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한숨
세 아이를 기르는 중이다. 휴...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딱히 요령이 없어서 15년간 단 한 가지만 고수하고 있다. '책 많이 읽히기'
다행히 첫째는 책을 좋아하는 성향이었다. 어려서 매일밤 책을 읽어주었고, 어딜 가든 책만 있으면 조용해졌다. 중학생인데도 친구보다 책을 더 좋아하니 진짜 좋아하는 것 같다.
둘째도 책을 조금은 좋아한다. 본인 입맛에 맞으면 열심히 읽는 편이다.
셋째는 책에 관심이 없다...
주말이면 세 아이들은 하루종일 게임을 할 수 있다. 물론, 세 가지 조건이 있다.
1.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기(수업시간에 집중하기)
2. 집에 와서 그날 배운 거 복습하기(EBS 인강으로)
3. 한 주 동안 책 1권 읽기
셋 다 너무나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조건을 지키는데 큰 불만은 없어 보였다. 책에 관심이 없는 셋째도 뭐든 읽었다. 글 책이든 그림책이든 어떤 책이든 통과였으니까.
첫째가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집에 굴러다니던 해리포터 1,2권을 열심히 읽는 것을 보고 신랑이 갑자기 알라딘에서 전집을 사 왔다. 다 읽으면 선물을 사주겠다는 약속도 함께. 한두어 달 걸렸을까? 첫째는 순식간에 다 읽었고, 그때부터 판타지라는 새로운 장르에 관심이 생겼을 뿐 아니라 조 엔 롤링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갖게 되었다.
둘째가 5학년 정도 되었을 때 신랑은 이 아이에게도 해리포터를 소개했다. 해리포터 전집을 다 읽으면 원하는 게임칩을 사주겠다는 딜(!)도 곁들여서. 이 녀석은 한 1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그래도 다 읽어냈고, 그러면서 우리 집에서는 일명 '해리포터뽕'이 생겼다. 친척들 혹은 주변 어른들을 만났을 때 해리포터를 읽었다는 이야기를 자랑같이 한달까...
막내가 3학년이 되던 해, 신랑은 해리포터 이야기를 꺼냈다. 과연?이라는 의구심을 깨고 이 녀석은 매일 1등으로 교실에 들어가 책상에 앉아 해리포터를 읽기 시작했다. 학기 중 상담에서 담임 선생님도 그 점을 칭찬했으며, 어린이날에는 '독서왕'이라는 상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난 자꾸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해리포터가 재밌니?" 내가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어봤을 때도 대답은 "네"였다.
주말게임을 위해 '책 한 권 읽기'는 이제 '읽고 독후감 쓰기'로 레벨업 되었다.
첫 번째 숙제검사 때,
막내는 독후감을 3페이지 썼다. 팔이 아파 죽겠다면서...
해리포터의 군데군데를 베껴 쓴 것이었다. 아무리 이해해 보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앞뒤 내용이 연결되지 않는 난해한 문장들이었다. 신랑은 베껴 쓴 건 안된다며 처음 숙제니까 봐주겠다고 했다. 그다음주가 되었다.
"엄마, 못 하겠어요."
"어디 한번 보자."
나도 모르게 해리포터 표지를 쨰려보고 있었다.
"이게 챕터가 8개니까 한 챕터씩 나눠서 줄거리를 정리해 보자."
진이 빠지도록 설명을 하고 이제 해보자 하니 졸리단다.
그다음 날 아침이 되니 숙제할 생각에 아침부터 부담이 된다고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한 권 전체는 부담스러우니 한 챕터만 요약해 보자고 했다.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단다. 심지어 등장인물의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고, 그동안 읽었던 내용도 생각나는 게 없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봐. 책 읽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딴생각했니?"
"네"
"책의 내용이 어려웠어? 재밌다면서?"
"사실은 어려웠어요."
아침부터 책을 요약한다고 보냈다가 검사하고, 보냈다가 검사하고를 오후 3시가 넘어서까지 하다가 이상해서 물어본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럼 그렇지. 3학년 아이한테 해리포터라니... 것도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 아이인데...'
"해리포터는 그만 읽자. 지금은 아닌 것 같네."
"네"
녀석은 전혀 아쉬운 기색이 없었다. 녀석의 성향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으려나 속았던 시간들에 대한 짜증, 이제라도 파악했으니 다시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긍정적인 다독임 사이에서 '해리포터뽕에 취해 사리분별을 못하고 아직 때가 되지도 않은 아이에게 어려운 숙제를 내준 신랑'에게로 어제저녁부터 받은 스트레스가 향하고 있었다. 주말이지만 출근해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로 즉각적인 화살은 피했음을 당사자는 아직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책 많이 읽히기'라는 부모로서의 목표는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루기 쉬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하나 더, 아이가 셋 있어도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또한 되새기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해리포터'시리즈는 훌륭하지만 모든 아이가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잠시나마 올라갔던 뽕을 겸허히 내려놓았다. 마음이 가볍다.
그런데 다음엔 무슨 책을 권해주지?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을 꺼내 들춰보고 있었다. 옆에서 큰아이가 이야기한다. "엄마, 그거 이번에 7권도 나왔어요." "뭐?"
'나 전집 싫어!!!!! 해리포터 때문에 질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