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건물의 엘리베이터라 그런가. 꿉꿉한 냄새가 났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익숙한 냄새...
밖으로 나오니 장마철에 접어든 동네의 공기는 진공 속에 들어간 듯 붕 떠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받은 스트레스 덕에 최근 한의원 신세를 다시 지면서
결심한 게 '일을 줄이자'였다.
결심 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게 살 것 같았다.
마음만 가벼워져도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더라.
꿉꿉한 공기 때문에 처지는 건지,
진이 다 빠져버린 몸의 아우성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음만은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으로 지난밤 비를 맞고 몇 뼘은 더 자랐을 나무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막둥이가 부탁한 책을 대출한다는 핑계로
역시 오늘도 도서관으로 향했다.
숲 속의 집 같은 '물푸레 도서관'
오늘도 이곳을 찾았다.
마침, 도서관 정리작업이 한창이었다.
여기저기 책이 쌓여있고, 분주하게 책을 옮기고 정리하는 옆에서 여유롭게 대출할 책을 검색하고 있는 내 처지가 매우 호사스럽게 다가왔다. 함정은 대출할 책 목록을 핸드폰 사진첩에서 못 찾고 있다는 것.
분명히 잘 찍어뒀는데 몇 개월 전 사진까지 올라가 봐도 안 보이는 건 무슨 조화인지...
결국 사진을 못 찾고, 이번 주에 막둥이와 읽을 그림책을 신간으로 골라볼까 하다가 발견한 도서관의 꿀팁이 있었다.
어떤 책을 대출할지 고민될 때 참고하라며 떡하니 놓여있는 2024년 도서관의 활동모습을 담은 소책자였는데, 거기 있는 책만 검색해도 이번 주 대출 목록은 충분히 나왔다. 신나서 춤추는 손가락을 진정시키고, 앞에서부터 10권 정도만 순서대로 찾았다. 제법 뺵빽한 다음 목록들이 궁금해서 또 이곳을 찾게 만드는 마법의 장부(?)가 아닐까 싶었다.
내가 대출하고 싶었던 책도 마침 있어서 외국소설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책을 찾으러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순간 원통형의 책장이 나를 감싸는 듯한 공간이 등장했다. 반듯반듯한 서재만 왔다 갔다 하다가, 다른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간 듯한 이곳은 "헬로, 곤니치와, 니하오" 등의 인사를 건네며 두 팔을 벌려 환영해 주는 느낌이랄까. 책 제목만 훑어도 어디서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 가득했다. 소설을, 그것도 외국 소설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색하게 쭈뼛거리며 찾던 책을 가장 위칸에서 발견했다. '자주 올게.' '자주 만나자.' 자꾸 속으로 인사를 하게 되던 곳. 습한 공기를 견디며 동서양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을 쉬는 이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대출한 책을 한 아름 이고 지고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초록빛 진공상태. 짧은 순간이지만 잠깐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도서관 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