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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May 31. 2024

부모님의 흔적

“오메, 사둔~~~ 머시 바빠서 그렇게 빨리 오셨쏘 잉~”

흔적 1 - 친정부모님  



2년 전 3월,

친정엄마는 멀리 가신다는 기척도, 안부도, 인사도 없이

허망하게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몇 년 전부터 근육이 점점 굳어지고 치매가 심해지면서

결국 딸들도 제대로 못 알아보시던 엄마는

아프다는 소리 한번 하지 않으시고

언제나처럼 단정한 미소와 애달픈 그리움만 남겨 놓은 채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치매 때문에 자꾸 깜빡깜빡 하시면서도

언제나 막내 딸인 나를 먼저 챙겨주시고

큰 사랑으로 키워주신 나의 엄마가

‘목포의 눈물’을 구슬프게 부르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코로나19 때문에 임종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더 슬프고 더 많이 아팠다     


주간 요양보호센터에서 어린아이처럼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마냥 즐거워 하시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따스한 봄이 다가오고 점점 멀어져가는 겨울 끝자락을 동무 삼아

불편한 몸을 기대어 쉬이 동행하신 것 같다

홀로 먼저 떠나시는 길 외롭지 않으셨는지, 두렵지는 않으셨는지

남은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셨는지...

엄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두고두고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처럼 남아 있다    

 

아빠도 코로나19 후유증으로 다른 병원에 계속 입원 해 계시다가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지 못하신 것이 내내 걸리셨는지

엄마가 먼저 떠나신 후 나흘 새로 부리나케 따라 가셨다

생전에도 성격이 불 같으시고 급하시더니

가실 때에도 자식들에게 잘 있으라는 인사 한마디 남기지 않으시고

너무나 어이없게 갑자기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셨다

아마도 엄마 가시는 길 지켜주시려고 그렇게 부랴부랴 떠나가셨나 보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앞서 가신 엄마도 덜 외로울테고

아빠도 혼자 남으시면 내내 힘들어 하셨을테니.....     


나는 고등학교를 타지에서 다니느라 

일찍부터 친정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엄마 아빠에 대한 추억이 드물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시골 집 큰 마당에는 계절마다 은은한 향기 가득

붉은 장미와 탐스러운 작약. 보라빛 라일락 등 예쁜 꽃이 만발했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한데 몇 년 전, 고향으로 이주 해 두 분만 사시던 집도 모두 처분하고

이제 더 이상 부모님의 흔적은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다     


내 기억 속에 작은 조각처럼 떨어져 

속절없이 머물러 있는 마지막 일부는

다시 아이로 돌아가 버린 듯한 

엄마의 가녀린 어깨와

대쪽 같은 성품 때문에 늘 강해 보이시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외로워 하시며

눈물 지으시던 아빠의 쓸쓸한 뒷 모습...     


친정 부모님에 대한 옛 기억을 돌이키다 보면

하나 둘 가족과 함께 했던 좋은 추억도 떠오르겠지... 생각 했는데

여전히 죄송스럽고 허망하고 아픈 상처들이

헛헛한 내 마음을 먼저 붙잡는다

이렇게 급히 가실 줄 알았으면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뵐 것을...

친정까지 거리가 멀다는 핑계가 새삼 무색하다     


엄마 아빠가 가신 날은 봄이 막 깨어나기 시작할 때 쯤이어서

따스한 햇살 머금은 들꽃도 만날 수 있고 이른 벚꽃도 볼 수 있다

매년 봄이 되어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갈 때면

아직도 조금씩 남아 있는 겨울의 시린 바람과 

여린 봄의 새 기운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남은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엄마 아빠를 생각하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마지막 선물인가 싶다     



흔적 2 - 시부모님     


현관 옆 한 귀퉁이 맨 구석진 자리에

색이 누렇게 바랜 다 헤진 운동화와

아버님의 다리만큼 앙상한 지팡이가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님이

잠깐이라도 바람을 쐬러 가시거나

운동 삼아 문밖을 나가실 때

항상 곁을 지키던 오랜 친구같은 운동화와 지팡이는

이제 주인을 잃고 갈 곳을 헤매다

아버님과 함께 머나 먼 여행을 떠났다     


나는 여전히 아버님의 생전 모습을 기억한다

치매로 인해 같은 것을 계속 물어보시고

손주들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매일 되뇌이던 낮은 목소리

연세가 많이 드셔서 이가 거의 다 빠지고

아기처럼 해맑게 웃으시던 아버님은

어머님보다 훨씬 건강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리 바쁘셨는지 성급하게 이별을 남기고

1년 전 10월,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리고, 30년이 넘도록 당뇨 약을 포함해서

여러 약들을 지겹도록 챙겨 드시던 어머님도

같은 해에 갑작스럽게 쓰러지시고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시다는

마지막 바램도 이루지 못한 채

두 달이 조금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날 저녁,

할머니의 마지막 배웅을 위해 타지에서 급히 내려 온

막내 손주들도 미처 보지 못 하시고 부산하게 시아버님을 따라 가셨다     


평상시에도 겁이 아주 많으셔서 

아버님 먼저 가신 사실을 숨겼었는데

느낌은 있으셨던지 한 번씩 면회 갈 때마다

‘느그 아부지 어디 산에 갔다냐?’라고 물으셨던 어머님께

떠나시기 전날, 마지막 인사처럼 

‘아버님 먼저 가셔서 반갑게 기다리고 계실테니 

너무 두려워 마셔요’라고 나지막이 말씀드렸다

아마도 아버님을 만나셨다면 새초롬 해 하시면서도 

엄청 반가워하셨을 것 같다     


집안 구석 구석에는

항상 시부모님과 일체였던 황토침대와 돋보기 안경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운세를 점 치시던 손 때 묻은 화투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버님을 위해 준비한 메모지들

그리고 유일하게 잘 드시던 노란 커피 만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뽀얀 먼지가 군데군데 쌓일 즈음

주인 잃은 물건들도 하나씩 사라져 가고

두 분의 오랜 흔적과 아련한 기억만 남았다     


26년, 같은 시간을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문득 문득 더 잘 챙겨드리지 못한 아쉬움과

더 헤아려드리지 못한 죄송함과

어둠만이 가득한 방 안에 남겨진 쓸쓸함이

인생의 허무함과 세월의 덧없음을 또 다시 느끼게 한다

가끔씩 마음 한켠 서글픈 쓸쓸함에 젖어 들 때면

두 분이 함께 좋은 곳에서 투닥투닥 다투지 않고

평안하게 잘 계실거라 믿으며

온기 없는 빈 자리를 또 한 번 쓸어 본다     



3. 부모님 전 상서     


먼저 먼 하늘 길 떠나신 친정 부모님이

다음 해 오신 시부모님을 뵙고 두 손을 꼭 잡으시며     

오메사둔~~~ 머시 바빠서 그렇게 빨리 오셨쏘 잉~”     

하고 겁나게 반기셨을 것 같다     


오랜만에 사돈끼리 모이셔서 즐겁게 잘 계실거라 생각된다

네 분 모두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말고

자식들 걱정도 그만 하시고 서로 다독이시며

편히 지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엄마아빠~~ 잘 지내고 계시죠?

 막내 딸 잘 키워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그리고 많이 죄송합니다

 엄마 아빠 속상하시지 않도록 열심히 즐겁게 잘 살겠습니다.

 엄마 아빠도 절대 아프지 마시고 편히 지내세요!     


 어머님아버님~~~~

 철없는 막내며느리 데리고 사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아무 걱정마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랄께요.

 그 곳에서는 서로 싸우지 마시고 오순도순 잘 보내셔요.

 베풀어 주신 사랑 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네 분 모두 많이 많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p.s

시부모님과 세 아이들 그리고 우리 부부 모두 일곱 식구가 26년을 함께 살았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별 일도 별 탈도 많았던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두 분 모두 거동이 불편하시긴 했어도 작년 5월까지 건강하게 함께 계셨었다

그래서 지금도 퇴근할 때면 방 안 침대에서 빼꼼히 고개 내미시며  '수고했다' 

하고 반겨주시던 모습과 기침 소리, 잠꼬대 소리, 두 분이 아웅다웅 하시던 모습들, 집 안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설치된 손잡이며 다양한 물품들까지!

함께 지낸 세월만큼 오랜 추억과 흔적이 가득한데.......   

  

친정 부모님은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더 신경 써 드리지 못해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어서 더 많이 죄송했다

두 분이 그렇게 며칠 새로 급하게 가시고 나서 생각 해 보니 엄마가 무슨 색. 무슨 꽃을 좋아하고 두 분께 어떤 효도를 해 드렸는지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 봐도 생각나는 것이 없고 잘 못 해 드린 것에 대한 아쉬움만 가득해서 내내 많이 슬펐다   

  

하지만 지금은 네 분 모두 먼 곳에 다 같이 모이셨으니 더는 아프지 않고 오직

평안하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다

이젠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에 대한 마음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환한 얼굴로 

내려다보실 수 있도록 오늘도 씩씩하게 더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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