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편지(2부) 23

by 순례자

사랑하는 아들아


오후 11시 56분이다. 오늘도 4분 남았다. 우리 아들을 만날 날이 하루 더 성큼 다가왔다. 드디어 너희 중대가 기초 군사 훈련을 마치고 군장 야영을 나갔나 보구나. 숙영 훈련장에서 텐트를 치고 취사, 야간 경계, 행군 등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이겠구나. 훈련의 후반부에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다. 아빠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하지? 오늘 쓴 모든 편지들이 접수만 되고 전달이 안 돼서 훈련스케줄을 찾아보고 추측했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밖에서 자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을 거야. 일단 무척 춥단다. 바닥은 배기고 밤새 오들오들 떨고 지새울 수도 있겠구나. 내복을 껴입고 내피도 단단히 입었겠지?


그래도 네가 야영을 좋아해서 이 마지막 훈련을 즐거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네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부터 우리 가족이 야영 다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니? 방학만 되면 전국의 강과 바닷가로 달려가서 텐트를 치고 자연과 함께 하던 날들이 떠오른다. 집 나서면 고생이라는 것은 떠난 사람만이 안다. 그것을 알면서도 텐트를 치고 씻고 자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며칠을 밖에서 지내는 즐거움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많은 기억 속에서도 네가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강릉의 오대산에 있는 소금강 야영지에 텐트를 쳤던 생각이 난다. 작은 금강산이란 이름에 걸맞은 다양한 모습의 바위와 깊은 계곡이 아름다운 국립공원옆 야영지에 텐트를 쳤다. 야영 둘째 날 밤이었다. 한낮의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김치찌개와 삼겹살을 맛나게 먹고 나서 운동 삼아 산을 오르고 내려와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텐트로 돌아왔다. 모두가 피곤해서 곯아떨어졌는데 한밤중에 텐트를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바닥이 축축해지고 텐트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서 칠흑 같은 어둠에 텐트 밖으로 나갔다. 억수같이 소나기가 쏟아지는데 텐트 주변에 물길을 얕게 파서 텐트 안으로 물이 흘러들어온 것이다. 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렌턴을 비쳐 주는 동안 아빠는 폭우 속에서 테트 주변 물길을 깊이 파고 텐트를 바닥에 고정시키기 위해서 팩을 단단히 다시 박았다. 다행히 경사면의 위쪽에 잘 다져진 땅에 텐트를 치고 있어서 길지 않은 시간에 주변을 잘 정돈했다. 너와 나는 물에 빠진 생쥐같이 돼서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거리며 웃었고, 엄마는 뭐가 그리 좋냐고, 이 불편한 걸 감수하고 야영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핀잔을 줬다.


우리는 그 밤에 텐트를 두드리는 요란한 빗소리를 들으며 컵라면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다가 늦게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요란하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을 깼을 때는 어젯밤과는 전혀 다른 아침이었다. 너와 나란히 서서 맑고 깨끗한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속 깊이 찬 공기를 느끼 청량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셨던 기억을 한다. 이 맛에 우리는 또 다른 야영지를 찾아다녔다. 너도 그 아침을 너무 기뻐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야영을 좋아하던 너를 생각하니 이 군장 숙영도 잘 해낼 것 같다. 군장 숙영은 며칠간 계속되니? 이 일정이 훈련소의 마지막 강훈련 코스인가 싶다. 마지막까지 몸관리 잘하거라. 군대에서 몸 아프면 서럽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으니 네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증상이 뚜렷하지 않으면 네 마음대로 몸져누울 수도 없다. 우리 아들이 지혜롭게 잘하겠지만 몸이 안 좋고 아프면 도움을 요청해서 꼭 쉬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어찌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400년 광야 텐트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나님 곁을 떠나 최초의 순례자이셨던 우리 예수님을 생각한다. 우리 인생도 천국 가는 그날까지 이 땅의 순례자가 아닐까? 장막대신 쾌적한 아파트와 약대와 나귀대신 자동차, 메추라기와 만나 대신 수고한 노동의 결과로 얻은 수입으로 원하는 음식을 먹으며 이 삶을 유지하고 사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척박하고 은혜가 부족한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닐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에 하나님의 전적 보살핌으로 그들의 의복이 해어지지 않았고 때에 따라 맛나와 메추라기를 먹었다. 그것에 비하면 수고하고 근심하며 노동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 시대가 오히려 더 척박하고 곤궁한 광야 생활일 수 있겠다.


그 광야의 천막 체험을 우리 아들이 군에서 경험하는구나. 네 말대로 "긍정의 힘"을 마음에 품으면 우리 하나님이 매 순간 놀랄만한 세미한 것까지 도우신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단다. 나의 목소리를 낮추고, 내 생각을 잠잠히 하면, 그때 하나님의 간섭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전심으로 그분을 의지하는 순간에 깨닫게 되는 진리이다. 그래서 아빠는 새벽 기도 시간과 겸손히 섬기는 교회 생활을 그리워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우리 아들이 우리 하나님의 그 세미한 음성과 도움심을 경험해서 그분과 친밀감을 지속하길 바란다. 정체돼 있는 것 같은 이 군복무 기간이 어쩌면 인생에 가장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군장 숙영을 마치고 부대에 돌아오면 밀렸던 편지들이 전달되겠구나. 보고 싶구나, 아들아. 네가 훈련소에 입소하고 나서 쓴 편지가 제법 많아졌다. 수료식 날까지 합치면 클리어 파일 두 권은 될 듯하다. 지금은 하루를 사는 것이 벅차서 읽을 여유가 없겠지만 먼 훗날 읽어 보면 추억이 새로울 거다.


아들아, 오늘도 엄마, 아빠의 응원과 기도에 힘입어 멋지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하거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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