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신산과 우체부 (여행 테마시)
마을을 살린 한 사람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청보리밭 사이로 난 황톳길을
날마다 자전거로 건넜다.
씽씽, 바람을 가르며
먼 곳에서 건너온
간절한 소식을 어깨에 메고
그는 집배원이었고,
지질학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푸른 파도처럼 일렁이는 들녘 끝,
낮은 지붕의 집에 사는 할머니에게
도시에서 온 편지를 건네줄 때면
종이보다 먼저
할머니의 눈빛이 떨렸다.
마을의 하루는
그의 동선 위에 놓여 있었다.
숲의 숨결,
보리밭의 색,
비가 오면 미끄러워지는 황톳길,
마을 어귀에 서서
계절을 먼저 알아보는
큰 나무들까지.
그에게
마을은 풍경이 아니라
살펴야 할 생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 위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 곳이 아니라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마치 땅의 숨이 새어 나는 것처럼.
길은
서서히 휘어지기 시작했다.
어제까지 곧던 길이
오늘은 울퉁불퉁
지질학을 공부했던 기억이
촉처럼 살아났다.
이건
지나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마을을 다시 보았다.
땅의 균열,
미세한 진동,
말없이 쌓이는 징후들.
관청을 찾았으나
돌아온 것은
무심한 고갯짓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질학 공부를 했던 동창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중 지질학 교수로 있는 친구가
찾아와 측각을 했고
지진 전조라고 밝혀냈다.
마을 사람들을 이주시켜야 했다.
그러나 평생을
청보리밭의 푸른 물에 몸을 적시며 살아온 사람들은
쉽게 뿌리를 뽑을 수 없었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낯선 곳에서 새로 둥지를 트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내놓았다.
사람들의 땅을 샀고
마을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이주했다.
그 뒤
땅은 몇 차례
재채기하듯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어느 날,
평지가 갈라지고,
땅이 스스로를 밀어 올려
거대한 산이
불끈 솟아올랐다.
하룻밤 사이에
산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리운 소식을 나르던 집배원,
그는 편지만이 아니라
마을의 생명을 배달한 사람이었다.
그 산의 이름은
쇼와신산.
폭발이 아니라
사람을 살린 선택 위에
조용히 솟아오른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