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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살 Dec 14. 2024

땅콩버터 사과 샌드위치

매일 생각나는 맛

사과를 얇게 썰어 땅콩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사과로 덮으면 땅콩버터 사과 샌드위치가 된다. 한입 먹어보면 사과의 달콤함 속에서 배어 나오는 땅콩버터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든든한 아침 혹은 간식이 된다.


땅콩버터는 당이 들어있지 않은 100% 땅콩버터에 땅콩이 박혀있는 크런치 타입을 권한다. 사과는 푸석하지 않은 겨울 사과라면 오케이~


매년 겨울이면 파주 민통선내에서 사과 농장을 하는 주변분에게 사과를 한 봉지씩 산다. 추운 지역에서 강인하게 자란 사과라 그런지 맛이 좋고, 가격도 합리적이라 기다렸다가 꼭 주문한다. 사과를 주문하고 나서 바로 쿠* 검색에 들어갔다. 같이 먹을 땅콩버터가 필요해서였다. 땅콩버터의 꾸덕하고 고소한 맛을 좋아하는데, 사과에 발라서 샌드위치로 먹으면 맛도 있고 영양소 비례도 맞는다고 해서 한번 시도해 보려는 참이다.


추운 겨울 저녁 민통선에서 온 사과 5kg을 낑낑대며 받아 왔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배송으로 땅콩버터가 도착했다. 너무 작은 걸 주문하면 금세 먹을 것 같아서 460g을 주문했더니 병이 꽤 컸다. 뚜껑을 열고 특유의 고소한 냄새를 맡아보았다. 땅콩버터는 냉장고에 보관하면 굳어서 본연의 맛을 느끼기 어려우므로 되도록이면 실온 보관하거나 먹을 만큼 미리 덜어서 상온에서 부드럽게 변할 시간을 주는 게 좋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난 후 8시 반이 넘어가는 오전시간이면 햇빛이 거실을 점령한다. 이때는 자연광 덕분에 불을 다 꺼도 거실이 환하다. 우리 집은 2층이라 평상시 불을 켜지 않으면 집안이 어두컴컴해서 하루 중 잠깐 만나는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아무 스케줄도 없는 아침에 환한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땅콩버터 사과 샌드위치를 먹는 기분은 A급 호텔 조식에 참여하듯 설레는 일이다.


  

출처. 핀터레스트


땅콩버터 사과 샌드위치와 잘 어울리는 음료는 따뜻한 차 종류이다. 페퍼민트, 루이보스, 카모마일 등의 허브종류를 주로 마시고 가끔 녹차, 홍차, 커피도 곁들여 본다. 따뜻한 차와 샌드위치를 앞에 놓고 햇빛을 보며 차 한잔, 샌드위치 한입을 천천히 음미한다. 달콤하고 고소한 핑커푸드와 따뜻한 차가 곁들인 정성스러운 식사를 대접받는 듯한 힐링의 맛이다. 오전에 처리하려고 했던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찰나 급하게 샌드위치를 씹어 삼키고 차를 들이켜고 일어나려는 스스로를 진정시킨다.


'괜찮아, 잠시 쉬어도 돼. 햇빛이 머물러 있는 동안만 앉아 있자.'

   

육아가 시작되고, 아이들이 조금 커서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서 생긴 잠깐의 여유시간이 오전시간이었다. 이젠 더 커서 학교에 가니 여전히 오전시간은 잠시 혼자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학습지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더 소중해진 오전시간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그 시간에 스케줄을 만들고 바삐 움직이는 나를 발견했다. 오전 시간이 바쁘면 바쁠수록 오후의 나는 금방 지치고, 예민해졌다. 오전에 충분히 쉰 날은 일을 하면서도 여유가 있고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일주일에 2-3회는 오전에 스케줄이 있으니 나머지 날은 집에서 쉬어보려고 하지만 그 역시도 길어야 한 시간 정도이고, 나머지는 집안일을 하고 장을 보러 나갔다 온다.


  




재택근무를 하다 보면 보통 4-5시 정도에 저녁으로 먹을 것을 챙겨야 한다. 아이들은 6시 정도 되면 준비된(혹은 준비되지 않아서 알아서 만들어서) 저녁을 주방에서 먹고, 난 업무하면서 간단한 식사를 한다. 오전에 땅콩버터 사과 샌드위치를 먹지 못한 날의 저녁은 당연히 땅콩버터 사과 샌드위치다. 하루에 한 번은 먹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먹기 간편하고 맛있고 아무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되었다.


일하면서 먹는 땅콩버터 사과 샌드위치의 맛은 지친 나에게 급하게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맛이다. 사과의 상큼함은 처진 기분을 올려주고, 땅콩버터의 고소함은 조급한 마음을 달래준다. 한입 베어 물고 다음 할 일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손으로는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으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이 난다.


출처. 핀터레스트


아직은 이 맛을 집에서는 혼자(?) 즐기고 있다. 가족들은 이렇게 먹는 날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다. 남편조차도 "그렇게 듬뿍 발라먹으면 금세 화장실 가는 거 아냐?"

라고 할 뿐 날 따라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땅콩버터가 일주일 만에 바닥을 드러내어 또 쿠*을 열어야 한다. 땅콩버터에 그릭요구르트를 섞어 사과에 발라먹는 것도 맛있다는데 이번엔 그릭요구르트까지 주문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도 생겼다. 이러다 사과가 다 떨어지면 그것도 문제인데... 먹는 고민은 할수록 즐겁다. 땅콩버터 그릭요구르트 사과 샌드위치의 맛을 궁금해하는 동안 호기심 가득한 손은 빠르게 검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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