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커피와 한국 현대 커피문화(2)
한국 전쟁 시기 어떨결에 탄생한 현대 한국 커피문화는종전 이후 큰 발전과 변화 없이 잠잠하게 흘러갔다.
그러다 휴전으로부터 약 7년뒤인 60년대 우리는 커피 문화의 발전을 이뤘다고 볼 수 있는 현상들을 볼 수 있게 되는데 필자는 해당 시기의 커피문화를 '사막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 이유는 60년대의 사회적 배경 때문인데, 당시 사회적 배경에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50년대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커피 생산시설이 존재하지 않아 밀수된 커피를 통해 커피 문화가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외제품에대한 강력한 규제가 있는, 즉 기승을 부리는 밀수에대한 단속과 규제가 심한 시대로
60년대에는 밀수 행위를 특별 단속하는 구간이 있었음은 물론이며, 밀수 행위가 적발되었을 경우에는 강력한 처벌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밀수품을 판매하다 적발되는 경우에도 처벌을 받았으며, 다방에서 판매되는 커피가 대표적인 예시인데, 커피를 판매한 다방에대한 벌금 및 처벌은 물론 다방 마담의 경우 가게가 영업정지를 당하는 일 또한 적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밀수가 어느정도로 기승을 부렸는지에관한 사실은 1968년 10.01일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면 확인할 수 있는데, 해당 기사에 따르면 그 해의 밀수 단속 횟수는 7190건이며 실적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당식 금액으로 10억7천6백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기록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와 같은 처벌과 단속은 한국인들의 커피 사랑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밀수에대한 규제와 단속에도 불구하고 다방에서 커피를 찾는 손님은 많았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자국만의 커피 메뉴도 개발하였다. 바로 인스턴트 커피에 노른자를 동동 띄운 '모닝'이라는 우리만의 메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커피의 보급화와 대중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필자를 비롯한 요즘 세대에서는 들어보지도 접하지도 못한 조합으로 의아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우리만의 고유한 커피 메뉴이자 해당 시기를 대표하는 메뉴로, 한국 커피 문화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한 메뉴라 볼 수 있다.
온갖 규제 속에서 이 모든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바로 커피를 소비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했다는 사실, 즉 다방이라는 커피 소비 주 무대 공간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것이다.
물론 50년대에도 다방이 있었지만 휴전이 되고 그 상황이 아주 조금씩 안정화되면서 60년대 그 개수가 늘어난 탓에 다방은 주 소비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다방에 관련해서는 추후 소개될 커피 공간에대해 서술하는 파트에서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겠다.)
60년대 비록 우리의 커피 문화는 밀수라는 행위를 통해 발전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수라는 큰 벽에 구애받지 않고 커피를 사랑했다는 점과
단순하게 소비하는것에서 그치지않고 한국만의 고유한 커피 메뉴 또한 개발하였다는점에서 우리는 이 시기의 커피 문화를 주목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