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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릉 Oct 03. 2024

가제 : 뫼비우스의 띠

7

커다란 그것들은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오는가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른 속도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려 아이의 손목을 잡아 몸을 웅크렸다. 곧이어 굉장한 소리와 함께 먼지바람이 빠르게 나와 아이를 덮쳤다.


"챙캉챙캉" 손목에 걸린 비닐봉지 속에 알루미늄 사료 캔들이 부딪히는 소리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특유의 진한 흙냄새, 교복을 들추며 등을 타고 흐르는 날카로운 바람이 나의 모든 신경을 잠식하며 캄캄한 공포 속으로 몰아 두었다.

떨린다. 이 알 수 없는 것들에 집어삼켜져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두 손으로 움켜쥔 아이의 옷깃에서부터 느껴지는 따스함이 이내 온몸으로 타고 흘러 들어와 공포로 잠식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나의 감각을 모두 녹여 주었다.


"저기... 이제 좀 일어나 줄래?" 내 몸 아래 웅크린 채 아이는 말했다."

나는 분명 그 말을 들었지만 아직 모든 감각이 돌아오지 않아서 인지 눈만 꿈뻑였다.

"일어나 줄래?!" 몸 아래서 꿈틀거림과 함께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그제야 나는 정신이 들었다.

"도대체 방금 그건 뭐야?"

나는 감싸고 있던 두 손을 놓으며 재빠르게 일어났다. 그리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며 대답했다.

"너무 순식간이라..."

나는 그 거대한 알 수 없는, 그리고 불투명한, 우리를 삼켜 지나간 자리를 고개를 돌려 그 흔적을 찾았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 저기..!"

윤슬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경쾌한 음을 남긴 채 윤슬이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불길한 무언가가 보였다. 나는 눈을 조금 찌푸려 그것이 무엇인지 보려 애썼다. 흙먼지 같은 것들이 몽글몽글 피어나 이미 꽤나 높은 곳까지 머물렀으며, 조금씩 그 뒤의 형체가 보일 듯 말 듯했다. 


어째서인지 항상 불안한 느낌은 틀리지 않는지 가슴이 저려오면 곧이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곧이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눈앞에 마주한 것은 낡은 터널의 입구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막은듯한, 터널 위 산에서 쏟아져 내린 바위와 흙들이 무질서하게 쌓여있었다.

분명 그곳은 내가 조금 전까지 들어왔던 터널 입구였다. 아니 정확히 그 "위치"에서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여자 아이는 왜 이토록 아무렇지 않단말인가.


'낡은 플랫폼, 녹이 슨 철도, 눈부신 금잔화, 달짝지근한 향기...' 그리고

'거대한 먼지바람, 따스함'

"윤슬"


사건의 끝에는 그토록 이름표 속 알아내고 싶었던 그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낯설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 공간을 돌아보았다. 은박지처럼 반짝이며 흐르는 물들 과 그 너머에 바람 따라 흔들리는 금잔화들이 보였다. 저물어 가는 여름 햇살 냄새와 커다란 나무에 달린 잎사귀들, 조금 무성하게 나라난 잡초, 그리고 달짝지근한 아이의 냄새가 마구 섞여 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뒤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눈망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던 이제 시작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의 순리일지, 아니면 온전히 거스르는 인생일지, 아니면 단순한 하루였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지금 여기 서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이, 냄새가, 온도가, 소리가, 눈앞에 반짝이는 그 아이가, 

나를 향한 이 모든 것의 "시작"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려"

저물어 가는 여름 햇살에 길게 뉘어진 그림자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개인적인 일을 끝내고 다시 꾸준히 연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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