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릴 때 너무 행복해요.
마라토너 구팬(구르는 팬더)님
*닉네임이 왜 구팬이예요?
네이버 가입할 때 광고로 뜨는 배너가 쿵푸팬더였어요. 팬더로 닉네임을 쓰고 있었는데 처음 러닝을 시작할 때 90kg까지 몸무게가 나갔거든요. 너무 뚱뚱해서 굴러다닌다고 인스타 러닝계정을(@roll_panda_) 구르는 팬더라고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이번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어요. 달리다 보니 사람들이 왜 힘든데 왜 계속 달릴까 너무 궁금해서 연재형식으로 글을 써보려 합니다. 혹시 인터뷰 가능할까요?"
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는
"작가님이시네요..."
"아, 네... 아직 작가라 부르기는 민망하지만 감사합니다."
작가라는 말에 설렜다. 그는 함께 달릴때 늦게 뛰는 사람들을 배려해 주고 뛰어난 사진실력으로 주변 풍경과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멋지게 찍어주는 러너다. 구팬님은 왜 달리기 시작했을까?
1. 언제부터 달리셨나요?
2021년부터였어요. 3년 정도 됐네요.
원래 수영을 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수영이 멈춰지자 달리기 시작했어요. 달리다 보니 해방감이 느껴졌어요. 평소 불면증도 심해 2~3시간을 자고 깨고를 반복했는데 달리고 온 날은 숙면을 취할 수 있었어요.
아침에 한 시간씩 뛰면 하루가 너무 상쾌했어요. 사람들은 "아침에 뛰고 오면 하루가 피곤하지 않냐?" 는 질문을 하는데 하루를 오히려 활기차고 밝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어요.
- 그럼 매일 아침에 10km씩 뛰신 건가요?
네.. 매일 뛰다가 저녁에 오면 밥 먹고 바로 쓰러져 자요. 달리기 때문에 하루일과가 행복했어요. 혼자 뛰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누구랑 같이 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달리기 시간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힐링 시간이었죠. 일 끝나고 나면 애들도 있고 아내도 있고 혼자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데 오로지 한 시간은 나만을 위한 시간이니 이 시간을 행복하게 생각하면서 뛰었죠.
그런데 2023년 초까지 약 3년을 혼자 뛰다 보니 실력이 늘지 않았어요. 혼자 뛰면서도 행복감이 있으면서 한편으론 훈련을 했으니 증명을 하고 싶잖아요. 대회 같은 것을 나가도 실력이 늘지 않았어요.
‘클래스나 크루를 가입해 제대로 배워볼까’ 해서 호런(현재 그와 내가 소속되어 있는 구리, 남양주 지역 마라톤 클럽)도 들어가고 유러닝(현재 유진홍 감독님이 운영하는 클래스)도 가면서 배우다 보니 자세가 안정되기 시작했어요. 그 덕분에 아픈 횟수가 줄어들었어요. 아니면 그동안 쌓였던 근력들이 뒷받침되어 부상이 없었던 건지 모르겠지만요.
안 아프게 달리니 너무 좋고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니 어떤 훈련이 더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고 체계적인 훈련이 될 수 있었어요. 저 만의 규칙을 만들었어요. 일주일에 이틀은 같이 달리고 나머지는 혼자만을 위한 시간으로 달려요.
-기록이 향상이 되었나요?
많이 향상되지는 않았는데 제일 좋은 거는 안 아프고 달리는 거. 자세도 많이 좋아졌어요.
-그전에는 어디가 안 좋으셨나요?
무릎하고 신 스피린트 부상은 항상 달고 살았고 정강이 부분도 조금만 달리면 아픈 거예요. 자세, 근력 문제도 있겠고 부상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겠지만 3년쯤 되면 런태기가 오거나 부상으로 그만두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제가 3년이 지나도 끊임없이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크루, 클래스 그리고 대회를 계속 신청하면서 달리기에 대한 의무감이 생긴 거 같아요.
신스프린트 : 러닝 후 정강이 내측에 생기는 통증. 잘못된 자세로 달릴 경우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호런에 지역 팀장으로 활동하는 구팬님을 만나려면 일요일마다 왕숙천으로 오면 된다. 오전 7시(현재는 6시 반, 여름에는 6시로 옮길 수도 있음) 항상 멤버들보다 먼저 도착해 몸을 풀고 옷을 가다듬고 있는 그를 만날 수 있다. 정기적으로 멤버들이 러닝을 할 수 있게 모임을 열어주고 새로 온 멤버들을 챙기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그에게는 익숙하지만 처음 온 사람들에게는 낯선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새로운 러닝코스를 안내해 주고 부담스럽지 않은 조깅페이스로 사람들을 이끌어 준다.
2. 마라톤 대회는 언제부터 참가하셨나요?
코로나 때 처음 러닝을 시작했어요. 코로나 상황이라 대회들이 언택트로 개최가 되었어요. 첫 저의 공식 오프 대회는 2022년 철원 DMZ마라톤 10km를 출전했어요. 2021년 3월부터 시작해서 1년 7개월 만에 대회였는데 기록이 43분 나왔어요.
-엄청 잘 달리셨는데요. 풀 마라톤 언제가 처음이었어요?
2022년 가을에 춘천마라톤이 공식 첫 오프 풀 대회였어요. 그전에 하프랑 10km는 많이 뛰었는데 하프대회가 지금 기억에 나지 않네요.
-춘천마라톤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메이저대회 중 큰 대회인 거 같아 계속 관심을 가졌어요. 2021년도는 당시 코로나 상황이라 춘천마라톤이 버츄얼 레이스로 개최되었죠. 각자 개인적으로 42.195km를 뛰고 기록을 올렸어요. 처음으로 그때 쉬지 않고 풀코스를 뛴 거라 다음 해 다시 춘마로 도전을 결심했어요.
-그때 기록을 여쭤봐도... 될까요?
4시간 38분 나왔습니다. 당시 3시간 30분을 목표로 했는데 체계적인 훈련이나 정보를 알고 있던 게 아니라 그냥 자신감이었죠. 처음부터 오버페이스를 달리다가 하프에서 퍼져서 거의 반은 걸었어요. 풀코스를 뛰는데 하프까지 걸린 시간이 1시간 40분이었으니 그다음부터는 퍼졌죠.
-완주는 하셨네요. 지금까지 완주를 못한 대회는 없었나요?
완주를 못한 대회는 없었어요.
-다음 풀코스 도전은 또 언제였는지요?
2주 후에 바로 열리는 JTBC마라톤이었는데 그때는 생각을 달리했어요. 처음부터 3시간 30분을 목표로 두고 5분 페이스로 달리면 기록을 달성하겠다 생각했어요. 훈련을 체계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당시 페이스 개념도 모르고 막연히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임했어요. 호기롭게 가족들에게 결승점에 응원 나오라고 했었죠. 아빠가 3시간 30분 혹은 4시간 안에는 들어온다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요. ㅎㅎ
당시 초등학교 5학년, 2학년 애들이 아빠가 4시간이 지나도 결승점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제가 들어왔을 땐 와이프는 응원석에서 응원을 해줬는데 아이들은 기다리다가 지쳐서 다시는 응원 안 나온다고...
-그래도 2주 만에 뛰었는데 기록이 10분이나 단축되었어요. 그럼 지금까지 본인이 원하는 3시간 30분을 달성한 적이 있나요?
아직 없어요. 올해 동마(동아마라톤)가 3시간31분 나왔어요. 가을에 춘마나 제마로 3시간 30분 기록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눈앞에 목표는 그 시간인데 계속해봐야죠.
-기억에 남는 대회는?
모든 대회 다 나름의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어디 하나 치우치지 않고 기억에 모두 남아요.
앞으로의 꿈 혹시 해외 마라톤은 계획이 없나요?
음... 해외는 작년까지 생각이 없었는데 세계 6대 마라톤을 완주하면 특별 메달을 수여해 준다고 하는데 메달이 탐이 나네요. 경험 삼아 가까운 일본 마라톤을 먼저 참가해보고 싶어요.
도쿄마라톤은 추첨제도라 내년에는 일단 신청이라도 해보려 합니다.
세계 6대 마라톤은 도쿄, 보스턴, 런던, 베를린, 시카고, 뉴욕 마라톤이다. 각 대회마다 신청기준과 선발제도가 다르다. 이 모든 마라톤을 완주하면 특별한 메달을 수여한다.
3. 최근 KOREA 50k 트레일 러닝도 도전하셨어요. 언제부터 트레일 러닝에 관심이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트레일은 러닝 보강 운동으로 생각했어요. 춘마 때 업힐에서 퍼졌던 기억이 계속 남아있어요. 춘마 코스를 보면 꾸준히 연속되어있는 업힐(언덕, 오르막길)이 길어요. 너무 힘들어 업힐 연습을 꼭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평소 트레일에 관심은 있었는데 호런에서 정보도 많이 얻어 이번 대회에 호기심에 참가를 했었죠. 완주도 했고.
춘천 마라톤 때 퍼졌던 경험이 있어 오버페이스 안 하고 꾸준히 뛰었어요. 만족도가 높은 경기였고 끝까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어서 제 스스로가 만족하고 뿌듯합니다.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서 경기에 참가할 수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풀 마라톤 보다 긴 거리인데 또 더 먼 거리를 예를 들면 100K나 50K를 도전해 보실 건가요?
마라톤이나 트레일 런이나 경기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내가 이걸 왜 했나 생각하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면 사람인지라 기억이 미화되어 좋은 것만 기억이 나요. 즐겁게 뛰고 행복한 추억이 되어 또 등록하고 또 경기 중에 내가 왜 다시 하나 계속 반복이죠~
5. 달리기 외에 다른 보강훈련이나 스포츠 하는 것이 있나요?
단지 내 헬스장에서 웨이트는 계속했어요. 최근 헬스장이 공사 중이라 쉬고 있습니다. 공사가 끝나면 다시 시작할 생각이고 요즘은 트레일 러닝 준비로 산을 자주 가요. 러닝을 꾸준히 하는 게 목표라 훈련도 그렇게 잡고 있습니다.
6. 본인에게 달리기란 뭘까요?
달리기란 나에게 마지막 남은 힐링이다.
원래 세차. 보드, 낚시, 등 취미가 많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한 가정의 가장이다 보니 생활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어요.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나 혼자 이어폰 끼고 달리다 보면 이 세상에 혼자 있는 듯한 기분, 그래서 그 시간만큼은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순간이죠. 뛰고 나면 스트레스도 날아간 것 같고 삶에서 긍정적인 생각들이 마구 떠오릅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안 좋은 생각이 자꾸 나요. 러닝을 하고 뛰면서 좋지 않았던 고민과 생각들을 하다 보면 모두 긍정적으로 변합니다.
7. 달리기를 시작하시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은?
러닝을 거창하게 시작하면 시작하기도 어렵고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어려워요. 목표를 크게 세우지 말고 오늘 딱 10분만 달리자는 생각으로 일단 나가서 달리다 보면 조금 더 달리고 싶어 져요. 그럼 5분 더, 10분 더 달리게 되는 거죠.
너무 많은 욕심은 부상을 동반해요. 페이스, 거리 욕심 내지 말고 “딱 10분만 달리자”를 목표로 삼으면 됩니다.
달리기가 다른 운동보다 중독성이 굉장히 강한 거 같아요. 수영장을 가더라도 수영복도 입고 샤워도 하고 낚시도 마찬가지로 준비 과정들이 많은데 달리기는 운동화 신고 나가기만 하면 되니 지금 당장 시작해 보세요.
8. 가정의 평화도 지키면서 운동을 하는 게 쉽지 않아요. 가정과 취미인 달리기를 어떻게 조율하나요?
집에서 가장이 운동을 한다는 게 힘들죠. 그래서 아이들 깨기 전 새벽운동을 주로 해요. 저는 취미생활이 본인 생활에 지장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 자체가 힐링이 안 되는 행동이죠. 하루 일과시간에 방해가 될 정도로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 또 생활에 지장이 있으니 운동량도 조절합니다. 꿋꿋하게 가정에 봉사할 체력은 남겨두고 러닝을 하는 거죠.
지난주 일요일 호런 구리, 다산지역 정기모임에서 13명의 크루원들이 함께 뛰었다. 구팬님은 평소 본인이 자주 운동하는 업힐 코스를 안내해주고 싶어 8km 순환코스 중 총 3번의 업힐 연습을 할 수 있는 코스로 우리를 이끌었다. 나는 항상 뒷자리를 지키며 힘겹게 업힐의 마지막코스까지 올라간다. 그와 다른 멤버들이 정상에서 먼저 가지 않고 기다려주고 응원의 목소리를 내줬다. 구팬님이 모임을 열어주면 초보자들도 배려를 해주셔서 감사의 마음을 가득 안고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40대 전형적인 대한민국 두 아이의 아빠,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삶에서 본인의 취미와 일과 가정에 균형을 두고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 구팬님의 달리기를 항상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