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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 : 뫼비우스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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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릉

"우리 집에 온 손님은 네가 처음이긴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지 같이 가자!" 윤슬은 지금 이 상황이 즐거운 건지 꽤나 목소리에 즐거움이 담겨있었다.

"휴우..."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그리고 조금 앞에서 걷고 있는 윤슬이의 뒤를 재빨리 따라갔다.

'낯선 여자아이의 집이라니, 게다가 하루 자고 간다고?',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무슨 생각해?" 머릿속의 시끄러운 소음 사이에 윤슬이의 또렷한 목소리가 박혔다.

아직 나는 내 수많은 질문의 대답조차 하지 못했기에 윤슬이의 질문 또한 대답을 못했다.

"가만 보자..."

'꿀꺽' 나는 괜스레 긴장이 되었다. 저 아이는 분명 이런 나를 또 놀리려 할 것이다. 긴장하지 말자.

"너 얼굴이 굉장히 빨개. 설마 너 여자아이 집에 와서 자고 가는 거에 대한 어떤 기대라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내가 얼굴이 빨개져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 아니!" 그리고 곧이어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변태."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럼 무슨 생각하고 있었는데?" 윤슬이는 가늘게 두 눈을 뜨고 물었다. 입꼬리는 애써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집에 아무도 없어?" 나는 머리를 쥐어짜 내서 질문을 했다.

"... 변태."

"아,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푸하하하"

입술에 힘을 주어 막고 있던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굉장히 큰 웃음소리와 함께 윤슬이는 배를 잡고 거의 접힐 듯 웃고 있었다.

당했다. 저 아이는 어째서 나를 놀리는 게 이렇게 좋단 말인가.

그래도 윤슬이의 즐거운 웃음소리에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 또한 기분이 괜히 좋아지는 소리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지평선 끝자락에 간신히 걸터있던 길었던 오늘이 지고 한순간에 어둠이 우릴 덮쳤다. 매일같이 아무렇지 않게 맞이하는 밤이지만 지금 이 낯설고 신경이 곤두설 것 같은 어둠은 처음이다. 나는 이 느낌에 흠칫 놀라 잠시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곧이어 내 눈앞에 펼쳐질 놀랍고도 아름다운 장면은 지금껏, 아니, 앞으로 남은 인생에 있어 맞이할 그 무엇도 견줄 수 없을 것이다.


하루 동안 뜨겁게 괴롭히던 해를 담고 있던 그들은 잠시 몸을 식히려 차가운 달을 머금더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흘러내려갔다. 그 흐름 속에서 발산하는 또 다른 윤슬들은 어찌나 밝게 빛나던지 눈을 가득 채웠던 낯선 어둠을 내쫓고 주변을 환하게 비추어냈다.

그 완벽하게 빛나지 않는 달빛 아래 수많은 금잔화들이 그것을 머금고 내 발걸음에 맞추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그 소녀는 어느새 두 손을 높이 들고 사뿐사뿐 금잔화들 사이를 걷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토록 아름다운, 황홀한 사건이 있단 말인가!


오늘에 있었던 그 모든 일들은 전혀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다, 지금 이순간 만큼은 아니 앞으로 어떤 일들을 마주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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