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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Nov 16. 2022

기억을 걷는 시간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에 그 공기 속에도


이맘때쯤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쓸쓸하게 단풍 낙엽이 떨어지고, 차가운 공기가 느껴질 때의 외로움.


그럴 때 따뜻하게 손 잡고 산책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같이 지어먹고 안고 있었던 사람이 생각난다.


내가 만약 다른 직업을 갖고 싶다면, 첫 번째가 작가 (소설가, 수필가, 영화/드라마 작가 등)이고, 두 번째가 작사가이다.


종이 책 출판을 꿈꾸며 성실히 글을 쓰고 있는 한편, 내가 작사한 노래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기억되는 날 또한 꿈꿔본다.


그래서 김이나 님이 쓴 작사에 관한 책도 사서 몇 번이고 읽어보고 작사 공모전에도 참여해보는 이유다.

그런 나에게 다른 노래의 가사도 훌륭하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참 묘한 매력이 있다.


그렇게 슬프지 않은 가사에서 진한 슬픔과 그리움이 느껴진다.


잔잔한 음악의 흐름에서 서정적인 가사만으로도, 강렬한 표현으로 슬프다고 울부짖는 노래보다 더 자연스레 예전 기억이 떠오르고 그때의 슬픈 감정이 느껴지게 한다.


요즘같이 쌀쌀한 만추이자 겨울의 초입에, 늦은 저녁 일을 마치고 퇴근하며 느끼는 차가운 바람에 옷을 여미고 발걸음을 옮기다,


온기로 뿌해 보이는 어느 술집 안 예전 그 친구와 닮은 사람을 보았을 때 더 그렇다.


우리도 추운 겨울, 저렇게 따뜻한 정종을 마시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서로 지그시 바라보며 함께 했었는데.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진 저 의자 위에도

물을 마시려 무심코 집어 든 유리잔 안에도

나를 바라보기 위해 마주한 그 거울 속에도

귓가에 살며시 내려앉은 음악 속에도

니가 있어


여운을 좋아하는 나는, 처음에 이야기한 유명한 후렴부 가사보다 이 무반주 속 가사를 더 좋아한다.


특히,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상황에 있으면 이 부분이 공감이 많이 된다.


‘물을 마시려 무심코 집어 든 유리잔‘이 평상시 어떤 슬픔을 야기하겠나.


하지만, 헤어짐으로 슬픈 날, 시도 때도 없이 옛날 생각으로 서글퍼질 때, 함께 밥 먹으며 내가 따라주었던 유리잔이 생각나기도 할 거다.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진 저 의자’도 평상시엔 아무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물건일 거다.


하지만, 슬픈 날엔 나처럼 내버려져 혼자 외로워 보이는 동질감을 느끼게도 하고,

왠지 그 친구가 저기 앉아 예전처럼 날 환한 미소로 바라보며 어서 와 옆에 앉으라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다.


이제는 홀로 걷는 이 돌담길.

꼭 붙어 걷던 그날이 생각난다.


https://youtu.be/83IfZhO4P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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