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크는 아버지 28화

by 순례자

재외국민교육기관(한국국제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의 처우는 나라와 지역, 현지 사정과 물가, 학교의 재정과 학교장의 경영 방침, 학교 이사회와 이사장의 영향력에 따라 학교별로 차이가 많다. 하지만 공통된 사실은 대부분의 초빙 교사의 처우가 열악하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내가 중국의 T시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월급명세서에 1만 위안이라고 찍혔다. 그중에 1천 위안은 원천소득세로 공제하고 9천 위안을 받았다. 이 당시에는 보너스도 성과급도 없었다. 단지 1년을 근무하면 1개월 분을 퇴직금으로 적립한다고 했다.


집은 학교에서 걸어서 10분 떨어진 중국인들이 사는 지역의 아파트를 월세 3,000위안에 빌려 놓았다. 학교에서 직접 지불한다. 이 아파트에는 여러명의 동료 초빙교사들이 살았다.


당시 1위안이 120원 정도였다. 주택을 제공하고 내 손에 쥐는 것은 한 달에 1백만 원 남짓되었다. 여기에 국어, 영어, 수학 등의 교사는 방과 후 수업이 있고. 토요일에 토요학교 교사를 맡아 어는 정도의 추가 수입이 있다. 나는 1년을 T시에서 근무하는 동안 중국의 여러 곳을 여행 다녔다.


T시에 파견 나온 일반 기업의 한국인들은 학교에서 떨어진 상대적으로 좋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파견 교감과 교장 모두 이 동네에 산다. 이곳의 월세는 6,000 위안 이상부터 시작된다. 초빙교사들은 엄두도 못 낸다. 이 지역에는 삶에 편리한 기반 시설이 잘 갖춰있다.


다음 해에 홍콩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월급은 3만 홍콩 달러이고 보너스, 성과급, 주택 보조비는 없다. 퇴직금은 따로 없고 매달 교사와 학교가 각각 1천 홍콩 달러를 내는 MPF가 있다. 일종에 연금인데 홍콩을 떠날 때 다시 홍콩에 돌아와서 직장을 갖지 않는다고 법원에서 선서를 하면 한국을 떠난 후에 한국에서 받는다. 첫 집은 1만 홍콩 달러였다. 홍콩에서 집을 구할 때는 첫 달 월세를 낼 때, 두 달 치를 보증금으로 낸다. 이사를 갈 때 보증금은 돌려준다. 학교에서는 초기 정착비 5만 홍콩달러를 빌려 주고 매달 5 천불씩 공제한다.


홍콩에 와보니 3만 홍콩달러는 많은 월급이 아니었다. 중국보다 물가가 3~5배는 비쌌다. 중국의 집세가 3천 위안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추측할 수 있다. 물론 홍콩한국국제학교는 해외한국국제학교 중에는 유일하게 중심 주택지에 세워져 있다. 주변 환경도 매우 좋다.


우리가 첫 초빙교사였다. 이전까지는 파견교사와 현지채용 교사가 근무하고 있어서 초빙교사에 대한 처우 문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교장과 재단에 교사 처우에 대해서 여러 번 건의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수용되었다.


홍콩한국국제학교 학비는 당시 환율로 초등이 연 700~800만 원 정도였다. 교사의 자녀는 절반을 할인해 준다고 했다. 다른 국제학교의 사례를 찾아보니 면제해 주는 학교가 많았다. 타 국제학교 자료를 준비해서 건의서를 작성했다. 얼마 후에 교사 자녀 학비 면제를 허락했다. 그리고 다음 해부터는 적지만 주택보조비로 2천 홍콩불을 받을 수 있었다.


홍콩의 모든 직장인들은 매년 연말에 사측과 일대일 임금 협상을 한다. 회사에서는 직원의 기여도를 반영해서 내년에 임금 인상폭을 제시하고 피고용자도 자신의 인상분을 제시한다. 서로가 인정하면 계약서 2부를 작성해서 사인하고 나눠갖는다. 같은 캠퍼스 안에 있는 국제학부에 외국인 교사들은 이 계약에 의해서 채용되고 혹은 교체되기도 했다. 한국의 고용제도에 익숙한 나로서는 매우 낯선 방식이었다. 한국어학부인 우리들도 매년 그렇게 계약을 했다.


또한 사측이나 피고용자는 모두 2개월 전에 해직 혹은 이직을 통보할 수 있다. 그리고 취업한 사람은 3개월 간의 수습 기간을 이상 없이 보내야 정직원이 된다. 그래서 홍콩은 교직을 포함한 모든 직장에 이동이 많다. 퇴직당하면 3개월 간의 월급을 받는다. 교직도 이와 같은 원칙에 포함된다.


첫해에 고3 담임을 맡았다. 이 학생들의 입시 성적이 좋았다. 작년에 비해 월등히 좋았다. 20명 남짓되는 학생들 중에 S대 의대에 2명, S대 법대에 1명, Y와 K 대에 각각 4명을 포함해서 전원이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홍콩교민 사회가 떠들썩했다. 물론 나의 역량은 아니었다. 특례입시는 7월에 시작해서 8월 중순이면 대부분 끝난다. 내가 2월 18일에 홍콩에 도착해서 방과 후 수업을 시작해서 7월 수업까지 대략 5개월 정도 가르치고 진학지도를 한 것뿐이니 실상은 고 1, 2학년 때 가르친 선생님들 덕분일 것이다.


그런데 임금 협상은 결과와 기여도로 줄다리기를 한다. 나는 유리한 고지에 있었고 연이은 다음 해에도 학생들의 입시 성적이 좋아서 비교적 임금 상승률이 높았다. 같이 근무하는 우리들은 서로의 월급을 몰랐다.


방과 후 수업과 토요학교 교사를 했다. 홍콩의 중문대학 한국어과의 요청으로 매주 2회 오후에 한국어 강사를 하게 됐다. 그래서 홍콩에서의 형편은 비교적 해마다 나아졌다.


그 후로 몇 년 뒤부터는 해외한국학교 교장된 회의가 정례화 됐고 가장 먼저 교사 임금에 대한 기본안이 마련됐다. 현지 물가와 재단상황에 따라 기본급이 정해졌다. 개별적인 임금 교섭은 없어졌다. 초빙교사 모집 공고에 임금에 대해 분명하게 공지하고 경력에 따른 추가금도 명시했다.


교사처우가 비교적 열악 한 근거가 되는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다. 한국의 교육부에서 매년 경제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한다. 지원 조건은 홍콩 달라 월 3만 불 내외의 소득과 월세 1만~1만 5천 내외이다. 바로 우리 교사들에 해당된다. 즉 경제 소외 계층에 속하는 것이다.


재외교육기관의 교사 처우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이다. 재외국민교육에 관심을 갖은 많은 분들이 가입해 있는 블로그에는 초빙교사의 처우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의견을 개진하며 열띤 토론이 여러 번 벌어졌었다. 이 블로그에는 과거 재외국민교육기관에 근무했던 교사, 현재 근무하는 교사와 관리자(교장), 행정직(장학사 등), 학부모, 교사대 재학생 등 다양한 분들이 가입돼 있다.


따라서 각 지역의 교사들의 처우 개선과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쪽과 "그만하면 됐다, 고만해라"라고 반박하는 쪽으로 나뉜다. 반대하는 분들의 논리의 근간에는 휴직교사에게 그 정도 대우를 해주면 됐다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 같다. 현지 물가와 학교의 재정 형편을 거론하는가 하면 교육보다는 물질에 더 관심을 갖는 교사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그 양쪽 끝에 어떤 직군의 사람들이 서 있는지는 추측할만하다. 물론, 교사 분들 중에도 월급에 연연하지 않고 순수한 교육의 열정을 선택하신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지 교사들이 처우개선을 거론할 때, 누가 현직 교사에게 대기업 수준의 처우를 해달라고 하겠는가? 재외국민교육법을 운용하는 선진국 반열의 대한민국의 교사가 적어도 한국에서 사는 삶의 수준 정도는 살면서 교육활동에 전념하게 해 달라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이런 기본적인 건의를 온갖 논리를 앞세워 반대하는 분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말하는 관리자도 있었다.


"아니 누가 오라고 그랬나? 자기가 좋아서 나온 거잖아.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일찍 돌아가지 왜 남아 있나, 살만하니 있는 것 아닌가? 특례 때문에 나온 거 아냐?"


참고로 나는 한국의 치열한 교육 현실에 염증을 느껴서 한국을 탈출할 의도에서 시작한 해외생활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었고, 초빙교사를 준비하면서 특례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러니 특례를 노리고 나왔다고 보기에는 너무 아이가 어리다.


초빙교사의 처우개선을 주장하는 것은 교사로서 기본적인 품위는 지킬 수 있도록 처우를 해달라는 것이다. 때로는 어떤 교사분 중에


"열악한 환경이 아니다, 쓰기 나름이다. 긴축해서 현지인처럼 재래시장을 이용하고 현지인처럼 먹고살면 살만하다."


라는 등의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다. 나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안타깝다. 왜 우리가 현지인처럼 긴축하고 절제하며 최소 비용으로 살아갈 것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가? 초빙 교사의 삶은 선생님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개인 차가 너무 커서 어느 분의 얘기가 맞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교사로서의 사명, 해외 학교 교사로서의 의무와 책임 그리고 가장이요 생활인으로서의 열악한 처우"를 어떻게 잘 조율해 나갈 수 있느냐가 초빙교사들이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인 것 같다. 어떤 관리자의 말대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다."라는 말에는 "초빙 교사의 처우 개선은 요원한 일"이라는 맥락으로 귀결된다.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분들의 의견은 어느 편에서 보면 모두 설득력이 있다. 이 문제를 학교와 재단 VS 초빙교사의 대결구도로 내몰아서는 안된다. '재외국민교육법'을 제정한 국가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해나가야 한다.


앞으로 재외국민교육기관에 근무하고자 하는 선생님은 여러 가지 견해를 모두 참고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해외 생활의 낭만적인 그 어떤 것도 6개월을 넘지 못한다. 즐거움과 기쁨도 있고, 상대적 박탈감도 있다. 이 양자의 사이에서 더 가치로운 쪽을 선택하면 다른 부분은 상쇄될 것이다.


모두 좋을 수도, 마구 불평할 수도 없었던, 달콤하지만 척박했던 해외학교 시절을 돌아보고있다. 벌은 먹어서 꿀을 내고, 뱀은 독을 만든다고 했다. 모든 선생님들이 녹록지 않은 재외한국학교 경험을 통해서 기쁨과 감사, 불평과 분노의 기억들이 혼재돼서 각기 다르게 남았을 것 같다. 좋은 추억은 말하기 쉬운데, 불쾌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 또한 이곳에 기록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관점이다. 누군가에게 누가될까를 자주 생각한다. 그래도 실수가 있을까 조심스럽다.



* 홍콩한국국제학교 사진

* 이 글은 2000년대 초반 제가 근무했던 때의 일을 적은 것입니다. 지금의 학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먼 옛 날의 일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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