들의 영역과 입지를 확보해 나가려 할 것이다. 물론 중국은 어김없이 이런 한국의 행보에 '내정 간섭'하듯 몇 마디를 던질 텐데, 아무래도 그렇게 되면 유리한 건 현 여당인 국민의힘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역사적 맥락상 미국보다 중국을 싫어하는 경향이 훨씬 강해 미국이 아무리 미운 짓을 한다 하더라도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진보 세력에서 한국의 외교적 상황을 이유로 '실용 내지 중립 외교'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한들, 다수 한국인의 입장에서 아국을 속국 대하듯 하는 중국의 태도 때문에라도 친미 노선을 견지할 것을 주문할 텐데, 그렇게 될 경우 마치 적의 적은 친구가 된다는 말처럼, 역사 문제로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으나 우리나라의 우방인 미국의 우방인 일본과 거리를 두기란 매우 어려운 일다. 그런 이유로 다음 대선에서 윤석열 정부의 실정으로 민주당에서 대통령을 배출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쉽게 대중 유화책을 펼 수는 없으리라 추측한다. 중국과의 우호 노선은 곧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그때쯤이면 끝난 후일지는 모르겠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원흉을 인정하는 꼴로 비춰질 수 있기에 한국인들은 이를 원치 않을 것이므로, 여러 측면에서 보아도 현 한국의 정세가 보수 정당에게 유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글의 주제가 주제인 만큼 본론으로 돌아가 글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차이잉원 정부는 집권 이후 대놓고 대만 정체성을 표방하고 있지는 않다. 전임 진보 정부였던 쳔쉐이볜(陳水扁) 정부의 기조를 어느 정도 이으면서도 그보다는 더 온건한 방침을 채택했다고 봄이 타당한데, 공식 석상에서 아예 중화민국이란 표현을 배제하지는 않는 대신 '중화민국대만'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이 그 예에 해당한다(이를 두고 전임 총통 마잉져우는 '정식 국호는 중화민국'이라며 비판했다). 다만 '양안은 서로 예속되지 않는다(兩岸互不隸屬)'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중국 대륙과의 선은 확실히 그었다(전임 총통 마잉져우는 이를 두고는 '헌법 위반'이라며 비판했다. 이는 그가 헌법상 중국 대륙이 중화민국의 영토임을 견지하는 보수파임을 확실히 드러낸다.). 그런데다 차기 대선의 민주진보당 후보로 확정된 현 중화민국 부총통 라이칭더(賴淸德)가 국민당의 허우여우이(候友宜)와 대만민중당의 커원져(柯文哲) 후보 두 사람을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만큼, 이 추세가 실제 대선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차이 정부와 그 후임 정부는 중화민국과 대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면서 끊임없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대표되는 중국과는 계속해서 거리를 둔 채 독자성을 확보해 나갈 것으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밀월 관계를 유지하여 신냉전 구도가 해소되지 않은 채 더욱 심화된다면, 한국이 전처럼 대만에 무관심하거나 대만에 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할 수는 없을 것이며, 일본이나 미국 수준은 아니라 할지라도 양국간 비공식 교류가 증가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펴 본다. 물론 그렇게 될 경우, 중국의 경제 보복과 함께 양국의 가시적 마찰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이 미국 및 중국 양국과 동시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상의 극본이지만, 현 국제 정치 상황과 중국의 행태를 고려하면 그 바람은 순전히 희망 사항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는 한국이 어느 한쪽 편에 서지 않고는 곤란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란 의미기도 하다. 어쩌면, 한국의 향후 외교 노선은 대만이 중국과의 거리를 조절하는 정도와 비례한다고 봄이 여러모로 타당하겠다.


이렇게 미중 양강 구도와 양국간 대립이 지속되는 동안, 정작 역사의 피해자였던 이들은 그 누구에게도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대만의 마지막으로 남은 성노예 피해자가 별세했듯 한국의 경우도 동일하게 될 텐데, 일본이 자유 진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그들은 과거를 철저히 망각한 채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겠단 명목으로 정상국가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국가의 방침 앞에 개인은 참 무력함을 깨닫게 되는 지점이다.




<본 페이지의 중화민국(대만) 시리즈>

- 대만에서 반중(反中)의 척도는?

- '하나의 중국'과 현상 유지 (글 상단 '기존 글'에 걸린 링크와 동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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