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택배

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by 집안의 불청객

요즘 들어 알 수 없는 택배가 온다는 뉴스가 뜬다. 택배 안에 든 물건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한다.


개봉하지 않은 많은 택배가 누군가의 문 앞에서 경찰서 안으로 이동된다.


그녀에게 선물로 택배를 보낼 때, 그녀가 나에게 선물로 택배를 보낼 때. 그 안은 당연히 행복한 것들만 있었다.


서로 생일을 챙기고 기념일을 챙기면 좋은 것들만 나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형상화할 수 있는 물질이기만 했다. 나이에 비해 최대한 표현할 수 있는 가격을 매겼다.


사랑은 가격이 아니었다. 가격은 그냥 택배 상자 안에 담긴 물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건뿐인 사랑에 진심이라는 게 담겨있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리고 그런 미지수는 꼭 챙겨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바뀌었다.


의심이 확실한 것과는 다르다. 종류가 아예 변질되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변질되어 버린 것은 다시 돌릴 수 있는 철에 녹이 슨 것은 아니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곰팡이가 핀 것이었다.


곰팡이는 점점 잠식한다.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했다. 문제는 우리가 썩은 부분을 찾아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티를 내지 않았으니까. 서로가 뒤로 감춘 채로 제시한 적이 없으니까.


그 부분은 점점 커져서 잠식해 나갔다. 잠식해 나가는 부위가 커지고 아무리 숨겨도 보이게 되었다.


부분이 보이자마자 조치해야 했다. 조치 취하기는커녕 모른 채로 방관했다.


그러니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이미 다 뒤덮었을 때, 숨길 수 없을 때가 다가왔다.


이제 택배로 선물을 보내지도 않았다. 편지도 보내지도 않았다. 오고 가는 게 사라졌다.


사랑을 표현하는 외적 행동은 당연히 없었고 차츰차츰 남에게 보이는 시선조차 포기했다.


우리 둘은 손을 놓았다. 그 손에는 택배 상자가 언제 들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헤어지고 나서 제일 힘들었던 게 여태까지 쌓아놓았던 물건이었다.


그 물건들은 모두 택배로 받은 선물이거나 같이 했던 추억이었다.


추억은 기억으로 남아 과거를 회상하는 현재를 자극했다. 그 현재는 미래까지도 건드렸다.


그 미래는 상상이 되는 범주 안에 존재했다. 그래서 더욱 서글펐다.


상자에서 하나씩 물건을 꺼냈다. 차마 내 손으로 그걸 만질 수가 없었다. 아니,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맡겼다. 어머니는 담담하게 물건들을 집어 버리기 시작했다.


남겨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물건들이 소멸하였을 때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아니라 너무 큰 불행이라 지워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물건들이 부수어지고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버려져 있었다.


그래서 보지 않으려고 다른 곳에 시야를 두었다. 하지만, 자꾸만 그 물건들에게 곁을 내주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잠들지 못했고 모두가 즐거울 시간에 즐겁지 못했다.


감정이 메말랐다기보다 하나의 감정이 무너져버린 느낌이었다.


고작 그게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것들은 초반에는 분명한 무언가가 깃들어있는 물건이었다.


무언가는 연애 초창기 때의 감정이었다. 상대 뭘 좋아할지 노심초사하며 고른 그 감정 말이다.


바꿀 수 없는 감정이었지만, 잊어야 하는 감정이기도 했다. 두 가지가 충돌하면서 혼란을 초래했다.


다, 전부 버린 줄 알았다. 마음속에만, 기억 속에만 남아있어 그것만 지우면 끝날 줄 알았다.


점점 나아지기 시작할 때 옷장을 열었다. 하나를 버리지 않았다. 커플티였다.


티셔츠는 그냥 옷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가장 유의미하게 남은 흔적이었다.


흔적마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우개를 들어 흔적을 지웠다. 커플티는 헌옷수거함으로 마지막 장소를 선택했다.


곳곳에 남아있는 것들이 꽤 많았다. 일부로 찾기 싫었지만, 찾아서 빨리 없애버리는 편이 나았다고 판단했다.


신발, 옷, 편지, 택배 상자 같은 것들이 있었다. 택배 상자에는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든 물건을 담아 배송되었던 상자였기에 제일 깊숙한 기억에 남았다.


상자에 써져 있는 그녀의 이름이 커플 반지에 각인된 이름과 다를 바가 없게 느껴졌다.


모든 것을 버리고 마지막 이름이 남겨진 택배 상자를 비가 오는 날 잉크가 흐릿해지도록 종이함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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