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지평선

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by 집안의 불청객

그 너머에는 새로운 세계가 있을까. 그런 의문을 품지 못한 채 지평선을 넘지 못한 역사가 있다.


우리는 지평선까지만 이었을까. 아니면 그 너머를 바라봤을까. 만약에 그 이상을 바라봤다면 무슨 결과를 초래했을까.


모두에게 선이라는 게 존재한다. 선 긋는다는 표현이 있을 만큼 생각보다 자주 쓰이는 단어다.


나와 그녀에게 선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화를 내지 않고 참고 짜증을 내도 배려해 주며 기쁜 일을 같이 누렸다.


그래. 그것뿐이었다. 그 지평선의 너머를 보지 못한 채 우리는 관계를 정리했다.


그렇다면, 지평선 너머에는 뭐가 있었을까 고민하게 된다. 결혼, 영원한 동반자 따위 같은 것일까.


어차피 끝난 관계이지만, 가끔 그녀에 관한 꿈을 꾼다. 그것은 악몽인지 선몽인지 판별하기 힘들다.


지평선은 같았을까. 연애 초반부터 후반까지 우리 세계의 면적은 달랐던 것 같다.


초반에는 내가 넓었고 후반에는 그녀가 넓었다. 지평선을 끝으로 한 세계가 넓을수록 좋지 않다.


왜냐하면, 넓은 세계일수록 도전과 모험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안락한 그곳에만 머물려고 한다.


그녀는 초반에 나에게 동거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중반이 넘어가서부터는 결혼하기 싫다고 했다.


강아지처럼 짖음 방지기를 목에 걸고 묶이는 게 싫다고 했다. 나는 나쁜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반대로 나는 초반에 동거와 결혼이 싫었다. 그녀가 제시한 이유와 비슷했지만, 개인적인 시간이 꼭 필요했기에 그러했다.


초반에 그녀가 결혼과 동거 얘기를 꺼내면 언제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이 년 정도가 지나고 내가 자취를 시작했을 때. 그녀가 자취방에 일주일 정도 머물렀을 때 나는 행복했다.


내가 그녀에게 물었을 때는 침묵이라는 태도로 일관한 내가 비추어졌다.


혼자서 과감하게 지평선 너머를 쳐다봤다. 두 명인 우리가 아닌 한 명은 나 혼자서 말이다.


그것은 괴로웠다. 미래 없는 관계를 정의하기 어려웠다. 내가 침묵으로 일관할 때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사람과 계속해서 사랑을 이어 나갈 자신이 있을까 싶은 그런 것이었다.


사랑은 청춘이 아니었다. 과거, 현재, 미래, 감정, 돈 등 무수히 많은 조건의 나열이었다.


사랑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사랑의 시기가 달랐다.


꽃이 피고 지는 시기가 크게 어긋났다. 꿀벌이 다가와도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없었다.


꽃이 폈을 때 그러니까, 내 지평선의 경계가 확실하게 보일 정도로 다가왔을 때 그녀는 이미 꽃잎이 다 떨어진 모습만이 보였다.


광활하게 넓은 바다와 높은 하늘은 수영해도 비행해도 끝이 없었다. 왜 이리도 넓게 변해버린 걸까. 아니면, 내가 그것을 정복하려 가는 것 같아 넓힌 걸까 싶었다.


정복하려 한 게 아닌데. 내 딴에는 같이 잘 해보려고 노력한 것인데 그녀에게는 다른 게 비추어졌나 보다.

그러면 지평선의 넓이뿐만이 아니라, 방향도 달랐던 것 같다. 내가 바라본 쪽은 그녀의 등이 진 곳이었다.

거리, 넓이, 방향 모두가 달랐다. 어떻게 억지로 끼워 맞추어 육 년을 사귀었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한쪽만 등을 돌리면 모든 게 해결이 가능해서일 수도 있다. 그것에 희망을 품고 이상향을 노리고 같은 마음이 맞춰질 거로 긴 시간 동안 불만을 꾹꾹 참으며 연명했나 보다.


지금 내 지평선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기에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목표를 찾았지만, 그것은 그 분야에서 국한된 것이고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지평선은 0의 숫자처럼 존재 여부에 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재정립이 휴식인지 아니면 다른 사랑인지 그것조차 아니면 영원한 혼자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사실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능에 가까운 성질이기 때문이다. 일차원적 본능에 이끌리고 그 다음에서야 이차원적 생각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감정이 이성을 앞서게 된다. 사람도 동물이기 때문에 그런 습성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휴식의 지평선은 0처럼 존재 여부가 불확실하고 다른 사랑을 시도하기에는 선이 어긋날까, 무섭고 영원한 혼자는 본능을 포기하게 한다.


나의 지평선은 시간이 갈수록 바뀌어 간다. 지금은 모르지만, 마음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면 지평선은 어느새 내 앞으로 와 있지 않을까. 가까이 다가온 그때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러니까, 미래는, 지평선 너머는 언제나 두려운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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