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부르는 이야기

난다 님 감사해요

by 엄살

도서관 글 마감이 주말이라 자꾸 주말에 글을 쓰게 된다. (뚜벅이 글은 개인사정으로 멋대로 연재를 쉬고 있다><) '미리미리'의 미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전형적인 P성향의 나란 인간은 어쩌면 그리도 매일 매 순간 하고 싶은 일과 읽고 싶은 책이 다양한지... 쓰고 싶은 글도 수시로 바뀌는데, 연재를 하고 있어 주말이 다가오면 '도서관'에 초점을 맞추고자 잠시잠깐 애를 쓴다.


매주 도서관에 가서 읽지도 못할 책을 잔뜩 빌려오지만, 두 주(도서관에 빌려온 책을 반납하는 기간)가 지나는 동안 읽을 수 있는 책과 없는 책 정도는 분류가 된다. 문제는 그동안 다 못 읽어서 재대출을 해야 하는 책이 있을 때다. 요즘 푹 빠져 있는 책이 난다 작가의 '어쿠스틱라이프(만화)'는 모든 도서관에서 대출이 가능하지 않고, 대부분 대출 불가라서(인기가 많다) 처음에 대출했던 도서관에 가야만 재대출이 가능했다. 어차피 주말에는 '김기사(남편)'가 계시므로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도서관이더라도 상관없지만. 김기사 왈 "우리가 도서관에서 책을 공짜로 빌리는 것 같지? 먼 곳으로 가게 되면 기름값이 그만큼 들어. 그래서 엄밀히 따지면 공짜는 아니야."라며 은근슬쩍 가장 가까운 '교하도서관'으로 가기를 종용했다. 대강 "어, 그럼. 알지." 난 영혼 없이 끄덕이고는 "그럼 교하도서관으로 갈까? 내 책은 아직 덜 읽었으니 연체해야겠네."

연체라는 말에 움찔하는 소심한 J형 남편은 기름값 얘기는 쏙 들어가고 "연체 안 하려면 어느 도서관 가야 하는데?" 묻는다. 속으로 '아싸'를 외치며 "가람도서관"이라 대답했다.






'어쿠스틱라이프'는 만화임에도 진도를 빨리 뺄(?) 수 없는 내게는 신기한 만화이다. 어째 자꾸 정독하게 된달까? 아끼는 간식을 야금야금 먹듯, 오전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와 잠시 쉬는 시간에 포크 하나로만 먹을 수 있게 이것저것 다 때려 넣고 샐러드를 만들어 소파에 기대 책을 넘기며 30분 동안 한 챕터에 빠졌다 나오면 오후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어쩌다 무서운 영상을 본 막둥이가 잠이 안 온다고 하는 밤이면(난 밤이 되면 에너지가 방전되면서 잠이 쏟아진다) 내가 먼저 잠들면 안 된다고 우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그래도 잠이 안 온다고 하면 각자 책을 읽자고 한 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어쿠스틱라이프'를 펼쳤다. 이상하게 그 시간에 읽는 이야기는 낮에 읽는 것과는 다르게 속도가 나서 아쉽고, 어서 아이가 잠들어서 아꼈다 다음날 읽고 싶었다. 내가 만화를 보고 있으니 막둥이가 내용이 궁금하다며 읽다가 살짝 웃기도 했는데, 아이가 읽기엔 나름 심오한 어른개그가 펼쳐지니 몇 페이지 정도 읽고는 돌려주었다.


내용 중 주인공이 아이를 낳고 나서 일주일에 한 번은 남편이 아이를 봐주고 2-3시간 정도 생기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가 있다. 남편과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계획을 세울 시간도 아까워 소파에 누워 바로 만화책을 편단다. 소파에 누웠다가 일어나 식탁으로 가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또 만화책을 읽다 보면 금세 끝나버리는 휴식시간. 또 다른 날은 걸어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대출하고, 올 때는 책 내용이 궁금해 버스를 타고 빨리 귀가해 책 내용을 확인한단다. 그것만 해도 2-3 시간은 훌쩍 끝나버리지만 말이다. 엄마가 되어보니 혼자만의 2-3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난 이제야 그걸 깨달았는데 이미 아이가 어릴 때부터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시작한 작가가 참 지혜롭다는 생각을 했다.


또 다른 에피소드로 낮잠을 자고 한밤중에 깨어난 날, 거울에 비친 산발이 된 머리의 맞은편 여자를 보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질문을 하며 자고 있는 남자와 아이를 확인하고는 '이 사람들이 내 가족들이구나.'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이게 내가 사는 집이구나.' 인지하는 분에서 매트헤이그의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소설의 주인공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 상황은 아니다^^;) 나도 가끔 주말에 알람 없이 낮잠을 자고 일어날 때가 있는데 대부분 해가 넘어가는 저녁때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가 낯설게 느껴지고, 거실에서 나는 소리들이 꿈을 꾸듯 희미하게 들리다가 점점 커지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인지하게 되는 짧은 순간이 꽤 공감되어서 웃음이 났다.



스크린샷 2025-06-28 202512.png 난다 에세이 <거의 정반대의 행복> 표지사진


'난다'작가의 매력에 빠져 <거의 정반대의 행복>이라는 에세이도 읽는 중인데, 글로 만나는 이야기들은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재미가 있어서 그것대로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반쯤 읽었을 때쯤 오늘이 마감일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책을 덮고 노트북을 펼쳤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마음. 푹 쉬고 에너지가 가득 찼을 때 생기는 기분 좋은 열정. 내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싶은 기특한 생각을 품게 해 준 소중한 이야기를 소개하다가 오늘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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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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