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직 그곳에 있구나
슬픈 일 예쁘게 덧칠하고서
아름다운 기억만 남겨두고도
언제나 헛헛한 맘 가눌 길 없어
우두망찰 두리번거리는 너
아직 그곳에 서 있구나
곱게 덮으면 사라질 줄 알고
꺼내기 두려워 도망친 날들
빠른 걸음으로 내달았어도
언제나 너보다 먼저 와 있는
슬픔의 얼굴 외면하느라
한참을 시절과 싸웠구나
잘못이 무언지도 알지 못한 채
용서를 구해야 했던 날들과
원하는 것보다 먼저 있었던
가야 할 길을 헤매 다니며
슬픔의 얼굴을 지우기 위해
네 얼굴을 먼저 지워야 했구나
빛나는 것들을 쫓아가느라
네 안의 빛이 꺼지는 줄 모르고
이름이 있으되 불리지 못한
네 곁의 꽃과 나무들처럼
소리 죽여 낮은 숨을 쉬었구나
연회색 배경처럼 살았구나
언제나 내 것처럼 보였지만
한 번도 내 것인 적 없었던
무엇이 내 것인지 알지 못한 채
끝끝내 내 것이라 믿고 있었던
두고 온 네 이야기 잊고 있었구나
숨겨 온 네 얼굴을 마주해야겠구나
너 아직 기다리고 있구나
어른의 갑옷 입은 내가 찾아가
한눈에 작은 너를 알아보고서
뜨거운 손 내밀며 화해할 시간
우는 법을 잊었던 모습 그대로
기다리고 있구나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