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다녀오겠습니다."
독서모임 중 잠시 쉬는 시간, 우리만의 언어(?)를 넌지시 사용한다.
"ㅎㅎ 다녀오세요."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1926~2006)
한국의 노인 중에는
지금도
화장실에 갈 때
유유히 일어나
"총독부에 다녀올게"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던가
조선총독부에서 소환장이 오면
가지 않고는 못 버티던 시대
불가피한 사정
이를 배설과 연결 지은 해학과 신랄함
이 부분을 독서모임에서 같이 읽고 '우와'하고 감탄했었다. 그때부터 화장실 갈 때, "'조선총독부'에 다녀오겠다"라고 하자고 했던 기억을 떠올려 이번에 써먹었다.
나이가 들고 혼자 있는 게 편해질수록 그동안 이어왔던 우정들은 각각의 삶의 모양을 따라 느슨해진 공간을 독서로 빼곡히 채우는 마법을 경험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는데, 같은 책을 읽고 밖으로 끄집어내어 나눠보니 혼자 느꼈던 마법이 구성원들을 만나 풍성하고 향기로운 파티로 변하는 느낌이 환상적이었다.
우리 독서모임의 시작은 다른 브런치 북 <쓰여지는 일상> 의 https://brunch.co.kr/@6dccb52adc6545f/15 에서 소개했다. 작년까지 도서관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올해부터 장소를 집에서 10분 거리의 '**카페'로 옮기게 되었다. 카페의 분위기가 독서모임하기에 딱 좋고, 우리만 사용할 수 있는 룸을 최대 3시간까지 대여가능하며 음료와 케이크도 주문할 수 있다. 무엇보다 2주에 한번 열리는 책파티(!)에 걸어서 갈 수 있으니 갈 때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모임을 위해 한 달에 두 권은 필수적으로 책을 읽게 된다. 작년의 나라면 실천하기 어려웠을 독서 과제를 올해는 계획을 세워 완료하고 있다. 계획이란 게, 모임 날짜를 앞두고 되는대로 책을 읽다 보면 결국 다 못 읽게 되는 폐해를 막기 위해 모임 2주 전부터 하루에 한 챕터 혹은 읽을 페이지 수를 정해 매일 실천하는 거다. 이렇게 읽어보니 간혹 밀리더라도 다음날 조금 부지런을 떨어서 만회할 수 있었다. 책을 끝까지 읽고 자신만의 단상을 담은 글을 밴드에 올리고, 모임 때 나누다 보면 매번 시간이 부족하다.
성격과 기질이 다르다고 느꼈던 구성원들을 같은 책을 읽고도 역시 정해진 답이 없는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본인의 근황부터 내밀한 비밀 혹은 바라는 소망 등 소위 술 한잔 들어가야(?) 나올 법한 진지한 얘기들이 반짝반짝한 아침나절에 뿅 하고 등장한다. 그러고 나면 독서모임의 멤버들이 애틋해진다.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 밥을 차리다가, 지나가다 어떤 꽃향기를 맡게 되면, 나눴던 책과 연관된 다른 책을 만나면... 그런 순간들이 사라질 새라 독서모임의 단톡방에서 생기 넘치는 대화가 오간다.
독서모임은 도서관이 만들어 준 소중한 인연이다. 혹시 아직도 나와 맞는 독서모임을 만나지 못했다면 도서관의 알림판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라. 전국의 독서 동아리들이 양팔을 활짝 벌린 채 새 멤버를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