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낮시간,
온 가족이 도서관을 향했다.
주말은 게임하는 날이지만, 연말까지 우리끼리 돈이 걸린 중요한 도전을 하기로 했기에 아이들은 자진해서 도서관 가는 데 따라나섰다.
도전이라 함은 독서빙고를 하자는 건데, 다섯 식구 모두 5*5의 25개 칸에 고전소설 5권, 현대소설 5권, 역사 관련 5권, 과학 관련 5권, 추천 도서 5권을 쓰고 이걸 모두 읽으면 상금을 받을 수 있다. 상금은 한 줄당 1만 원, 만약 25칸을 다 채우면 보너스 3만 원을 더한 15만 원을 받게 된다.
남편이 이걸 기획하고 상금준비까지 하겠다고 해서 나도 (돈에 눈이 어두워) 적극적으로 책 목록을 작성했다. 책을 읽는 게 쉼이자, 취미이자, 생활인 첫째는 그 얘길 듣자마자 신나서 도서관에 가기도 전에 목록을 거의 다 뽑아뒀다. 둘째와 셋째는 자신을 없지만 해 보겠단다.
도서관 가는 길에 비가 시원하게 왔다. 6월의 비는 6월의 냄새를 담고 있다. 곧 올 장마가 생각나게 만드는, 잔뜩 물을 머금은 냄새랄까. 오래된 도서관 주차장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하마터면 책이고 뭐고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떠올라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다행히 도서관에 들어가면서 서서히 정신이 차려졌다. 그곳에 가득한 책의 진하고 구수한 냄새가 살랑거리는 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이번 빙고에 그림책은 안된다는 규칙이 있어, 우리는 자연스레 J가 붙은 서고로 향했다. 동생들의 책 추천을 맡은 첫째는 LTE급 속도로 책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정재승교수님의 과학서, 청소년 심리학, 아이 눈높이에서 돈을 다루는 법 등 어릴 때부터 책을 읽어온 내공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둘째와 셋째도 책을 보더니 처음엔 "내가 이걸 읽을 수 있을까?"라고 자신 없어하다가, 엄마 아빠가 "진짜 재밌겠다. 한번 읽어보자."하고 추임새를 넣으니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고르느라 한참 있을 줄 알았던 도서관 행은 아침부터 오후가 넘어서까지 식사를 안 하고 대충 건너뛴 여파로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교훈, 도서관에 가기 전 배를 든든히 해야 기껏 가놓고 배고파서 나오는 일이 줄어든다)
마음의 양식만큼 중요한 몸의 양식을 오후 4시가 넘어서 채우고 난 후에야 여유가 생겨 잠시 쉬고 저녁에 모이기로 했다.(이러니 집에 있어도 가족끼리 카톡으로 대화를 하지^^;)
빙고의 시작을 위해 장르별로 종이를 만들어 뽑기 준비를 했다. 가위바위보를 해 첫 번째 뽑을 사람을 정하고 그 사람이 지정하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첫 타자는 나였는데, '고전'을 뽑았다. 옆에서 들리는 한숨소리를 못 들은 척 빙고칸 중 정 가운데를 골랐다. '내 고전 목록에 있는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저 자리에 넣어야지' 25개의 칸은 금방 자리가 정해졌고, 이후 각자가 도서목록을 넣어 칸을 채웠다.
그동안 읽으려 했으나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이번 기회에 읽어보자며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도서를 넣어 칸을 채워보니 줄줄이 버티고 있는 벽돌책들 덕에 수월하게 넘어가기는 글렀다. '연말에 웃으려면 힘들 때마다 내가 받을 상금을 떠올리자.'
모두 도전의 열기가 불타올라 닫혀있던 베란다 창문을 열어젓혔다. 6월의 시원한 밤바람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모두를 응원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