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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Singularity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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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릉 Aug 30. 2022

Singularity

05EVENTHORI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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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를 보는 소녀,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같은 소설 제목을 들어봤을 것이다. 상상을 해보면 터무니없는 말들이지만 실제로 당신이 냄새를 보게 된다거나 시간을 달릴 수 있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었을 때,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때, 하지 못한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쾌락과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의 감정을 보고 싶었다.

나의 감정들은 이미 거대한 너에게로 휩쓸려 들어가 팽창했다 수축했다를 반복하고 있었으니, 그에 반해 너의 감정은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블랙홀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절대로 볼 수가 없었던.




오늘은 무슨 일인지 네가 약속시간에 지각을 했다. 항상 약속시간에 지각을 한건 나였지만 오늘은 그래서인지 네가 편했다.

오늘은 너와 만나서 처음으로 너라고 했던 날이다. 누나라고 했던 지난번과는 달리 더 편하고 좋았다.

그리고 소위 연인들이 한다는 그런 기분 좋은 데이트를 했다.


커다란 스크린 앞에 나란히 앉아 숨죽이며 영화를 볼 땐 네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내 신경은 온통 너에게로 향했으며,

왕십리부터 서울숲까지 함께 걷는 동안 내 시선은 마스크 위로 자리하고 있는 너의 눈으로 향했다.



"있는 힘껏 때려봐" 너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는 그리고 있는 힘껏 너의 손목을 손가락으로 때렸다. 그리고 너의 표정을 살폈지.

너의 그 미묘한 표정 뒤로 나는 너의 감정을 조금 본 것 같다.

아니, 나는 너의 감정을 보는 방법을 그때 깨달았다.


그동안 너의 본질을 보려고만 했던 나는 절대로 그것을 볼 수 없었던 게 당연했다.

나는 그대로 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려고 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너의 감정을 보려면 너와의 상호작용이 필요했다. 나는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너에게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블랙홀의 모습은 그 본질이 아닌, 경계면에 있는 빛을 보고 그 형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싼 밝은 빛으로 그 크기와 영역을 가늠할 수 있는 것처럼,


너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나의 빛나는 감정들은 볼 수 없었던 너의 감정의 크기를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나는 그 본질을 보려 그 자체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볼 수 없는 것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시선을 더 넓혀 그 상호작용을 보자니 그제야 볼 수 없던 것을 볼 수 있었다.


너로부터 생겨난 나의 그 감정들을 아낌없이 너에게 모두 쏟아준다면,

그것들이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어떠한 형태로도 다시 빠져나오지 못한다 해도,

그 빛나는 것들이 너의 감정을 보게 해 줄 수 있으니,


나는 기꺼이 너에게 모두 건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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