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잠귀가 밝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일정하게 들리는 주변 소음과,
남편의 코고는 소리, 윗층에서 나는 마른 기침소리,
두런거리는 소리, 핸드폰 알람 진동까지
작은 기척에도 자주 잠을 깨고 숙면 취하기가 쉽지 않아
언젠가부터 귀마개를 했다
선택은 탁월했다.
대부분의 소음에서 해방되고
나만의 숨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의 밤이 다시 괴로워졌다
예전 같으면 모기가 내 옆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물리기 전에 금방 일어나서
온 힘을 기울여 전멸시켰을텐데
귀마개를 하고 나서는
나도 여지없이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이불 위에 삐져나온 발가락, 팔이며 이마까지
어느 새 그렇게 순식간에 여러 곳을 물었는지
온 몸에 붉은 자국이 여기저기 찍혀있고
순한 양 같은 내 성질도 비몽사몽간에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이대로 가만히 있자니 가려움에 잠 못 이룰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잠을 청해도 또 누군가는 밤새 제물이 될 것이 뻔해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녘에
나 혼자 외로이 모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금부터 전쟁 시작!
먼저 스프레이 모기약을 내 머리맡에 준비한다
그리고 불을 끈다
나의 두 팔 두 다리는 이불속에 곱게 접어두고
쥐 죽은 듯 고요 속에 레이더를 작동시킨다
혹시 이대로 잠들 수도 있으니
귀마개로 한쪽 귀는 쉬게 하고 나머지만 쫑긋
나의 온 신경을 집중해 어둠속에서 목표물을 찾는다
한참 후,
일반 모기보다 날아다니는 소리가 조금 느린 듯한?
배부른 모기의 날개짓을 포착한다
살며시 불을 켠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타켓을 찾는다
찾았다!
“내 귀한 피로 배가 터지도록 붉게 채운 나쁜 모기!
넌 내가 직접 응징할 지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하리라”
‘끝까지 쫒아가서 잡고야 말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두 손바닥을 기도하듯 살포시 모으고
모기에게 집중 공격~
짝, 짝, 짝짝.... 짝(엥? 한 밤중에 박수소리?)
내 옆에서 곤히 코골던 냥이가 깜짝 놀라 달아난다
앗,
놓쳤다!
주변에 방해물이 많은데다가 적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
허공을 높게 날아다니는 모기 전략에 지고 말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손바닥에 긴장 한번 살살 털어주고
일발 장전
레이더 작동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불굴의 정신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다시 수색
찾았다!
‘이번에도 놓치면 오늘 밤 더 이상 내게 잠은 없다’는 각오로
전략을 바꿔 벽쪽으로 몰아서 진격~~
짝!
한방에 끝!
나의 50년 인생동안 갈고 닦은 기고한 의지와 얄팍한 깡으로
드디어 내 손바닥 안에 소중한 나의 피를 돌려받았다
혹시나 하고 한쪽 귀는 열어둔 채
전승의 기쁨을 만끽하며
긴장을 풀고 다시 잠을 청하는데
엥~~~
앗, 또 다른 모기가 있나보다
익숙하면서도 선명한 모기의 낮은 비행소리
숨을 죽이고 까치발을 서서 천천히 다시 불을 켠다
눈꺼풀 비벼가며 구석구석 사방을 뒤져 목표물을 찾는다
찾았다!
남편 이불을 머리 끝까지 천천히 씌어주고
이번에는 스프레이 조준
방경 1미터 내로 사방팔방 발사
모기 사체를 찾기 위해 부시럭거리니
남편이 또 한소리 거든다
“잠 좀 자자, 잠 좀 자!”
잠결이어서인지 모기의 재빠른 이동을 따라잡지 못하고
또 놓쳤다
내 잠도 이미 버렸다
다시 불을 끈다
괘심한 모기들 잘도 숨는다
어둠속으로 나도 숨는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레이더 풀 가동
엥~~~
걸렸다!
핸드폰 라이트를 살짝 켠다
찾았다!
스프레이 발사~ 취~~익, 췩췩
모기 한 마리 끝까지 살아남기위해 버티는 듯 하더니
결국 힘없이 스스르 떨어진다
잡았다!
올킬!
오늘은 내가 이겼다
승리자의 여유에 잔뜩 취한 채
이젠 양쪽 귀 모두 막고 편하게 잠을 청한다
창문마다 방충망이 설치되어 있고 현관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어 눈 씻고 봐도 들어올 구멍이 없는데 이녀석들은 도대체 어떻게 들어오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내일은 전자모기약을 준비해야겠다
밤마다 모기와 직접 싸우자니 다음 날이 너무 힘들겠다
우리 가족의 밤을 지키고
나의 밤이 편안해 질 때까지
올 여름 모기와의 전쟁은 계속 진행 중~
매일 밤 나의 한쪽 귀는 교대 근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