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글을 연재하게 된 동기는 오랜 부담감 때문이다. 다시 한국의 고등학교 현장에 익숙지면 잊히게 될 해외에서의 삶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외교사로 10년을 살아보니 1"의 연재를 끝냈다. 그리고 "2"연재하려고 했으나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이와 함께 크는 아버지"를 연재하면서 "2"를 대신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해외국제학교 교사 생활을 하고 한국의 고등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정신이 없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 시간이 넘어서 한국에 돌아왔고 세상은 강산뿐 아니라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지나 치던 잠실주공 1~4단지의 낡은 회색빛 아파트는 거대한 아파트 숲으로 변해있었다.
나를 더 긴장시켰던 것은 다시 돌아온 한국고등학교 현장이었다. 학교의 학교생활기록부, 학사, 인사, 회계 등의 교육행정 업무를 전산화해서 처리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2003년 하반기에 도입되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사용한 적이 없다. 그리고 해외한국학교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았다. 10여 년 만에 학교의 모든 학사 업무는 이 프로그램으로 처리해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새로 배워야 했다.
교사가 수업에 들어가서 가르치는 일 외에 무슨 할 일이 있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르시는 말씀이다. 한 학생이 들어오면 새로운 인생이 하나 백지와 나란히 들어오는 것이다. 그가 3년을 지나고 졸업할 때 쯤되면 최소 10페이지에서 20여 페이지 내외의 리포트가 작성된다. 그것이 학교생활기록부이다. 그러니까 백지로 들어온 아이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기록한 자료들을 꽉꽉 채워서 그들의 학교생활의 전반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모든 교사는 바빠야 한다.
특히 담임은 무척 힘겨운 업무다.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담임은 새롭게 1년을 써나갈 백지와 같은 아이들을 20~30여 명을 책임지게 된다. 이 아이들을 관찰하고 상담해서 성적 등의 객관화된 기록 외에 자료들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게 된다. 그래서 교무실 안은 늘 분주하다. 수업을 하고 나오면 일거리가 늘 줄을 서서 기다린다. 학교 행정업무는 기본이다. 그중에 학생들을 상담하는 일이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의 가장 소중한 성장의 시간을 책임지는 일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학생들을 만나야 한다.
아쉽게도 나는 이 절박한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해외로 나가기 전에 한국에 있을 때 교사 생활이 너무 바빴다. 주당 18~20시간 내외의 수업시간, 4~6시간의 방과 후 수업, 주 2회 야간자율학습 감독, 매일 2명 이상의 학생 상담, 그리고 대학원 수업, 그 이후는 대학에서 작문, 한국어 강의를 야간에 주 3회 각 회 3시간 30분씩 강의했다. 정신없이 분주하게,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젊었을 때 나의 의무요 기쁨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늘 시간과 잠과 피로에 시달렸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학생 하나하나에 대한 깊은 관심과 상담의 시간이 부족했다. 학생들 개개인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못했다. 그냥 열정적이고 늘 바쁜 그런 선생이었다.
한 아이가 오는 것은 한 아이의 인생이 내게 오는 것이다. 그야말로 A4 용지 20여 페이지를 채워야 할 한 아이의 삶의 기록이 내게 맡겨진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고등학교 3년을 보내는 아이들은 많은 일로 고뇌한다. 성적이 좋은 아이나 성적이 부족한 아이 가릴 것 없이 공부에 대한 압박은 비슷하게 받는다. 단지 제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는 척하는 것이다. 그들 안에는 늘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이 소용돌이친다. 성적 순위와 등급이 줄 세워진 학교 현장에서 그들은 나름대로 살아 숨 쉬는 방법을 터득한다. 학생들의 표면적 행동과 말씨 속에 숨은 고뇌와 갈등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일이 서툰 학교에서는 늘 문제가 생기고 시끄럽다.
학생 하나하나는 그들의 부모의 생명이다. 공부와 성적에 전혀 관심이 없고 아무리 말썽을 부리고 문제가 되는 아이라도 아이를 비난하고 타박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낳고 길렀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녀가 상처를 받고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이성을 잃는 부모를 여러 번 만났다. 나는 학생이 학교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그 일로 부모가 행패(?)를 부려도 학교는 한걸음 떨어져 그 상황을 이해하고 할 수 있는 한 회복의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게도 그런 기억이 몇 번 있었다. 내 잘못이 아닌 일로 학생이나 학부모의 무례한 언행과 태도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의 소중함을 깨달은 후에는, 나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도록 내 사고의 체계를 바꿨다. 대체 불가한 자신의 분신 같은 자녀에게 생긴 일에 어떤 부모가 냉정하게 이성적일 수 있겠는가, 그 일은 시간이 지나서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감정이 가라앉으면 해결될 문제다.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앞에 선 한 아이의 인생을 우리가 보호하고 돌봐야 한다는 것뿐이다.
* 동아일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