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Singularity 03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릉 Aug 17. 2022

Singularity

02BLACKHOLE

02BLACKHOLE


우리가 예측한 어떠한 것들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그 일을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는가,


매일 같이 꿈꾸던 이상형을 길에서 마주했다면,

임의로 고른 로또 번호 6개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면,

상상만 했던 블랙홀을 실제로 관측했을 때 상상과 똑같이 생겼다면,

그 경이로움과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살면서 이런 경이로운 순간을 언제 경험했는지 가만 앉아 생각해보자면,

내가 쥔 패가 친구의 패보다 높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수학 시험이 끝난 뒤 답안지를 친구들과 맞춰보다 내가 틀린 줄 알았던 것이 아니라 내 답이 맞았을 때,

가격이 오르기 전 비트코인을 사서 가격이 계속해서 올라간 비트코인을 보고 있을 때,


사소하지만 꽤나 많은 사건들을 나열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어떤 것을 상상하고 이루어질 것이라 희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사소하던 아니던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지고 있고, 우리에게 동기부여를 준다.




고작 나보다 1살이 많았던 너는, 항상 누나라고 부르도록 나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뭐 누나라는 말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명사가 담고 있는 의미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나는 내키지 않았다.


"너 오늘 뭐해?"

"어쭈? 너?"

나는 가끔 네가 정한 규칙을 어기고, 너라고 부를 때면 너는 언제나 저런 반응을 보인다. 나는 그럼 피식 웃으며 다시 너에게 다시 질문을 하곤 했다.


"누난 오늘 뭐해?"

그러면 너는 나의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나는 너의 이런 반응이 그냥 좋았다. 너만의 그 특유함이.


그리고 메시지만 주고받던 너를, 목소리는 어떨지 눈동자는 어떨지 웃는 모습은 어떨지 상상만 했던 너를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너는 나의 예측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너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얼굴이 작고 깨끗했으며,

입고 있는 옷의 색이 잘 어울렸으며,

말끝에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말 예쁜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분 좋은 장난을 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 웃을 때, 얼굴 전체로 웃고 있는 너였다.


나의 예측이 완벽하게 빗나간 덕분에 나는 너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이미 너에게로 빨려 들어간 나의 감정들은, 제아무리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도 너의 중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전부 무시하고 한 점으로 모이고 있었다. 


"크기는 없고 질량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고, 볼 수 없었을 너를 보았다.

뛰어갈 방향을 알았고 도착할 목적지를 발견했다. 가는 경로에서 맞이하는 사소한 문제들은 겨우 즐길 유희일뿐이다.

한 점으로 모이고 있는 나의 감정이 너의 크기를 받아들이고 그때가 되어 발산할 때면, 비로소 시작이 어디였는지 처음 알게 될 터이다.

이전 02화 Singularity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