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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 : 뫼비우스의 띠

11

by 그릉

뜨거운 물로 몸에 남아있는 여름의 흔적을 씻겨 내리니 그제야 개운함과 동시에 피로가 몰려왔다. 오늘 하루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다시 차분히 생각해 봤다.


'히마, 지각, 청소...'

'낡은 플랫폼, 녹이 슨 철도, 눈부신 금잔화, 달짝지근한 향기...'

'터널, 거대한 먼지바람... 윤슬'


'윤슬, 게다가 너는 오늘 처음으로 만났잖아?'

분명 처음으로 만났지만... 처음이지만 아니, 여기까지로 오면서 마주한 것들 모두 나에게 있어 처음이지만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꺼림칙했다.


「"너를 만난 건 처음이라, 잘 부탁해!" 윤슬은 살짝 눈웃음을 보이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윤슬이 와 나눴던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그래 너도 분명 나를 처음 봤겠지만... 어색하다'


"으아아"

다듬어지지 않는 생각들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를 괴롭히자 나는 그것들을 다 떨치고자 발버둥 쳤다. 샴푸가 얼굴을 타고 흘러 찢어진 턱에 닿자 통증을 느꼈다. 그것을 끝으로 나는 상쾌한?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문 앞에는 수건과 오늘 내가 입을 옷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엔 쪽지가 놓여 있었다.


「옷 다 입고 1층으로 내려와 밥 먹자」


나는 머리도 채 말리지 않고 옷을 입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혹시 몰라 바닥에 놓인 휴대폰을 들어 올려 문자함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3건" 21:05 pm」

「"오늘 아빠도 출장 왔다가 좀 늦어서 집에 못 들어간다. 확인하면 전화 좀 주렴" 21:07 pm」


"아차, 아빠가 그새 전화를"

나는 재빨리 통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했다.

"뚜... 뚜..."

"그래, 한별이니?"

이번엔 드디어 아빠와의 연락이 닿았다.

"응... 그게 오늘"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설명을 할지 몰랐다.


"오늘 아빠가 안 그래도 출장 때문에 늦을 것 같았는데, 더 늦어져서 집에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구나. 그나저나 너도 주안이네서 자고 온다고?"

"어 나도 오늘 밀린 숙제를 하다 보니 늦어져서 내일 학교 가기에도 주안이네 집에서 가는 게 더 가깝기도 하고..."

다행히 아빠가 먼저 얘기를 꺼내 나도 쉽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흠, 일단 알겠다. 내일 집 가서 보자꾸나"

"응 저녁 챙겨 먹고 내일 봐"

아빠의 마지막 말엔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더 길게 대화로 이어질까 봐 마무리한 것 같은, 많은 감정이 담긴 어조였다. 그나저나 꽤나 쉽게 외박의 허락을 받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휴대폰을 다시 두고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복도를 따라 계단까지 꽤나 훌륭한 냄새가 올라왔다.


'킁킁, 이건 야채카레 같은데'

이 냄새는 고기보단 야채를 잔뜩 넣고 끓인 카레가 분명하다. 아빠가 꽤나 자주 해줬기에 냄새부터 알 수 있었다. 점점 발걸음이 빨라졌고 금세 1층 마루를 밟고 주방이 어딘지 모르지만 단박에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주방엔 역시나 윤슬이가 카레를 만들어서 그릇에 옮겨 담고 있었다. 나는 살면서 주방에서 아빠만 있던 모습을 보았기에, 머리를 묶은 채 서있는 윤슬 이를 보고 있자니 다시 한번 제자리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한 카레 냄새에 이번엔 기분 좋은 달콤한 냄새가 내 코를 타고 들어 뇌를 마비시키진 못했다.


윤슬 이를 부르던 찰나, 아이는 몸을 돌려 나와 마주 보았다.

윤슬이는 눈이 조금 커졌지만 눈동자로 내 모습을 위아래로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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