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학원을 운영하며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성격, 태도, 학습 방식이 놀라울 만큼 비슷한 패턴으로 묶여 나타난다는 점이다. 물론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일정한 범주로 묶어 보면, 무수히 다양한 듯 보이는 인간 군상이 의외로 한정된 패턴 속에서 반복되는 듯하다.
나는 아내와 함께 학원을 졸업한 아이들을 ‘세대’라고 부른다. 초기의 1세대, 그 뒤를 잇는 2세대.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대가 바뀌어도 성격이나 말투, 학습 습관이 비슷한 후배들이 나타난다. “이번에 새로 온 학생, 누구누구 닮지 않았어?”라고 물으면, 아내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경험이 쌓일수록 학생을 더 빨리 이해할 수 있고, 시행착오를 줄여 맞춤형 학습 지도를 적용하기가 수월해진다. 이것이 경력이 주는 힘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늘 경계해야 한다. 유형화는 편리하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편견의 위험이 도사린다. 예외적 변수를 놓치고, 첫인상에 사로잡힌 채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직관을 ‘가설’로만 두고, 반드시 과제 수행, 출결, 수업 태도와 같은 객관적 자료로 검증하려 한다. 직관을 부정하지 않되, 증거와 함께 균형을 잡는 것이다.
때로는 잠깐의 관찰만으로도 학생의 학습 태도와 성과의 흐름이 대략 그려진다. 놀랍게도 결과가 예측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예측은 가능성의 분포를 보는 것이지, 운명을 확정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에서 직관은 학생을 가두는 틀이 아니라, 지원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참고 지표여야 한다.
특히 마음을 움직이는 학생들이 있다. 정서가 안정되고, 성실하며, 과제를 정직하게 수행하는 아이들이다. 그들은 겸손하고 예의 바르며, 어린 나이에도 이미 중요한 삶의 덕목들을 지니고 있다. 인격을 도야하려 애쓰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나로서는 그런 학생들의 자질이 놀랍기만 하다. 오히려 내가 배운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쯤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다른 이의 눈에 어떤 유형으로 보일까?” 학생들을 분류하는 일은 쉽지만, 정작 내가 누군가의 분류 속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유형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지도일 뿐, 그 사람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결국 교육은 두 가지 태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 같다.
반복되는 패턴을 읽는 눈, 그리고 각각의 학생이 유일하다는 믿음.
이 두 가지가 함께할 때, 우리는 군집 속에서도 한 사람의 얼굴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 예측은 누군가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말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문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