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예상 시간이 4시라고 말하던 네이버는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4시 20분을 도착 시간으로 고쳐 쓰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리고 너는 내가 늦을 것을 알고 있었는 듯, 진짜로 안 늦냐고 계속 물어봤다.
나는 그 물음에 당당하게 대답했지.
"오늘 늦으면 내 발목 잘라!"
얼마 지나지 않아, 역마가 낀 나의 사주를 보다 못한 조상님이 도와주려는 듯 내 발목을 앗아가 버렸다. 발목을 잘려버린 나는 너를 마주 보고 서있었지. 오늘도 네가 나를 먼저 발견하고 다가와 주었다.
오늘 너의 분위기는 처음과는 또 달랐다.
손가락만큼 예쁜 발목이 드러난, 조금 몸에 붙는 검은색 원피스에 조금 더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너를 마주하자니 그 순간에는 지각한 것을 잊고 너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내 다시 나의 잘못을 인지하고 나는 괜히 웃으며 넘겨보려 하고 있었다. 아직 이른 저녁시간이라 카페에 잠깐 들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에는 진짜 안 늦을게.." 나는 다시 말했다.
"다음이 있을까?" 너는 특유의 그 표정과 말투로 대답했다.
물론 너는 장난으로 대답했던 말이겠지만, 너의 힘 있는 말끝에는 웃어넘길 수 없는 대답이었다. 어느 누가 두 번의 만남에서 모두 지각한 사람을 좋게 볼 수 있단 말인가.
나의 감정은 서서히 일렁이며 온갖 상상들과 더해져서 너와의 시간들을 방해하려 했지만, 이내 다시 너에게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 걱정도 잠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너의 얼굴을 옆에서 몰래 보고 있자면 다시 나의 감정들은 한 점으로 모이고 있었다.
저녁을 무사히 먹고, 오늘 저녁에 추첨을 하는 복권도 하나씩 샀다.
"이거 당첨되면 어쩌지?"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당첨되면 너랑 연락 안 할 건데요~?" 너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리고 생각했다. '그럼 당첨 안되면 계속 연락해야지'
1등은커녕 5등도 당첨되지 않았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벌써 너와의 만남이 끝나는 시간이 다가오니 아쉬워서 괜히 근처를 걷자고 너에게 말했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고 하지만 그래도 제법 더운 날씨였다. 너의 청춘이 담긴 공간에서 지금의 나는 너의 옆에서 같이 걸었다. 너에게는 그 장소는 어떤 곳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나는 너의 세상에 들어와 이들처럼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지, 조금 비밀스러운 상상을 했다.
"너는 대답에 영혼이 없어!"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는걸 어떻게 알았는지 꾸짖음이 들려왔다.
나는 다시 네가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너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크기를 모르는 낯선 곳에 처음 들어와 발을 디뎠다. 발이 얼마큼 빠져버리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그 아래에는 분명 단단하고 부드러운 모래들이 있겠지. 그리고 지워지지 않을 발자국을 남기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